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문산, 적성, 전곡, 와수리, 사창리, 사방거리, 양구, 원통 그리고 신산리까지, 대한민국 육군 가운데 전방 부대에서 복무했던 군필자라면 이들 가운데 한 곳과 매우 친숙했을 것이다. 이 지역들은 접경지역 가운데 규모가 있는 지역들로 군 장병들을 대상으로 하는 유흥업소가 많아서 보통 ‘@@베가스’라는 별명이 붙어있다. 전방에서 복무하는 용사들은 선후임 동기들과 외출, 외박을 나갈 때, 친한 간부님들과 함께 식사하러 나갈 때 항상 이 지역들로 향한다. 일부 부대에서는 접경지역 상인들과 부대가 제휴해서 지역 상생 장병 특식을 실시하고 있다. 특식은 식사 시간에 PX로 향하는 말년 병장들도 병영식당으로 회군하게 만들고, 식당 청소가 당첨된 용사들의 일거리도 줄여줘서 부대원 모두에게 좋은 추억이 되고 있다. 하지만, 접경지역은 전반적으로 물가도 높고, 일부 악질 상인들이 군인들을 상대로 폭리를 취해서 논란이 되었던 적도 많다. 군 생활의 추억과 바가지요금이라는 양면은, 군필자들에게 접경지역을 애증의 지역이 되게 만들었다.
202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저출산 고령화 시대가 열리면서, 지방소멸은 비수도권에서 화두가 되었다. 접경지역 역시 대부분 비수도권인 만큼 지방소멸을 피해 갈 수 없게 되었다. 오히려, 인구 구조적 원인 때문에 다른 지역보다 그 속도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2. 군 병력 감축과 지방소멸
지휘통제실에서 CCTV 근무를 섰을 때, 당시 당직사령님께서 용사들의 의무 복무 기간이 너무 짧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그 이유를 여쭤보니까 예전에는 초소마다 용사들이 들어갔는데 지금은 CCTV로 대체되었다면서 병력이 감축된 게 체감된다고 말씀하셨다. 용사들 역시 중대 인원수가 편제 개편으로 감축되면서, 불침번이나 식당 청소가 많아졌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들어서 군 병력은 대거 감축되고 있다. 상비 병력은 2002년 69만 명, 2017년 60만 명 2023년 48만 명으로, 2002년~2017년까지는 1년에 6000명씩 감축되었지만, 2017년 이후에는 1년에 무려 2만 명씩 감축되어서 과거보다 감축 속도가 더더욱 빨라졌다.
병력 감축의 가장 큰 원인은 저출산 고령화이다. 이 중에서도 2017년부터 현재까지 발생한 급감은 2000년대 초에 발생한 2차 인구절벽의 영향이 제일 크다. 2차 인구절벽의 결과로, 1990년대에 매년 70만 명을 웃돌던 출생아 수는 2000년대 초에 40만 명대로 줄었다. 그 여파는 20년 뒤인 2020년대부터 인구절벽 이후 출생아가 주요 입영자원이 되면서 나타났다. 앞서 말한 당직사령님의 토로와 용사들의 체감은 이 때문일 것이다.
국방부와 병무청은 이미 상비병력 유지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국방부는 2023년에 『국방개혁에 관한 법률』 제25조 제1항에서 상비병력 50만 명을 목표로 한다는 문구를 삭제했다. 그 대신 워리어 플랫폼, 아미 타이거 4.0 사업 등으로 첨단무기체계 도입을 통해 병력을 소수정예화하고, 드론 봇 전투단, 드론 작전 사령부 창설을 통해 무인 무기를 운용함으로써 전투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국군은 국방개혁 2.0으로 입영자원 감소에 대비해서 부대 통폐합도 진행하고 있다. 그 결과로, 2002년~2016년까지는 14년간 6개 사단이 사라졌는데, 2017년~2023년까지는 6년간 8개 사단이 해체되었다.
