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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호

[48호] 같이의 가치 - 08 이재민

얼마 전, 카이스트에서 게임 디자인 워크샵을 개최 했다. 게임 디자인 워크샵은 용어에 디자인이 들어갔다고 해서 그저 게임 속 캐릭터에 대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게임 그 자체의 청사진을 그리는 일을 같이 배워보는 시간이다. 그 중 한 프로그램은 마시멜로우 챌린지인데, 마시멜로우 챌린지는 18분 동안 4명의 팀원이 20개의 스파게티면, 90cm의 테이프, 90cm의 실을 가지고 하나의 마시멜로우를 올릴 수 있는 탑을 쌓는 게임이다.[각주:1] 18분이라는 길면 길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사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바로 끝나버릴 수도 있는 짧은 시간에서 참가자들은 서로 스스로의 의견을 내고, 다른 사람의 의견에 찬성 또는 반박하며 팀의 탑을 설계한다. 18분의 시간이 끝나게 되면 어떤 조는 자신의 탑을 자랑스레 공개하고, 어떤 조는 무너져 내린 탑을 보면서 망연자실해 한다. 이러한 결과가 등장하는 데는 많은 요인이 있겠지만, 열린 마음을 가진 조원들이 서로 자연스럽게 힘을 합해서든 빠른 협력을 이끌어 내고 갈등을 최소화 한 조의 성적은 늘 좋다는 것을 보면, 협력하는, 같이의 가치를 만들어 내는 조가 뛰어난 성과를 보이는 것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옛말에 독불장군이라는 말이 있다. ‘혼자서는 장군이 될 수 없다.’라는 의미의 이 말은 혼자서는 다 잘할 수 없으므로 남과 협력해서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농사가 주된 생산인 농경사회였던 우리나라는 농사일은 그 자체의 양이 많을 뿐 아니라 가뭄, 홍수 등 한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일들도 많기에 품앗이, 대규모 치수공사 등 이웃이 서로 협력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왔다. 현대사회에서 또한 우리는 좁게는 수업 조모임에서부터 크게는 각 국이 전 지구적 문제 해결을 위해서 다국적 단체를 만드는 것까지 여러 분야에서 벌어지는 협력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우리는 남들의 신뢰를 이용하면 무언인가 쉽게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다. 나라의 경제가 어려울수록 기승을 부린다는 사기꾼들 역시 남들의 신뢰를 이용하여 불법적인 방법으로 본인의 이익을 취한다. 얼핏 생각하면 저러한 사기의 피해를 미연에 방지하고, 또한 스스로도 남에게서 이익을 얻기 위해 모두가 남을 믿지 않고 협력하지 않는 것이 더 이익이 될 것 같기도 한데 우리는 왜 서로 협력할까?


위의 내용을 간단하고 이해하기 쉬운 숫자로 표현한 것이 바로 죄수의 딜레마이다. 죄수의 딜레마는 두 죄수가 서로 협력할 경우 양쪽 모두에게 3, 한 죄수는 협력, 한 죄수는 배신할 경우에는 배신한 쪽은 5, 협력한 쪽은 0, 마지막으로 두 죄수가 모두 배신했을 경우에는 양쪽 모두 1점의 점수를 얻는 상황을 말한다. 양쪽 죄수 모두의 입장에서는 상대가 협력했을 때 내가 배신한다면 5점으로 최고의 점수를 얻고, 상대가 배신한다면 나도 배신해서 1점을 얻는 것이 유리하다. 따라서 쉽게 생각한다면 어떠한 경우에도 배신하는 쪽이 나에게 유리한 방향이 된다. 하지만 이 상황을 죄수의 딜레마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이 관계가 지속적으로 유지된다면, 또한 상대가 나에게 협력한다면 꾸준히 협력하는 것이 더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각주:2]


