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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호

[48호] 고층 건물의 폐해 - 11 이선애

금융, 서비스업 등의 중심업무기능이 밀집된 도심에 고층빌딩들이 빼곡히 늘어섰다. 고층빌딩은 CBD(Central Business District: 중심업무지구) 지역에 훌륭한 대안으로서 톡톡히 효과를 보고 있다. 중심업무지구는 중심업무들에 대한 수요는 높지만 도시의 중심에 위치한 까닭에 매매가격이 매우 높다. 여기에 빌딩을 높게 지으면서 많은 사무실 및 상가를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고층빌딩이 도시 중심지에 들어서면서 같은 종류의 산업이 밀집하면서 집적경제의 효과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고층빌딩은 그 도시를 상징하는 관광지로서의 역할도 수행하고 있으며 도시에 활기를 불어넣어주는 역할을 한다. 요즘은 건물이 밀집된 지역에 부족한 녹지를 보충하기 위해 빌딩의 옥상에 공원을 만들기도 한다.

반면 도시에서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고층빌딩에도 문제가 있다. 영화 타워를 보면 무리하게 고층빌딩에 헬리콥터를 띄어서 이벤트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헬리콥터는 강한 바람 때문에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빌딩에 충돌하다가 결국 추락한다. 영화에서 안전관리자는 기상 때문에 무리라고 말했지만 실제로 문제는 날씨가 아니다. 타워에서 나오는 108층짜리 초고층빌딩 정도이면 불안정한 기상 때문이 아니라 평상시에도 헬기가 출동하는 것은 무리이다. 좁은 간격으로 들어선 고층빌딩들 사이에는 와류현상이 생겨서 강한 상승 내지 하강 기류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림 1 ▲ 와류현상이 발생하는 도시 협곡교차로의 모습


와류현상으로 파생되는 고층빌딩의 문제점 

와류현상은 매우 높은 고층빌딩들이 좁은 간격으로 위치해 있을 때 발생한다. 이 때 도로와 수직방향으로 설치된 고층빌딩을 타고 바람이 생긴다. 이렇게 형성된 와류는 빌딩의 최고층에 도달했을 때 중력과 순환류에 의해 고층빌딩을 타고 내려오게 된다. , 건물자체가 매우 높은데다가 빌딩들이 서로 가까이 위치해있는 물리적 특성 때문에 와류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특히 도시 중심지에서는 토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많은 고층빌딩들이 좁은 간격으로 늘어선 지역들이 있다. 이런 지역을 도로를 사이에 두고 빌딩들이 마주보고 서 있는 모습이 협곡 같이 생겼다고 해서 도시 협곡 교차로라고 부른다. 도시 협곡 교차로는 도시 중심업무가 밀집해 있기 때문에 많은 유동인구가 오가며 교통량 또한 매우 많다. 이 때 차량에서 발생하는 매연 등 오염물질들이 강한 와류를 타고 순환하게 된다. 또한 나란히 선 고층빌딩들 사이 간격이 매우 좁아서 이 오염물질들이 분산되기는 더욱 어렵다. , 도시 협곡 교차로의 물리적 특성상 와류현상은 마주 인접한 두 고층빌딩을 타고 순환하며 오염물질을 실은 와류는 계속해서 축적된다. 이 축적된 오염물질들을 순환류가 지상으로 내려와 다시 올라타게 되는 빌딩 근처의 거리를 걷는 보행자들이 마시게 된다. 실제 이러한 고층빌딩이 있는 강남역이나 테헤란로 등의 공기오염의 정도는 매우 심각한 것이 밝혀졌다.

또한 와류는 바람의 세기가 매우 강하다. 때문에 요즘은 고층빌딩을 설계할 때는 옥상에 헬리패드(헬리콥터 이착륙장)를 만들지 않는다고 한다. 애초에 헬리콥터가 접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11월 강남 구에 위치한 38층짜리 아파트에 헬리콥터가 충돌해 화제를 집중시켰다. 이 사고는 오전 855분경에 발생했으며 짙은 안개로 시야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헬기가 운전하다가 고층아파트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밝혀졌다. 우리나라에서 헬리콥터의 빌딩 충돌사고는 이번이 처음이어서 큰 이슈가 되었으며 고층빌딩에 대한 우려와 경각심을 보이는 목소리도 들리고 있다. 서울에 50층 이상인 고층빌딩이 18곳이나 되며 31층 이상인 건축물은 242개나 된다.

