도시는 우리가 항상 있는 공간이었기 때문에 너무도 익숙하고 당연한 존재였다. 매일 다니던 등굣길의 변화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무관심했고 주어진 환경을 받아들이고 거기에 익숙해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도시공학은 다른 어떤 학문보다 사람들의 삶에 가장 가까이 있고 또 그만큼 영향을 줄 수 있는 학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사람들이 쾌적하고 활기찬 환경 속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도시를 만들어보고 싶어 도시공학과에 진학하게 된 것 같다. 도시공학과에 진학을 꿈꾸고 나서 우리 주변의 공간을 조금 더 주의 깊게 살피게 되었다.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나무 한 그루에도 관심을 가지고 왜 하필 저 자리에 저 종류의 나무인지 고민해보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무 한 그루에도 그 나무를 지나칠 사람에 대한 배려가 들어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고 우리 또한 사람들이 알아차리지는 못해도 알게 모르게 주변의 사소한 것들로부터 편안함과 행복을 느끼는 도시를 만들고 싶었다.
누군가 나에게 ‘너 정말 도시 좋아하니?’라고 물어본다면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도시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더 알아가다 보면 도시가 정말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생동감 있게 운영되고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하고 도시가 품고 있는 다양성과 파급력이 너무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도시는 정말 수많은 사람들이 거주하면서 안식을 찾기도 하고 방황하기도 하는 공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도시가 아니라 작은 마을 하나를 계획하더라도 철저한 준비와 이해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도시학개론이란 수업을 들으면서 처음 들은 질문은 ‘도시는 누구를 위한 공간인가?’라는 질문이었다. 가장 기본적이지만 동시에 가장 대답하기 난감한 질문이기도 하다. 도시는 당연히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다. 도시 속 사람들의 행동과 성향, 그리고 사회적 지위에 따라 도시의 발전 방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장경제가 존재하는 자본주의의 국가에서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각자의 소득과 소비, 그리고 그 성향이 모두 다르다. 이것은 곧 도시가 한 가지 특성만을 띄지 않고 사람들 개인의 특성을 반영한다는 말과 같다. 현대 도시의 발전 과정에서 이러한 사람들의 성향, 소득, 가치의 차이는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사는 구획화의 원동력이었고 현재 도시는 도심, 부도심, 도시 외곽으로 나뉘고 공간별로 비슷한 가치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살지만 한 공간의 사는 사람들은 다른 공간의 사는 사람들과는 현격히 다른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이렇게 도시의 세분화된 모습은 도시계획에 있어서 어려움을 준다. 하나의 도시를 계획하는 데에 사람들의 다원화된 욕구를 충족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다시 의문이 생긴다. 도시는 정녕 누구를 위한 공간인가? 앞서 말했듯이 도시는 도시 속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다. 즉, 도시는 그 사람이 높은 소득을 가졌든 그렇지 않든 그들 모두를 충족시켜야 할 의무가 있는 공간이다. 하지만 그에 앞서 개선되어야할 것이 있다. 도시 속 사람들이 도시 구조물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는지를 고려하기보다 도시 구조물이 어떻게 하면 더 괜찮아 보일지만을 고려하는, 다시 말하자면 도시 외부적인 모습만을 고려하는 도시계획이 바로 그것이다. 이 말은 제인 제이콥스가 했던 말로써 그녀는 도시 속 내부구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우리는 이번에 ‘우리는 도시에서 행복한가’를 읽으면서 그녀의 말을 이해하는데 한 발자국 더 나아갈 수 있었다.
이 말이 우리에게 특히 와닿은 부분은 보고타의 특이한 도시 성장 모델이었다. 보통의 도시 성장에 있어서 하드웨어, 즉 고속도로의 상징성은 대단하다. 우리나라의 발전사에 있어서도 경부고속도로의 개통은 우리나라 발전의 대표적인 상징물의 역할을 했다. 하지만 보고타에서 실시한 도시 개발은 우리와는 달랐다. 보고타 시는 외곽의 도로를 포장하는 대신 보행로를 먼저 포장함으로서 보행을 장려했다. 보고타시의 이런 파격적인 행보는 여태까지의 도시계획론으로 보았을 때 지극히 비정상적인 모습처럼 보인다. 도시의 발전, 즉 생산성의 증가와 인구 증가를 위해서는 도로를 포장하고 그에 맞추어 도시구조를 넓혀가는 것이 일반적 지론이다.
