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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호

[48호] 간판 다르게 바라보기 - 08 김은호

신촌을 걷다보면 많은 것들이 머리에 남는다. 독수리 약국과 대학약국, 길가에 와플이나 꼬지를 파는 노점상, 수많은 카페, 아디다스, 줄지은 화장품 가게, 휴대폰 가게, 복성각 같은 식당들은 나에게 눈감고도 떠올릴 수 있는 신촌의 장소들이다. 이런 장소들을 떠올릴 때, 거기서 있었던 추억, 내부의 시설 또는, 파는 물건들이 떠오를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 뒤지지 않게 간판 역시 장소를 기억나게 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언제 부터인가 우리나라에서는 거리의 경관을 망치는 요소로 간판을 이야기해왔다. 간판이 아름다움을 더해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외벽에 붙어서 건물의 아름다움을 가리는 흉물이 된 것이다. 과거 간판은 통일되지 않은 색과 크기가 사람들의 시야를 어지럽혔다. 88올림픽을 위해 국가 이미지를 개선한다는 명목으로 간판은 거리를 어지럽히는 요소가 되었다. 이렇게 문제로 선정된 과거의 간판들은 규제의 대상이 되었다.


 그렇다면 이런 간판 규제의 근간은 어디에 있는지가 궁금해졌다. 올림픽 이후 해외여행의 기회가 늘어났고, 많은 사람들이 외국 그중에서도 유럽이나 미국을 여행하고 오면서 그곳의 깔끔하고 정돈된 거리에 매료되었다. 그들이 한국으로 돌아와서 한국거리의 무질서함을 비판하고 자신들이 경험한 서양의 간판을 목표로 삼았다. 이후 2003년에 서울시 종로 업그레이드 계획을 필두로 전국적으로 확산 되었으며, 2007년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의 개정안이 공포되었다. 이를 통해서 글자체 간판크기 간판의 수량 등이 제한되었고, 이에 따라 거리의 간판들은 통일되고 소형화되며 건물의 외관을 어지럽히지 않는 무채색계열로 변경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과거에 비해 우리가 생각했던 서구의 간판과 유사하게 변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서구의 간판들은 어떤형태 일까.

우선, 유럽을 이야기하자면 유럽에서 가장 규제가 심하다는, 그리고 가장 미적이라는 프랑스 파리를 들 수 있다. 파리를 다녀온 사람에 의하면 거리를 거닐면 잘 정리된 모습에서 차분한 느낌을 가지게 된다고 한다. 한 건물에 하나에서 두 개 정도의 간판이 있다. 그 간판 또한 건물의 외관에 어울리는 색상과 디자인으로 간판이 건물의 어지럽히지 않고 오히려 더 아름답게 해주는 형태를 가진다. 이렇게 차분하게 정돈된 모습이 가능한 이유는 프랑스의 강력한 간판규제 때문이다. 프랑스의 경우 간판 신청을 하면 규제의 목표가 주변 환경과의 조화를 이루는 간판이기 때문이다. 파리는 우리나라가 광복하기도 이전인 1943년에 이미 간판규제법을 만들었다. 이후 환경법이 제정된 1979년부터 규제가 강화되었다. 현재 간판 설치를 위해서는 약 2~4개월 정도 건축, 도시설계, 문화·예술, ·행정의 4개 분야 공무원의 협의를 통해 허가를 받아야한다. 이외에도 간판세와 막대한 벌금을 통해 문화의도시라는 파리의 이미지를 유지해나가고 있다. 이러한 노력 덕에 전 세계 사람들이 가고 싶어 하는 도시가 되었다.

간판 이야기를 하면 빠질 수 없는 요소 중 하나가 맥도날드인데, 맥도날드하면 우리가 떠올리는 색상은 붉은색과 노란색이다. 그러나 파리의 경우 붉은색과 노란색이 경관과 조화를 이루지 않는다면 간판 색을 다른 색으로 바꿔버린다. 그렇기에 사진과 같이 하얀색 간판을 가진 맥도날드도 있을 수 있다. 파리의 경우 오래된 건물들로 이루어진 거리의 이미지를 중요시 여긴다. 그래서 간판을 만들 때도 거리경관과의 조화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다음은 우리의 또 다른 목표였던 미국의 간판을 이야기 해보고 싶다. 미국하면 생각 나는 간판은 크고 화려한 간판이다. 우리는 뉴욕의 타임스퀘어나 라스베가스의 커다란 전광판과, 화려한 색상, 눈부신 네온사인을 미디어에서 자주 접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왠지 미국은 간판 규제가 약할 것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미국은 간판을 도시계획의 한 부분으로 다루며 엄격한 규제를 하고 있다. 간판을 도시계획상 용도에 따라 규제를 한다. 우리가 자주 접하는 타임스퀘어나 라스베가스 같은 상업지역에는 완화된 규제를 통해 대형 간판을 집중적으로 설치해서 관광명소로 만들었다. 화려한 간판을 가진 상가들이 잘되면서 다시 지역경제를 활성화 시킨다. 화려한 간판이 지역 경관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지역에 도움을 주는 요소로 탈바꿈 한 것이다. 이와 같이 미국은 지역이 특색을 가질 수 있게 간판규제를 실시한다. 또한 미국의 많은 주마다 규제가 다르지만, 공통적인 요소로 지역주민과의 조화가 있다. 주민들과의 의사소통을 통해 지역의 정체성에 부합하는 간판만 설치를 허가해준다. 이런 규제를 통해 지역마다 사는 사람이 다르듯 간판들도 각 지역마다 다양한 특색을 지니게 된다.