 

그림 2 ▲ 사람들이 엘리베이터를 향해 대피하는 모습


화재에 취약한 고층빌딩

또한 우리나라 고층빌딩에서는 화재가 발생했을 때 피난할 수 있는 통로나 대피소가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이 경우 똑같은 위급상황에서도 고층빌딩이 저층건물에서보다 대피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훨씬 길며 사람들의 혼란은 더욱 가중된다. 심지어 피난 시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피난통로를 통해 화재 시 발생하는 위해연기가 퍼지기도 한다. 피난통로가 재난상황에 더욱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이 피난통로를 이용하여 대피하다가는 위해연기에 질식될 수도 있다.

고층빌딩에서 화재가 발생할 때 위험한 두 번째 이유는 건물의 외벽의 구성에 있다. 고층빌딩은 대부분 외관상의 목적으로 외벽을 통유리로 구성시키는 추세이다. 반면 보통 콘크리트로 지어진 건물에서 외벽의 층 사이마다 약간의 막을 두었다. 이 층간 막 덕분에 외벽으로 불길이 번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반면 통유리로 된 고층빌딩에서 외벽으로 불길이 퍼질 때 그 속도는 일반건물의 _배나 빠르다고 한다. 더욱이 고층빌딩의 불안정한 기류 때문에 헬기로 화재를 진압하기도 매우 어렵다.

 


그림 3 ▲ 아파트에 적용된 필로티


우리나라 고층빌딩의 미래

하지만 고층빌딩은 무작정 피해야 할 문제도 아니며 도시중심지에서의 경제적 이해관계에 의해 피할 수도 없게 되었다. 여러 가지 심각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고층빌딩은 도시중심지에서 경제적으로 양적 효과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대기오염문제나 화재에 대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강한 바람으로 대기오염을 심화시키는 와류현상은 필로티라는 구조로 완화할 수 있다고 한다. 필로티란 건물의 1층을 건물의 기둥들로만 구성시킨 설계이다. 이 필로티가 있는 협곡 교차로에서는 순환류가 타고 내려와서 다시 건물을 타고 순환하지 않는다. 대신 필로티의 빈 공간을 통해 대기오염물질이 분산될 수 있다. 아파트의 지하주차장이 주로 필로티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또한 실제로 연세대학교 송도캠퍼스의 일부 건물들이 필로티구조를 갖고있다고 한다. (송도캠퍼스의 경우 필로티의 목적이 다르다.)


그림 4 ▲ 작은 충격에도 부서지는 경량 칸막이


고층빌딩의 경우 화재를 위한 충분한 비상경보체계를 설비해두어야 한다. 피난통로는 유해연기가 완벽히 차단되도록 하여야 하며, 화재에도 견딜 수 있는 대피장소도 의무화해야 한다. 얼마 전 신문에서 일반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어머니와 자녀 3명이 숨진 사건이 다루어졌다. 이들은 거실에서 발생한 화재를 피해 베란다로 피신했지만 끝내 불길에 목숨을 잃었다. 더욱 안타까웠던 것은 이 아파트에는 위급 상황 시 옆집으로 피신할 수 있도록 작은 충격에도 무너지는 경량 칸막이가 있었는데 이를 발견하지 못하고 숨진 것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파트에 설치된 경량 칸막이의 용도를 모르고 창고처럼 물건들을 쌓아둔다고 한다. 이번 안타까운 화재사건을 계기로 더욱 화재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일반인들은 평상시 자신이 이용하는 건물의 대피소의 위치를 확인해두고 대피방법을 숙지해야 한다. 또한 안전건축법을 강화해야 하여 유리를 통해 화재가 급속도로 퍼지는 것을 막도록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마치며

   고층건물은 양날의 검과 같아 잘 이용하면 경제적으로 이득을 볼 수 있지만 고층건물의 단점을 무시하면 그 이득이 피해가 되어 돌아온다. 고층건물은 토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해주었다. 도심지역에는 많은 경제적 이득을 발생시킬 뿐 아니라 남은 지상의 토지에 아늑한 녹지나 공원을 만들 수 있다. 또 도시재개발 시에는 상업지역의 용적률을 높여서 적절한 토지보상을 가능하게 해준다. 그러나 고층건물이 갖는 여러 가지 단점을 미리 파악하고 예방하지 않으면 그 피해는 결국 사람에게 돌아간다. 와류현상으로 인해 대기오염이 발생하며, 오염물질이 응축된 지역을 자주 이용하는 사람에게는 폐질환이 생길 수 있다. 또 고층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대피할 수 있도록 건물구조를 만들지 않을 경우 인명피해까지 낳는다. 사람이 죽으면 경제적 이득은 아무 소용이 없다. 고층건물의 폐해들을 미리 점검하여 예방하는 길이 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