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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호

[48호] 지극히 현실적인 어느 이상주의자의 고행 - 13 김예준



1.

"나의 꿈은 타이틀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가장 완벽하고도 이상적인 축구가 그라운드에서 단 5분만이라도 구현되는 것을 보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벵거는 기나긴 무관의 시절을 보내야만 했다. 많은 선수들이 떠나갔고, 팬들의 원성은 높아졌으며, 어쩌면 그 황소 같던 노인의 고집도 조금은 꺽였는지 모르겠다.

 

무관의 아이콘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사실 벵거가 잉글랜드에서 이룩한 모든 것들은 존경 받아 마땅하다. 물론, 우리가 그것을 실제로 목격하지는 못 했지만, 모든 혁명이 그러하듯이, 벵거발 혁명은 일어났고 우리는, 잉글랜드 풋볼은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벵거가 개혁시킨 것은 지루하디 지루한 아스날만은 아니었다. 뻥축구로 대변되던 잉글랜드의 축구를 전부 변화시켰다. 잉글랜드 안에서만 선수를 찾는 것이 아니라, 벵거는 세계로 눈을 돌려 아메리카, 전 유럽, 아프리카까지도 스카우터를 보내 많은 유망주들을 발굴해내었다. 21번째 프랑스 클럽이라는 조롱을 받을 정도로 많은 프랑스 선수들을 보유했었고, 아트사커로 일컬어지는 프랑스 축구를 잉글랜드 풋볼과 접목시켰다도 할 수 있겠다.

 

"우리가 우리의 축구를 제대로 전달할 수만 있다면, 상대가 어떻든 상관없다.”

 

벵거는 전술적인 융통성이 부족하다는 소리를 들을만큼, 자신의 축구 철학에 대한 믿음이 확고했다. 패스 앤 무브, 침투, 밸런스가 무너진 4-4-2, 롱 볼이 아닌 빠른 템포의 숏 패스 위주 축구가 바로 그것이다. (사실 위의 설명은 정확하진 않다. 다만, 나는 벵거의 전술을 그저 아이디어를 전달하기에 충분할 정도로만 뭉뜽그려서 묘사했을 뿐이다.)

그리고 많은 명장들은 벵거의 항상 비슷한 전술의 파훼법을 알고 있었다. (벵거가 항상 비슷한 전술을 들고 나왔으므로) 단지 벵거가 아직도 성공하고 있는 이유는 벵거의 전술이 아주 잘 만들어진 전술이기 때문이리라. 아무튼 퍼거슨, 무리뉴 같은 이들은 이에 대한 파훼법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아주 낮은 수비 라인, 2선과 3선의 간격을 매우 좁히고, 거칠게 파울하며 역습을 노리는 형태가 바로 그것이다.

때로 위와 같은 벵거볼 파훼법은 바르셀로나의 수장이었던 요한 크루이프가 규정하는 이른바 안티-풋볼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안티-풋볼이라는 말은 크루이프의 오만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그것이 11명의 선수와 축구공으로 이루어졌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은 이미 풋볼 그 자체이다. ) 하지만 바르셀로나와 아스날의 풋볼은 명백히 다르다. 전자가 상대편의 공격 기회를 "완전히" 빼앗고 지공 상황에서의 수 없이 연결되는 숏패스를 통해 미묘한 공간을 찾아내 공략하는 것이라면, 아스날의 전술은 포제션을 조금 내주더라도 패스 앤 무브를 이용한 역습을 통해 득점을 노리는 것이다. 아스날의 전술이 바르셀로나의 포제션 풋볼과 닮아 보이는 이유는 단지 상대편 감독들이 아스날을 너무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오픈 게임에서는 벵거를 이길 수 있는 명장은 실로 드물다.

그의 축구는 이미 그 자체로 이상을 추구하는 이상주의이다. 나는 당신이 벵거의 아스날의 축구를 한 번쯤은 보길 바란다. 당신이 축구를 잘 이해하지 못 할지라도 당신은 벵거의 축구가 이상주의에 기초하고 있음을 손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예술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 없이도 위대한 작품은 작품 그 자체로 우리에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기존에 없던 스피디한 공격, 미려한 팀플레이, 그리고 그 중심에 서 있는 벵거는 거부하기 힘든 마약 같은 존재였다. 잉글랜드는 그 마약을 들이켰고, 환각 상태에 빠졌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모든 마약이 그렇듯, 약빨이 다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2.

모든 아스날 팬들의 염원은 아마도 벵거가 제발 그 빌어먹을 돈!’을 쓰는 것이리라. 벵거발 혁명이 일어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하나의 혁명이 일어났다. 바로 돈의 혁명이다.

