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이드 러너’라는 이름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친숙하게 느껴진다. 영화 자체를 본 사람은 많지 않더라도 많은 영화 비평에서 SF의 원형으로서 제시하기 때문이다. 물론 필자가 왜이 영화를 학회지에 실으려 하는지 의문을 표할 수도 있지만, 올해 이 영화가 다시 나오기로 예정되어 있고, SF영화나 영상물에서 보이는 도시의 외견을 처음으로 제시했다고 평가받는 작품이기에 그렇게 방향성을 놓치는 것 같지는 않기에 그대로 진행했다. 또한, 글의 방향성에 대해서 밝히자면, 이 글에서는 영상에서 나오는 도시의 모습뿐만 아니라, 영화에서 나타난 다른 인간적인 요소들까지 총체적으로 조망하려 한다.
이 영화는 SF적 구성요소와 몇 가지 철학적 주제를 기반으로 하여 내러티브를 진행해나간다. 물론 이 영화는 극장상영판과 감독판의 차이도 극명하고, 촬영기법에 대해서도 상당히 작품의 내러티브를 구성하는데 영향을 많이 주었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이란 무엇이고 인간성의 본질이란 면은 비인간성과 어떻게 구별되는가?’라는 질문이 영화를 구성하는 요소 중 가장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는 또한 리들리 스콧 감독이 영화를 제작하면서 사람들에게 던진 화두이기도 하다. 작중에서 지속적으로 복제인간이 아닌 인간들의 인간성 상실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감독이 의도적으로 암시하는 바로서 과연 인간임만으로 인간성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으로 볼 수 있다.
작중의 시간 구성을 조금 따라가는 방식으로 도시 관련 문제를 먼저 다뤄보도록 하자. 그렇다면 가장 먼저 살펴보아야 할 부분은 바로 2019년의 미국 LA의 풍경이다. SF장르의 영화는 내러티브적인 면에서 보다는 시각적인 효과를 통해서 미래 사회의 풍경을 보여주게 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숙명이고, 또한 이 영화의 도입부 또한 이러한 점을 잘 따르고 있다. 영화에서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런던형 스모그가 일상화되어있는, 좋지 않은 대기 상태와 너무나 많은 초고층 건물에 힘입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어둡고 칙칙한 거리, 지속적으로 내리는 비, 국적을 알 수 없고 또한 미래의 패션이라는 것을 감안해도 여유로워 보이지 않는 옷차림, 그와 대비되는 화려한 네온사인 등인데 이는 사이버펑크 장르의 원형으로 꼽히면서 많은 다른 작품에까지 영향을 미친 부분이기도 하다. 이러한 것들과 타이렐 사의 본사 건물을 많은 것을 함의하는데, 먼저 도시학적으로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 못하는 이 도시의 전경이 사회가 사람들을 더 이상 보호해주거나 행복을 증진시켜주지 못하는, 그저 고층건물로 대변되는 자본주의를 위한 첨병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의미하고 또한 그러한 것을 통해서 인간성의 상실을 간접적으로 함축하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전술했던 타이렌 사의 헤드쿼터도 많은 정보를 제공해주는데, 이집트 식이기 보다는 오히려 남미의 아즈텍이나 마야 식이라고 볼 수 있는 피라미드 구조로 지어져 있는 모습을 통해서 2019년의 LA에서 정부보다 높은, 거의 신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시민들을 교묘하게 지배하고 있는 타이렌 사의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반도체 회로와 같이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는 이 건물의 외관은 그렇게 기술이 발전했음에도 행복도가 증진되지 않고 사회적 불평등만 악화시키는 것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배경을 통해서 감독이 그 당시의 기술지상주의에 대해서 비판점을 제시하고 또한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시각화를 이용해 형상화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세상의 반대급부로서 제시했고, 그러한 의도가 후대에 제대로 해석되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순서상 두 번째로 중요하게 생각되는 점은 감독이 작중에서 기억에 관한 문제를 다루었다는 점이다. 바로 복제인간인 레이첼과 복제인간으로 추측되는 릭 데커드가 기억을 가지고 있고, 그러한 기억이 본인을 구성하면서 본인을 복제인간이 아니라고 믿는 점에 대해서 근거가 되는 점을 유심히 바라볼 필요성이 있는데, 이는 기억이 인간에게 어떠한 기준이 되는가에 대한 감독의 생각에 기인한다. 기억과 같이 상대적으로 인간에게 이성적으로 기능하는 대상보다는 오히려 욕망이나 사랑과 같은 조금이나마 더 인간의 본질적인 부분에 닿아있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매개체를 중시하는 감독의 의도가 잘 드러난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이다. 또한 이는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 이론과 맞닿아 있기에 더욱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데, 영화 속에서 기억이 그 자체로서 현실적인 기억―이 경우에는 기억의 공백을 의미한다―을 대체하고, 현실은 이 이미지에 의해서 지배받게 되므로 오히려 주입된 기억이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기억으로 자리 잡는 과정 속에서 현대인들에게 중요한 문제인 허상의 이미지가 실재를 대체하는 것에 대한 담론을 이 영화가 나올 당시에 먼저 인식하고 문제 제기를 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보인다.
