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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호

[57호] You know that I hate this place but if you wanna stay, I do too - 15서민근

지난 삼월부터 오월까지 ()했다고 생각하는 일 두가지는

1. 연애시 앤솔로지1을 만든 것

2. 아르바이트 끝나고 잠실역에서 신당역까지 걸은 것

 

세 달이 흘렀다.

 

연애시 앤솔로지는 연애편지를 쓰고 싶어하던 친구에게 보내주기 위해 사랑에 대한 시, 소설, 작가들의 인터뷰, 노랫말을 인용해 만들었다.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를 A0사이즈로 변환해 인터넷에서 긁어모은 문장들을 이윤호의 흰색 곰인형 사진, 윌리엄 에글스턴의 벚꽃나무 사진, 그리고 내가 찍은 불법 폐기물 스티커 얼굴에 붙은 곰인형 사진과 함께 띄엄띄엄 배치했다. 지금까지 세 명에게 보여주었고 정작 처음 얘기 나눈 그 친구는 아무런 피드백을 주지 않고 있다.

앤솔로지를 만들기 전에는 박지혜를 많이 모아 나누고 싶었고 그래서 세 편인가 모아두었다.

오래된 골목을 셋이 걸었다

낯선 시간을 셋이 걸었다

할머니의 커피 가게로 들어간다

안녕 마담 안녕 마담 연습하지 않았다

하나와 둘은 G를 셋은 C를 산다

하얀 할머니와 커피 향과 커피를 싼 포장지와 조용한 길 조용한 빵

모두 마음에 들어 말이 없어진다 말 없는 셋

그리고 실소

눈물이 고인다

그들은 점점 노을빛과 닮은 눈빛이 되어간다

지는 해와 해 지는 하늘

노란 알약과 밤의 빛

이유 없이 좋은 것들이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아닌 비밀을 만들고

무언가 말하고 싶은 건 언제나 말할 수 없는 것들이다

사라지는 순간을 붙잡을 수 없는 절망을 아직 고백하지 않았다

오늘은 묘지에 가지 않았지만 내일은 하나 둘 셋이 사랑한 죽은 자들의 집에 갈 것이다

해가 진다

음악을 튼다

하나와 둘은 G를 셋은 C를 마신다

커피와 갈색 장갑

헝가리 접시와 꿈꾸는 불빛

모두 마음에 들어 눈물이 고인다[1]

그리고

너에게 개미를 말했다. 마트료시카를 말했다. 고래를 말했다. 그것은 좋았다.”[2]

 

김행숙의 시는 한 편 모았는데 제일 마음이 간다.

날아오르는 새는 얼마나 무거운지, 어떤 무게가 중력을 거스르는지,

우리는 가볍게 사랑하자. 기분이 좋아서 나는 너한테 오늘도 지고, 내일도 져야지.

어쩜 눈이 내리고 있네. 겨울 코트엔 온통 깃털이 묻고,

공중에서 죽어가는 새는 중력을 거절하지 않네.

우리는 죽은 새처럼 말이 없네.

나는 너를 공기처럼 껴안아야지. 헐거워져서 팔이 빠지고, 헐거워져서 다리가 빠져야지.

나는 나를 줄줄 흘리고 다녀야지. 나는 조심 같은 건 할 수 없고, 나는 노력 같은 건 할 수 없네. 오늘은 내내 어제 오전 같고, 어제 오후 같고,

어쩜 눈이 내리고 있네. 오늘은 할 수 없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그러나 오늘은 발자국이 생기기에 얼마나 좋은 날인지.

사람들은 전부 발자국을 만드느라 정신이 없네. 춥다, 춥다. 그러면서 땅만 보며 걸어다니네.

눈 내리는 소리처럼 말하자. 나는 너한테 안 들리는 소리처럼 말했다가

죽은 새처럼 말했다가

죽은 새를 두 손에 보듬고 걸어가야지.”[3]

 

418일에 근무 마치고 길리안에서 1958 다크 초콜릿 테이크아웃해 잠실나루역까지 마시며 갔다. 잠실철교 건너는 동안 양방향으로 지하철 여섯 대 지나갔다. 강변 구의 지나 초능력 타코야끼 트럭 보고 건대까지 고가 아래 걸었다. 건대입구 앞 롯데백화점에는 데이비드 걸스타인 몇 점 있었다. 그 중 다들 자전거 타는 작품 하나 찍었다. 워프 올려놓고 이곳저곳에서 사진 찍었다. 성수에서는 문 닫힌 모노하 GR1 벽화도 봤다. 뚝섬 지나 성동교 건너는 동안 지하철 두 대 머리 위로 지나갔다. 객차를 채운 흰 빛이 방음벽 보라색 아크릴판을 통과해 빌렁이는 잠시가 잊히지 않아. 그림자와 화분 많이 찍었다. 2012 2013 2014 2015 버스 봤다. 며칠 뒤 서빙고에서 박진형 만났을 때 2016 버스 봤다. 신당에서 전날 갔던 카페가 생각이 나 마지막으로 들렀다. 도착하니 오후 1111분이었고 바로 옆에 사당이 있었던 걸 알았다. 주신당이라고 적혀 있었고 보고 있으니 기분이 이상해져 9초만큼 영상 남겨두었다.