이를 수학적으로 증명하기 위해서 로버트 액설로드 교수는 1984, 심리학, 생물학, 경제학, 정치학, 수학 등 각 분야들이 이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서 어떤 상대와 마주치더라도 최고의 이익을 얻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모아서, 그들끼리 임의의 횟수를 경쟁해서 점수를 측정하는 대회를 연다. 각 분야의 최고의 전문가들이 모여서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프로그램들 이었지만 이 대회에서 우승한 프로그램은 단 4줄의 프로그램인 팃포탯(Tit-For-Tat)’이었다. 팃포탯 프로그램은 우선 처음에는 협력한다, 그 후 상대가 바로 전에 협력했다면 협력, 배신했다면 배신한다. 그 다음 상대를 용서하고 그 때 상대가 협력했다면 협력, 배신했다면 배신한다. 이것이 팃포탯 프로그램의 전부이다. 하지만 이 간단한 프로그램은 이 대회에서 우승하고, 2회에서 역시 우승했을 뿐 아니라 그 뒤로 치러진 7번의 대회에서 6번 더 우승한다.[각주:3]


이 대회는 주어진 상황에 대한 프로그램의 대결이다. 하지만 이를 현실의 상호관계에 적용한다면 어떨까. 팃포탯 프로그램의 강점은 우선 협력한다는 점이다. 이 강점은 우리가 상대방을 대할 때 우선 나에게 신뢰를 주는 사람을 지속적으로 신뢰하게 된다는 점과 맞는다. 또 다른 팃포탯의 강점은 상대에 배신에 바로 복수한다는 점이다. 우리가 쓰는 말 중에 줏대가 없어 두루뭉술하고 순하여 남의 비위를 잘 맞추는 사람이라는 뜻의 무골호인이라는 단어가 있다. 물론 이는 상대방의 착하고 순함을 호평하는 단어로 쓰이기도 하지만, 현재에는 사리분별을 못해서 사기를 잘 당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팃포탯의 상대의 배신에 복수하는 점은 무골호인처럼 상대방의 배신에도 지속적으로 당하는 게 아니라 바로 배신에 대한 처벌을 보이는 것으로 상대가 계속 협력하게 한다는 점에서 강점이다. 또 다른 팃포탯의 강점은 그러한 배신을 한번 응징으로 바로 용서하고 상대의 협력에 지속적으로 협력하는 것이다. 이는 상대의 배신을 지속적인 배신으로 끌고 가지 않고 협력하기로 한 상대방과 지속적인 협력을 통해 다시 서로 발전하는 분위기를 이끄는 것에서 그 장점을 찾을 수 있다. 마지막이자 최고의 팃포탯의 장점은 팃포탯을 사용하는 다른 개체와의 대결에서 둘은 지속적인 협력을 통해 최고의 점수를 얻고, 개체 중 팃포탯 전략을 사용하는 개체가 많으면 많을수록 개개인의 점수 뿐 아니라 전체 개체의 총 점수 또한 높아진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서 로버트 액설로드 교수는 개개인이 서로의 이익을 위해서 행동하더라도 자연스럽게 협력이 창발 된다는 사실을 수학적으로 증명했다.[각주:4]