병력 감축은 접경지역에 치명적인 정책이다. 왜냐하면, 접경지역의 지역 경제는 군부대 의존도가 매우 높기 때문이다. 2021년 기준으로, 강원도 접경지역 5개 군의 인구수 대비 군 장병 비율은 평균 70%이고 가장 높은 화천군은 무려 111%이다. 도내 시군 평균 10%, 접경지역 제외 도내 시군 평균 3.8%에 비하면 비율이 매우 높은 것이다. 군 장병 비율이 높은 만큼 경제 의존도도 높은데, 지난 2019년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육군 3군단이 지역에 끼치는 경제효과는 인제군 총예산의 21.9%, 양구군 총예산의 16.7%나 된다.
접경지역의 지방소멸은 그 특성상 타 지자체들보다 지방소멸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지방소멸의 원인이 군 장병의 감소라서 지자체 차원에서 인구 유인책을 만들어서 대응하는 게 불가능하고, 개발로 지방소멸을 해결하는 것도 군사시설보호구역 때문에 개발이 제한되거나 금지되어서 어렵기 때문이다. 접경지역은 군부대 수가 많은 만큼 군사시설보호구역이 매우 넓어서 연천군과 같이 그 비율이 90%를 넘기는 지역마저 존재한다. 강원랜드의 정선이나 혁신도시를 유치한 몇몇 지자체의 선례를 따르는 것도 불가능한 것이다.
이런 상황 때문에, 접경지역의 지방소멸 시계는 다른 지역보다 빠르게 흐르고 있다. 예를 들면, 화천 사내면, 상서면의 경우, 국방개혁 2.0 이후 지역 군부대가 해체되고 통폐합되면서 군 장병 수가 감소했다. 그 결과, 사내면, 상서면은 최근 5년간 인구 감소율이 각각 12.5%, 11.2%로 7.6%인 여타 화천 지역보다 높아졌다. 인구 감소는 화천군의 두 면뿐만 아니라 접경지역 전체의 문제이다. 2022년에 발표된 『강원도 시군단위 장래인구추계(2020~2040년)』에서 인구 감소가 예상되는 지자체는 8곳인데, 이 가운데 4곳은 폐광촌, 3곳은 접경지역 지자체이다. 이 중에서도 철원은 예상 감소율이 도내 2위로, 태백을 제외한 나머지 폐광촌 지자체들보다도 높다. 한국의 디트로이트라고 불리는 폐광촌과 맞먹을 정도로 강원도 접경지역의 인구 문제가 심각한 것이다. 경기도 접경지역 역시 마찬가지로, 신도시가 있는 파주, 양주를 제외한 동두천, 연천, 포천은 2015년 이후로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3. 대안 및 희망은?
이렇게 군부대에 경제를 의존하는 상황이다 보니, 접경지역은 군부대의 이전 및 통폐합을 반대하고 있다. 실제로 철원군에 위치한 육군 제3보병사단 본부의 이전이 검토되었을 때, 철원군의회는 사단본부 앞에서 부대 이전 반대 시위를 벌이기도 했었다. 하지만, 20년 전에 발생했던 인구절벽으로 인해서 입영자원이 감소한 상황에서, 군부대 이전 및 통폐합을 반대하는 시위만으로는 시계를 되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현실적인 대안은 군 장병 감소를 받아들이고 몇 가지 희망적 소식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첫 번째 희망적 소식은 바로 장병 복지 확대이다. 먼저 병 월급은 정부 정책으로 지난 2017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인상되었고, 현재 병장 월급은 165만원으로 2017년 21만 원에 비해서 대폭 인상되었다. 병 월급이 인상되면서 초급간부 월급 인상 여론도 확대되었고, 그 결과로 정부는 2027년까지 초급간부 월급을 2023년 대비 일반부대는 14~15%, 전방 경계부대는 28~30%까지 대폭 인상하기로 했고, 단기복무 간부한테 지급하는 근무 장려금도 2배로 인상했다. 군 간부 복지 확대는 접경지역 입장에서 매우 희망적인 소식이다. 왜냐하면, 1년 6개월만 부대에서 있다가 떠나가는 용사들보다 간부들의 복무 기간이 길고, 결혼한 간부들은 접경지역에 가정을 꾸리기 때문이다. 이렇게 장병 복지가 확대되면, 장병들의 구매력이 증가하기 때문에 군부대 인근 접경지역의 지역경제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두 번째 소식은 바로 교통 접근성 개선이다. 먼저 경기도 접경지역의 경우, 파주 운정역까지 이어지는 GTX-A선이 올해 12월, 양주 덕정역까지 이어지는 GTX-C선이 2028년에 개통 예정이다. 