러시아, 중동, 그리고 기름 냄새가 나는 모든 곳들로부터 시작된 돈의 혁명은 잉글랜드를 집어 삼켰다. 그 검은 액체는 곧 수 많은 색깔들을 덮기 시작했고, 살아 있어 빛이 날 수 있는 색들은 몇 남지 않았다. 벵거의 빛도 겨우 자기 자신의 발등만을 비출 뿐이었다. 첼시, 맨시티는 많은 선수들을 사들이기 시작했고, 초창기 벵거가 독점하고 있던 스카우팅 정보는 돈의 힘 앞에서 무릎 꿇리고 말았다. 벵거, 혹은 다른 팀들에서 좋은 재목에 눈독들이기 시작하면 그들이 얼마를 제시하건 간에 기름쟁이들은 그것보다 더 비싼 돈을 지불하겠노라고 선언하곤 했다. 이러니 이적시장이 제대로 돌아갈 수가 있겠는가!

벵거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유망주에게로 눈길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시기적으로 돈의 혁명이 먼저 일어났는지 새 구장 건립이 먼저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벵거는 기름 묻은 돈에도 신경을 쓰는 한편, 새 구장 건립에도 신경을 써야만 했다.

새 구장 건립은 검은 액체의 조류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벵거가 고려한 방책 중의 하나였다. 기존의 3-4만 명의 관중이 들어설 수 있었던 구장을 6만 명 이상이 수용가능하도록 새로 지어 매치 데이 당일 수익을 높이겠다는 의도였다. 물론, 새 구장을 짓는 데 들어가는 비용만큼 아스날은, 또 벵거는 절약할 수 밖에 없었다.

벵거는 새 구장을 건립하고 재정적으로 안정되어지기까지 걸린 근 10년 동안 거의 트로피를 따내지 못했다. 벵거가 지나온 무관의 세월과 아스날의 재정이 위축된 시기가 겹치는 것은 전혀 우연이 아니다. 벵거는 제대로된 소비를 하지 못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벵거는 매 년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이 지어지는 마지노선인 리그 4위 아래로 팀을 떨어뜨린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심지어는 매 년 팀을 챔피언스리그 16강에 올려놓기까지 했다.

경제학 석사 학위를 가지고 있던 이 노인은 그렇게 현실적이었다. 재정적으로 힘든 시기에 많은 주급이 필요하지 않은 유망주들을 위주로한 선수단과 많은 상금이 주어지는 챔피언스리그에 매 년 출전하는 것, 일개 팬들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명확했던 벵거의 현실적인 행보였다. 물론, 벵거는 재정적으로 힘들었던 10년 간 여러 부동산 사업과 아시아 투어 등등 여러 사업들을 벌여왔다. 그러나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서 접할 수 있는 아스날은 매우 한정적이고, 그러한 가운데서도 위의 두 정책들은 그 좁은 창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매우 명확했던 비전이었다.

사실 아스날 팬들도 그러한 벵거를 이해하지 못 했던 것은 아니다. 벵거에 대한 비난이 거세진 것은 약 3-4년 전 부터이다. 우리 팬들도 에미레이츠 스타디움 건립으로 인해 추워진 아스날의 주머니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연일 미디어를 통해 보도되는 아스날의 재정 보유 상황은 팬들을 미치게 하는 것이었다. 이적자금이 1000억 가까이 있으면서도 팀의 주장인 세스크 파브레가스와 로빈 반 페르시는 떠나갔으며, 아스날이 영입해 온 선수는 마타가 아닌 알렉스 옥슬레이드 체임벌린이었다.

벵거는 많은 비난을 받았다. 특히나 벵거와 완전히 반대되는 행보를 보이는 무리뉴는 벵거를 이렇게 비난한다. “그는 실패의 스페셜리스트다(a ‘specialis in failure). 만일 내가 첼시에서 8년 간 단 한 개의 트로피를 따내지 못 했다면 나는 그 즉시 첼시를 떠날 것이다.”

 

3.

참 아이러니한 것은 현재 프리미어리그에서 벵거보다 많은 트로피를 가지고 있는 감독이 없다는 사실이다. 심지어는 무리뉴조차도, 잉글랜드FA가 관여하는 트로피만을 가지고 보자면, 벵거보다 트로피 개수가 적다. 벵거는 그 가운데서도 팀을 혁신시켰고, 아스날의 미래를 위해 그 힘든 시기를 버텨왔고, 이제는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다섯 클럽 가운데 자신의 팀인 아스날을 올려놓았다.

초창기 벵거는 자신의 철학을 잉글랜드에, 세계에 선보이며 좌중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변화하는 강산은 철학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때에 따라 알맞는 철학이 있겠지만, 모든 철학이 그렇듯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또다른 철학이 탄생하며 기존의 사고는 구식이 되기 마련이다. 벵거의 생각도 그러한 듯 보였다. 초창기 벵거가 이룩해낸 가장 대표적인 업적인 무패우승은 실로 대단했다. 38번의 리그 경기에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고 우승을 해낸 것이다. 그러나 시간은 언제나 흐르게 되있고, 벵거는 10년 간의 암흑기를 맞이한다.