마지막으로 영화에서 다룬 인간성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 논의를 진행해보려 한다. 감독이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고, 비(非)인간적인 부분을 더욱 그렇게 만드는가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 의도적으로 화두를 던지는 듯한 인상을 준다. 전술했던 것처럼 작가는 이성적인 것보다 오히려 욕망과 사랑을 통해서 이 문제를 풀어나갔고 또한 이들을 정답으로 제시하고 있다. 우리는 영화에서 복제인간이 4년밖에 살지 못한다는 점을 풀 수 없음을 깨달으면서 욕망이 무너지고 다시 의미를 찾아내는 과정 속에서 자신을 쫓던 데커드를 쫓게 되면서 제시되는 피투성에서 벗어나면서 일어나는 일련의 일들을 통해서 감독이 생각하는 인간의 인간성에 관해 관찰하게 된다. 감독은 복제인간 로이가 자신을 쫓던 데커드를 구해주고 자신은 죽는 장면과 복제인간인 레이첼이 오히려 같은 복제인간을 쏘고 탈주한 복제인간을 죽이는 명령을 받았기에 자신마저 죽일지 모르는 데커드를 살리는 장면, 그리고 데커드와 레이첼이 사랑에 빠져서 같이 도망가는 장면을 통해 삶을 피투된 상태에서 사는 인간과 기투를 실현하고 있는 복제인간의 상태를 비교하여 인간성을 총체적으로 조망하고 있다.
지금까지 인간성과 기억에 관한 문제, 개별 장면을 통한 감독의 함의를 특정적인 일부만 다루어 보았다. 물론 혹자는 이러한 해석에 대해서 수전 손택의 이론처럼 특정한 알레고리에 관해서 해석하는 것을 거부하고 이 영화의 에로틱스에 대해서 논의하지 않음을 책망할 수도 있다. 또한, 너무 특정적인 부분에서만 영화에 대해서 다루고 촬영기법이나 원작과의 관계에서 바라볼 수 있는 감독의 의도성 같은 굵직한 이야기에 대해서는 손대지 않았다는 점을 들 수도 있다. 물론 무시할 수 없는 비판점이지만 조그마한 변명거리를 들자면 이 영화는 사실 명확하게 비유와 상징이 드러나기에 에로틱스보다 형식과 내러티브의 알레고리가 더 중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분석을 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었다고 생각된다.
영화의 특정적인 부분에 대해서 이렇듯 분석했는데, 전술했던 첫 문단에서 영화에 나타나는 부정적인 도시에 대해 보였듯이 SF영화들은 대부분 이 영화의 영화를 받아서든, 감독의 의도를 조명하듯 미래의 도시를 부정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는 현재까지의 도시에서 고통을 받았던 현대인들의 심리를 반영한 것이 아닐까 한다. 어떻게 하면 도시가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 될 수 있을지, 사람들을 어떻게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해야하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안겨주는 영화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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