그래서 교통 접근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되는 만큼 재개발 및 신도시 개발을 통해서 수도권의 베드타운이 될 여지가 존재한다. 이 중에서도 GTX-C선의 경우, 경원선 철도를 공유하기 때문에, 덕정역 이북 동두천, 연천 방면으로 추가 연장이 용이하다. 실제로 동두천시는 미군 부대 이전으로 초토화된 지역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서 GTX-C선 연장을 추진하고 있으며, 연장이 성사된다면 동두천~강남 삼성역 소요시간은 약 30분으로 서울 외곽지역과 비슷해진다. 강원도 접경지역은 춘천~속초선이 2027년 개통을 목표로 건설 중이다. 이 철도가 개통한다면, 이들 지역에서 수도권까지 KTX로 1시간 이내로 이동할 수 있게 된다. 강원도 접경지역은 수도권 규제를 회피할 수 있다는 장점도 가지고 있어서 군사시설보호구역 문제만 해결된다면 기업 유치 측면에서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4. 마치며
내가 군생활을 했던 지역은 바로 양주 남면이다. 남면에 군부대가 있어서 남면의 중심지인 신산리를 들릴 일도 많았고, 그만큼 군장점, 식당 등 신산리 상점 사장님들과도 친해졌다. 앞서 설명했다시피 접경지역은 군 장병 감소라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 놓여있게 되었다. 남면 신산리도 마찬가지로, 양주에서 유일하게 서울행 버스 노선이 없는 교통 소외지역이어서 수도권임에도 불구하고 인구 감소율이 강원 접경지역과 맞먹는다. 그래서 전역 이틀 뒤에 이를 조금이라도 늦춰보고자 양주 남면~잠실역 광역버스 신설 민원을 넣기도 했었다.
하지만, 교통 접근성 개선과 복지 확대로 인한 장병 구매력 확대 등의 소식들도 존재한다. 남면 신산리 역시 신산리와 20분 거리인 덕정역에 GTX-C가 건설될 예정이다. 지자체 차원에서 교통 접근성 개선에 대응해 수요응답형 장병복지택시를 신설하는 방식과 같이 이 소식들을 잘 활용한다면 접경지역의 지방 소멸을 늦출 수 있을 것이다. 접경지역, 그중에서도 1년 6개월 동안 정들었던 양주 남면 신산리가 위기를 잘 극복해 나가길 바라면서 글을 마친다.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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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진아, 이상대, 정대영, 조진현. (2022). 경기도 미활용군용지 공공목적 활용방안 : 연천군을 중심으로. 경기연구원.
- 송금한 (2023년 12월 10일), “초급간부 연간 소득 최대 5천만 원…‘23~27 군인복지기본계획’ 확정”, KBS뉴스,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838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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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종술 (2023년 12월 29일), “강원도, 접경지역 군사시설 보호구역 대폭 해제”, 민중의 소리, https://vop.co.kr/A00001644901.html
- 박은성 (2021년 3월 21일), “"3사단 떠나면 철원 지역경제 나락 떨어져" 이전반대 시위”, 한국일보.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1032110540004687
- 안가을 (2024년 8월 7일), “내년부터 200만원..." 사병 월급만 올리자 생긴 일파”, 파이낸셜뉴스, https://www.fnnews.com/news/202408070703375110
- 류재민 (2023년 12월 10일), ““중견기업 수준” 軍 초급간부 ‘연봉 5000만원’ 시대 온다.“, 서울신문, https://www.seoul.co.kr/news/politics/diplomacy/2023/12/10/2023121050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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