이러한 팃포탯에 의한 상호 협력은 여러 자연 현상에서 관측되는데, 사냥에 실패한 늑대에게 사냥을 성공한 늑대가 아무런 혈연관계가 없음에도 먹이를 나누는 현상이라든지, 피를 빨아온 흡혈박쥐가 피를 구하지 못한 다른 개체와 피를 나누는 등 동물들은 이미 이러한 협력의 힘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인간 역시 마찬가지이다. 1차 세계대전 중 독일과 영국군이 서로 대치하고 있는 참호전에서, 한쪽이 공격한다면 다른 쪽 역시 공격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양쪽에서 모두 사상자가 나올 것임을 알기에, 양쪽 진영 모두 공격을 자제했고, 이러한 기류를 눈치 챈 상부에서 공격명령을 내렸을 때도, 늘 같은 시간, 같은 방향, 같은 정도의 공격을 함으로써 우리는 공격을 하긴 하지만 사실 공격 의사가 없다 미안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여 전쟁 중 때 아닌 평화가 찾아왔다고 한다. 이렇게 서로 직접적인 적대의사를 표현하는 상황에서 조차, 일단 서로 협력하며 일을 진행 하는 것이 스스로에게 더 도움이 되고 사회 전체의 발전에도 더 도움이 된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불경기를 틈타 창업 관련 사기범죄, 보이스 피싱, 인터넷 사기범죄 등 여러 가지로 상대의 신뢰를 배신해 스스로의 이익을 얻는 범죄들이 만연하고 있다. 또한 정보통신의 발달로 인해서 여러 모바일이나 인터넷 범죄의 주요 발생지가 한국이 되었고, 이로 인해 한국은 금융 사기의 온상이 되어서 서로가 서로를 신뢰할 수 없는 사회가 되고 있다. 사회 구성원 간 신뢰도 뿐 아니라, 한국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 역시 사상 최저치를 기록하며 그 수치는 전 세계 평균의 절반 밖에 되지 않는다. 미국의 미래 정치학자 프란시스 후쿠야마 교수는 신뢰는 보이지 않는 가치로서, 부를 창출할 수 있는 사회적 자본으로 해석한다. 북미, 일본 등의 고신뢰 사회에 비해서 한국, 중국 등의 저신뢰 사회는 상대를 신뢰 할 수 없기에 발생하는 심리적인 압박과 그를 방지하는데 들어가는 과다한 비용 때문에 사회적으로 협력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이루어지더라도 효율적이지 않다는 점을 지적한다. 즉 윤리, 신뢰 등의 무형 자산 역시 하나의 사회간접자본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이다.[각주:5]


위에서 말했듯이 우리나라는 현재 주가, 환율,[각주:6] 부동산[각주:7] 등에서 유래 없는 불경기를 맞고 있다. 이를 몇몇 전문가들은 개발도상국 들이 경제 발전 초기 순조롭게 성장하다가 중진국 수준에 이르러 어느 순간 성장이 장기간 정체되거나 오히려 퇴보되는 현상인 성장의 덫에 한국이 빠졌다고 말하는 비관론을 펼치고 있다.[각주:8] 이는 짧은 시간 강력한 성장을 주도해왔던 사회의 엘리트들의 사고가 새로운 시대에는 맞지 않고, 따라서 기업과 정부와의 소통, 국민과 정부와의 소통이 원활 하지 않는 것 또한 하나의 원인으로 제시된다. 위의 팃포탯 전략이 각 개체들이 서로 협력하려는 의지를 보일 때 더 높은 발전이 나오는 것처럼, 프란시스 후쿠야마 교수가 신뢰가 하나의 사회 자본이라고 말한 것처럼 개개인의 발전뿐만 아니라 전 국가의 발전을 위해서도 우리는 사회 구성원, 구성원 하나하나가 같이의 가치즉 상호 신뢰와 상호 협력의 중요성을 아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해야 하는데 앞장서야 한다.



  1. TED, 「톰 워잭, 마시멜로우 게임을 통한 배운 새로운 협동의 형태」, http://www.ted.com/talks/tom_wujec_ build_a_tower.html, 2012. 12. 04. [본문으로]
  2. 이경식 역, 로버트 액설로드, 『협력의 진화』, 시스테마, 2009 [본문으로]
  3. 위의 책. [본문으로]
  4. 위의 책. [본문으로]
  5. 구승희 역, 프랜시스 후쿠야마, 『트러스트』, 한국경제신문사, 1996. [본문으로]
  6. 이데일리, “환율, 15개월 만에 1080원 하회”, http://www.edaily.co.kr/news/NewsRead.edy?SCD=DA15&newsid=02561686599757536&DCD=A00103&OutLnkChk=Y, 2012. 12. 12. [본문으로]
  7. 머니투데이, “부동산 불경기, 전세가율 60%법칙 깨지나”, http://news.mtn.co.kr/newscenter/news_viewer.mtn?gidx=2012121011511681614, 2012. 12. 12. [본문으로]
  8. 한상춘, 한국경제매거진, “한국 경제 ‘성장의 덫’에 빠지나? 주력 산업 위기…정부 정책 신뢰도 하락, http://magazine.hankyung.com/business/apps/news?popup=0&nid=01&c1=1002&nkey=2012110800884000331&mode=sub_view, 2012. 12. 12.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