그렇다면 이와 반대로 도로를 포장하지 않고 보행로를 포장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모든 사람들이 도시의 발전이 더뎌질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면 보행로를 포장하여 도시 성장이 더뎌지는 것이 안 좋은 것일까? 이에 대한 반론이 제일 처음 말한 질문이다. 도시는 과연 누구를 위한 공간인가? 즉, 처음부터 우리는 도시의 성장보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만족도를 우선시해야 하는 것이다. 도로를 먼저 포장하고 보행로를 비포장 상태로 내버려 둔 채 도시의 성장을 바라는 것으로 도시를 성장시킨다면 과연 그 도시 속 사람들은 행복할 수 있을까? 많은 위험이 도사리는 도시 공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도시의 성장이 자신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이로써 분명한 것은 도시의 성장보다도 도시 속 사람들의 삶의 만족도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도시 속 사람들의 만족도는 곧 도시의 활력으로 이어진다. 도시 분위기가 우울할수록 범죄율이 증가하고 생산성의 저하로 이어진다. 결국 도시 침체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사람들의 도시 만족도는 그저 개인적인 만족도가 아니라 도시 전체의 분위기로 연결되는 것이다.
보고타 시의 차량 통제 정책과 동시에 진행된 보행자 우선 정책, 그리고 대중교통 개선 정책은 모두 이런 관점을 담고 있다. 결국은 이 모든 것이 사람들의 행복을 우선시 하고자 하는 목표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보행자들이 늘어나면서 도시는 활력을 되찾게 되었고 교통사고율이 감소하였다. 차량 방해물을 보행로 입구에 세우면서 차량의 보행로 점거는 불가능해졌고 이는 더 많은 보행자들을 불러 모았다. 보행자들이 증가하면서 차량 진입이 힘들어 상권에 진입하지 못하는 사람들보다 많아졌고 초기의 반발과는 다르게 긍정적 효과를 낳았다. 결국 도시의 상권에까지 활력을 불어넣은 것이다.
하지만 보고타 시가 결과적으로 성공한 것은 아니다. 시장이 임기가 끝날 때마다 바뀌면서 지속적인 투자가 불가능했고 지속적이지 못한 투자는 결국 이 모든 활기가 유지되지 못한 가장 큰 이유가 되었다. 이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도시의 활력을 얻기 위한 활동은 지속적으로 행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단기적인 활동으로 얻을 수 있는 활력은 그만큼 빨리 사라지기 마련이다. 결국 도시의 성장을 위해 대규모 프로젝트가 장기간 이루어지는 것처럼 도시의 활력을 되찾는 계획 또한 단기적 시도를 벗어나 장기적으로 목표를 정하고 이루어지는 것이 더욱 효과적인 것이다.
우리는 여태까지 도시에 있어서 도시가 어떻게, 얼마나 성장할 것인가만을 중요시 해왔다. 하지만 앞으로의 도시 계획에 있어서 이제는 도시의 성장보다는 도시 속 사람들의 삶의 만족도를 우선시 해야 한다. 사람들이 일정 소득을 넘어가면 소득에 있어서의 행복도는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결국 임계점을 지난 도시에서 무작정 성장만을 강요하는 정책을 펼치기보다 조금은 더디지만 사람들을 생각하는 도시 개발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제 막 도시문제를 직접 발로 찾아다니며 몸으로 도시를 배울 우리에게는 친숙했던 도시를 낯설게 보고 문제점을 찾아내려고 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 같다. 익숙함의 편안함도 좋지만 더 좋고 나은 것을 추구해야만 도시는 발전할 수 있다. 도시를 배우는 우리들이 가져야 할 눈은 사방을 둘러보는 종합적이고 입체적인 시각이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길거리의 나무 한 그루, 벤치 하나처럼 아주 작고 사소해서 존재도 인식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관심 갖는 습관을 기르도록 노력할 것이다.
우리는 이제 막 20대에 들어왔고 어느덧 스무 살의 절반이 지나갔다. 우리들 중에는 목표도 없이 방황하는 스무 살도 있을 것이고 빛나는 꿈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 스무 살도 있을 것이다. 목표도 없고 꿈도 없지만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내며 추억을 쌓는 스무 살도 있을 것이다. 나는 막막한 미래가 두려웠고 아직은 확실한 목표가 없어 불안한 스무 살인 것 같다. 그냥 물처럼 흘러가듯이 살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고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현실을 떠나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이런 고민, 불안, 방황과 서투름도 모두 스무 살이 누릴 수 있는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너무 급하게 앞만 보고 가지 말고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떻게 가고 있는지 둘러봐야겠다고 느꼈다. 그것이 스무 살인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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