서울 밤거리를 되도록이면 보행친화적이지 않은 가보지 않은 곳 걸어 다닐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차이밍량 영화에서 오토바이 타고 타이페이를 쏘다니는 아이들처럼 어떤 시기 겪어내는 것일까 어떤 삶과 거리를 두어보려는 것일까. 그런 것, 유달라 보이고 싶은 것일지 모른다. 더욱 좋아지고 더욱 잘해지는 어떤 삶 어떤 영역이 있다. 나는 완전히 결별해야 하는 것일까 내부에서 변화를 일으켜야 할까. 알 수 없고 아무리 걸어도 알아지는 것은 아니다.

길을 잃었다는 느낌이 들 때, 우리는 참지 못한다. 그래서 답을 찾아 나선다. . 아주 리 답이 있으면 우리는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답은 질문을 지운다.”[4]

나는 마지막 학기까지 전공에 적응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다른 대안을 추구하지도 않았다. 비올라, 음악비평, 미술 작업, 아무것도 밀고 나가지 못했다. 내가 열정을 가졌다면, 끝을 보지 않았을까?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결국 고백을 하고 마는 것처럼, 예술에 대해, 예술 안에서, 어떤 모션을 취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내가 취한 짓은 바닥을 보며 머릿속으로 패턴을 그리며 종일 거리 걸어다니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었으니, 그만두어야 하는 것인가. 스물여섯에 와서 이런 고백하는 것은, 성공의 반대항으로서 실패를 다시 자각하고 더 깊이 내면화하기를 부러 실천하려는 과정에 놓이는 걸까? ~하기에 환멸을 느끼면서도 정지돈의 말처럼 불능을 통해 세계를 증언하기 위해 더 실패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일까? 그렇지만, 나는 잘 살고 싶기도 한데, 모르겠고, 잘 사는 게 지도 사실 모르겠다.

 

오한기의 『가정법』[5]에서 온갖 폭력과 핍박으로 점철된 삶을 살아가던 화자와 친구들은 자신들을 억압하던 직업학교(a.k.a 재활원)의 버려진 수영장에서 낙원과 같은 이상공간으로 이어지는 비밀통로를 발견한다. 그러나 그들은 유토피아를 발견했음에도 현실에서의 삶을 접지 않는다. 그들은 완전히 떠나지 않지만 그렇다고 기존의 세계에서 할 일이 남았거나 혁명을 통한 전복을 실천하려는 야심을 품은 것도 아니다. 그들은 마치 세계를 버리는 법을 모르는, 그런 선택지는 없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설명되지 않은 의사결정 과정을 통해 그들은숲과 쇼핑몰 지하주차장을 연결시키는 통로를 뚫는 작업에 돌입”(184)하고 사람들을 납치하여 숲으로 끌어들이며, “직업학교를 철거한 뒤 국내 최대 규모의 캠핑장”(224)을 지으려 재활원 매각을 검토하는 회장들을 수영장으로 유인한 다음 숲으로 추락시켜 영원히 가둬버린다. 아니, 그 모든 것들 이전에 그들은 숲에 창조의 씨 리는 도중 틈틈이 직업학교로 복귀하여 그 시스템 또한 유지시킨다. 결말에서는 직업학교의 교장인 토끼 머리, 자신의 비밀을 고자질한 룸메이트 울보를 가 놓은 재활원에 불을 지르고 모두 불에 타버리지만 화자의 또다른 자아라고 할 수 있는병든 소는 폐허가 된 학교에서 나를 기다린다. […] 병든 소가 나를 찾으며 건물과 부지를 떠돈다.”(265) 이 장면에서 한 번 더 병들어 버려진 병든 소는 어떤 한 세계와 어떤 다른 세계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방황하고 화자는 언제나 자기 자신이기도 했던 그에 대한 기술을 포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작가는 그를 기존 세계에 NPC처럼 위치시키는 방식으로 그 세계를 완벽하게 버리지는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나는 어떤 용기로부터 온기를 느낀다.

 

질문에 답을 선고하지 않고 둘을 껴안으면 우리는 순식간에 셋이 된다.

 

그렇지만 지금은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사람도 나를 사랑했으면 좋겠다.

 


[1] 박지혜, 「겨울 산책」, 『햇빛』, 문학과지성사, 2014

[2] 박지혜, 「햇빛」, 『햇빛』, 문학과지성사, 2014

[3] 김행숙, 「새의 위치」, 『에코의 초상』, 문학과지성사, 2014

[4] 클레어 애서턴,「 때때로 우리는 길 잃은 느낌에 휩싸인다」(김혜리 외, 『영화는 무엇이 될 것인가?』, 전주국제영화제, 2021, p.104)

[5] 이후 인용은 모두 오한기, 『가정법』, 은행나무,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