혹자들은 얘기한다. 벵거는 자기 자신의 아집에 사로잡혔다고. 심지어는 노망난 노인내의 마지막 고집이라고 까지도 표현되는 최근의 벵거는 우리 눈에는 분명 문제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때로 뛰어난 사람들은 우매한 대중들의 비난 섞인 눈빛을 견뎌내야하며, 그것이 그들과 우리를 구분 짓는 특별한 점이다.

세월을 돌이켜 볼 수 있는 힘은 언제나 괜찮은 현재와 장밋빛 미래에 있다. 아스날의 팬들이 객관적으로 벵거를 바라볼 수 있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우리도 드디어 벵거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지난 이적시장부터 바라보자면 벵거는 페어 메르테자커와 아르테타라는 비교적 나이가 많은 선수들을 영입했다. 벵거 역시도 유망주 정책을 강요받으며 경험이라는 것이 무시할 수 없는 요소임을 깨달았던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현재 벵거가 소망하고 있는 사냐와 로시츠키의 재계약은 매우 바람직하다. 사냐와 로시츠키는 팀에 몸담은지 가장 오랜 선수들이기도 하며 선수 생활도 길게한 베테랑들이다.

벵거 부임 전 아스날은 그저 그런 팀이었다. 그러나 현재 아스날은 전 세계 부유한 클럽 5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고, 명성으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말 그대로 탑 클럽이다. 그리고 현재 프리미어리그에서의 순위는 어떠한가? 비록 첼시에 밀려 2위에 위치하고 있기는 했지만 그 누가 아스날이 2월달까지도 타이틀 경쟁을 하고 있을 줄 알았는가? 개막전인 아스톤 빌라 전 패배 이후 아스날의 팬들은 벵거를 경질해야 한다며 난동을 부리기까지 했다.

그러나 벵거는 자신의 자리를 내버리지 않고 무리뉴와는 다른 방식으로 지난 무관의 세월들을 책임지고 있다. 이번 여름 막대한 돈을 들여 메수트 외질을 영입하며 아스날 재정의 흑역사에 종지부를 찍었다. 외질의 영입은 단순한 선수의 영입이 아니라 먼 옛날 재갈량이 전쟁에 나서며 던졌던 출사표와 같은 영입이었다. 무리뉴와 같은 글로리 헌터들은 자신을 감내하지 못하겠지만, 벵거와 같은 로맨티시스트들은 아스날을 위해 자신의 명성 따위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10년이라는 세월을 기다릴 수 있는 것이다.

 

벵거라는 인물에 대해 자세하게 얘기하자면 글이 매우 길어질 것 같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세계 최고의 클럽이라는 레알 마드리드와 바이에른 뮌헨이 벵거를 무척이나 원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벵거는 아스날에 대한 사랑과 선수들과의 약속을 져버릴 수 없다며 자신의 책임을 내팽개치고 레알이나 뮌헨으로 도망가지 않았다.

그는 이상주의자인가? 그렇다. 그렇다면 그는 현실주의자인가? 이번에도 그렇다. 백조는 수면 위에 떠있기 위해 물 밑에서는 힘겹게 자맥질을 해야만 한다. 벵거도 자신의 이상을 위해서 검은 물 아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발을 놀리고 있는 것이다. 벵거가 많은 비난을 받고 있는 이유는 단지 우리가 그 검은 물 아래의 발을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아스날의 팬으로서, 벵거의 팬으로서 그가 트로피를 따내지 않아도 좋다. 때로 위대한 여정은 여정 그 자체로 크나큰 보상이기 때문이다. 벵거가 그간 보여준 과정들은 실로 아름답다. 벵거와 같은 이상주의자의 현실적인 모습은 비겁하지 않고 오히려 숭고하다. 자신들을 이상주의자로 일컫는 많은 실패한 사람들은 현실에 맞설만큼 용감하지가 않다. 그리고 그것이 첼시나 맨시티와 같은 팀들의 팬이 그토록 많은 이유이다. 현실과는 동떨어진 축구를 보면서까지도 현실의 힘에 굴복당하고 마는 것이다.

그간 나는 아스날이 실패하는 과정을 보면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나 역시 한 명의 이상주의자로서 현실에 벽에 부딪치는 적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나도, 벵거도, 아스날도 그 벽을 깨부수고 현실에 출사표를 던질 때가 되었다. 벵거와 아스날의 출사표는 던져졌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 모두의 차례다. 나는 벵거가 이번 시즌 우승하지 못해도 좋다! 그는 이미 음지의 이상주의자들에게, 겁쟁이들에게, 부적응자들에게 우리도 해낼 수 있다는 용기를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맥질을 시작하자, 미운 오리 새끼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