 


그렇기에 미국을 상징하는 맥도날드 역시 자국 내에서 자신들의 상징인 노란색과 붉은색을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 사진은 미국 세도나에 위치한 맥도날드인데, 특이하게도 녹색을 사용하고 있다. 세도나는 붉은색 사암지대로 미국 내에서 유명한 관광지다. 주변과 조화를 이루는 사암느낌의 건물과 어우러지기 위해 녹색계열을 사용하였다. 이렇게 주변과 조화를 이루는 색으로 지역의 정체성을 더 강조하고 있다. 미국 역시 유럽에서 건너온 선조들의 영향인지 간판을 규제하는데 있어서 조화를 중요시한다. 그러나 차이점이라면 상업지역에서 유럽과는 다르게 상업지역의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더욱더 크고 화려한 간판들로 정체성을 새로이 형성할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우리가 간판규제의 목표로 삼았던 서구는 간판을 기존 거리에 추가적인 요소로 주변경관에 맞춰 간판을 규제하였다. 이에 반해 간판 자체가 거리를 형성하는 곳도 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차이나타운이다 어느 나라를 가도 차이나타운은 거의 유사한 형태로 이루어져있다. 자신들이 살던 모습 그대로 살기 시작해 만들어진 차이나타운은 신기하게도 모든 나라에서 관광지가 된다. 가까운 인천의 차이나타운만 하더라도 주말에는 유명한 식당의 경우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식사를 할 수 있다. 차이나타운은 굉장히 강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직접 가봤건 티비나 영화에서 봤건 눈을 감고 차이나타운하면 생각하면 붉은색 금색으로 이루어진 골목에 조그만 의자에 앉아서 중국어로 이야기하며 좌판에서 신기한 음식들을 파는 이미지를 누구나 쉽게 떠올릴 수 있다. 그리고 붉은 간판에 금색글자들로 치장된 건물들과 간판들로 구성된 거리를 지나면 우리는 내가 진짜 차이나타운에 있구나라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규제가 아니라 자유에 맡겨도 이런 세계적으로 유명한 정체성을 가진 거리들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차이나 타운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또 다른 장소는 바로 홍콩이다. 홍콩하면 가장 떠오르는 요소는 무엇인가. 영화 중경삼림 같은 로맨스영화나 무간도 같은 느와르 영화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네온사인으로 뒤덮인 홍콩의 거리이다. 사진에서 보듯이 홍콩에서는 맥도날드 간판 또한 네온사인으로 빛을 내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뿐 아니라 전 세계의 사람들이 홍콩의 매력으로 꼽는 것이 홍콩의 화려한 야경이다. 이런 간판들이 생길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나라나 서구의 나라들과는 다르게 홍콩엔 간판을 규제하는 틀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크고 더 화려한 형태의 간판들이 매일 나타나고 사라진다. 이것이 홍콩 거리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인지 홍콩의 밤거리 자체만으로도 전세계 사람을 불러오는 하나의 관광 상품이 된다. 그런데 이 야경이 꺼진 낮의 거리가 어떤 모습인지 본 사람이 있을까. 사진에서 보듯이 네온사인들은 낮에는 거리를 더럽히는 굉장한 흉물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대부분은 낮에는 복잡하고 어지러울 지라도 밤을 밝혀주는 수많은 네온사인들로 이루어진 홍콩의 야경을 더 강하게 기억한다. 중국엔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문제 삼지 않으면 문제가 없는데 문제 삼으니 문제가 된다.” 이처럼 중국은 규제를 하지 않고도 정체성을 설립할 수 있다는 사례를 몸소 보여주고 있다. 홍콩의 경우에는 네온사인을 통해서 자신만의 정체성을 만들어 내서 세계에 홍콩이라는 이미지를 각인 시켰다.



홍콩과 중국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잘못된 간판도 어떻게 보면 하나의 특색있는 거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과거 외국 여행이 수월치 않을 때 외국에오래있던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아 진짜 한국에 왔구나라고 느끼는 것 중에 하나가 한국의 간판들이라고 한다. 나라마다 사람들의 생각이 다르듯이 간판 또한 나라마다 다른 형태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과거 우리나라의 간판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어울리는 간판이 아니었을까. 서구 지향적인 형태로 작고 정돈된 형태의 간판을 추구한 지금도 나쁘진 않지만, 과거의 모습 그대로도 나쁘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신기하게도 외국의 코리아타운에서 과거 우리간판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위의 사진을 보고 난잡하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왠지 특색 있다고 느껴진다. 위에서 말한 차이나타운이나 홍콩의 경우 그들이 가진 이미지가 하나의 컨텐츠로 전 세계에 소비되고 있다. 한국의 간판도 한국을 상징하는 하나의 컨텐츠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많은 관광객들이 한국을 찾는 시대에 우리는 한국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고 정부는 엄청난 자본을 투자했다. 물론 과거의 간판을 나쁘게 보는 입장도 이해 할 수 있다. 그러나 로버트 벤투리의 우리는 간판들이 가득 들어 찬 거리에서 시각적인 것을 오염시키는 좋은방법을 습득할 수 있다. 시각오염이 전부 나쁜 것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그것이 우리를 그토록 매료시킬 수 있겠는가?’라는 말처럼 우리의 시각을 자극하는 간판이 사람들을 매료시킨다는 것을 생각해봐야한다. 간판을 줄이고 절제하는 것만이 정답이 아닐 수 있다. 굉장히 진부하지만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말처럼 우리가 스스로 만들었던 간판이 가장 한국적이고 이것이 가장 세계적인 간판이 아니었을까 다시 반문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