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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호

[60호] 코펜하겐의 공공공간을 소개합니다 - 21 유성경

네 공공공간의 위치

 2023년 1학기에 덴마크 코펜하겐 대학교로 교환학생을 다녀왔다. 즐거운 추억을 남긴, 지극히 주관적으로 선별한 공공공간 네 곳을 소개하고자 한다.

 

1. Reffen

Reffen의 푸드코트 구역

 쓰레기 소각장 위에 스키장을 만들어 유명한 코펜힐에서, 자전거로 6분이면 갈 수 있는 해안가 푸드코트이다. 걸어서는 30분이 걸린다. 자전거 도시 코펜하겐! 자전거 타는 친구 4명은 6분 만에 먼저 가고, 자전거 안 타고 온 언니랑 둘이서 30분을 걸어갔다. 나도 학기 초 자전거를 대여해 봤지만, 차량 옆에서 타는 게 무서워서 한 달치 렌트비를 내고 20분 만에 반납했다.

Reffen에서 보는 바다와 홍콩 와플, 네팔 누들 수프, 그리스 기로스!

 Reffen은 바다를 보면서 전 세계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아주 매력적인 공간이다. 한국 음식으로는 비싼 양념치킨이 있다. 규모가 워낙 커서 푸드코트보다 공원에 온 것 같다. 그런데 잔디와 나무 대신 바다와 일몰이 보인다. 비치된 접이식 의자와 담요를 자유롭게 가져다 원하는 곳에 앉아 바다를 보며 먹을 수도 있고, 테이블석에 앉아서 먹을 수도 있고, 계단에 앉아서 먹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늘진 좌석은 하나도 없었다. 날씨 좋은 날 코펜하겐에서는 햇살 자체를 즐기는 시민들을 자주 볼 수 있다. 북유럽은 여름엔 해가 거의 지지 않고 선선한 반면, 겨울엔 해가 빨리 지고 봄까지도 날씨가 안 좋다. 7월에도 비바람 치는 날엔 니트 카디건을 입고 목도리를 맸다. 그래서 햇살을 쬐는 활동이 더 의미 있어지는 것 같다.

그늘은 필요없는 코펜하게너들(좌) / 그늘이 없어 눈부신 교환학생들(우)

 

 

2. Studenterhuset

건물 외관과 중정의 테라스석

 Studenter는 학생, huset은 집, 직역하면 “학생의 집”이다. 코펜하겐에서 가장 추억이 많은 곳이다. 학생들을 위한, 학생들에 의한 공간이지만, 일반인들도 환영한다. 굉장히 오래된 건물의 다양한 방에서 다양한 학생활동이 일어나는데, 가장 대표적인 공간은 1, 2층에 자리한 카페&펍이다. 직원 한 명과 학생 봉사자들이 팀을 이뤄 낮에는 바리스타로, 늦은 오후부터는 바리스타 겸 바텐더로 봉사한다. 봉사하면 이곳 식품으로 교환할 수 있는 바우처를 줘서 식비를 아꼈다. 코펜하겐의 주요 대학과 제휴를 맺어, 학기 초 학교나 교환학생 단체에서 주최한 모든 행사가 여기서 자유롭게 수다 떠는 걸로 끝났다. 제휴대학 학생들과 봉사자들은 할인을 많이 해 줘서 친구들과 가장 자주 모이는 장소였다. 심지어 주문도 필수가 아닌 선택이었다.

봉사를 하면서 포스기 너머 스윙댄스를 구경할 수 있다. 둥글게 모여 몸을 풀려는 사람들

 화요일 저녁 7시면 스윙 댄스 행사가 열린다. 홀 한쪽의 테이블과 의자를 치우고, 참여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이면, 강사들이 스윙 댄스를 가르쳐 준다. 먼저 둥글게 모여 몸을 푼 뒤, 처음 보는 사람들과 번갈아 춤을 추고, 강습 시간이 지나면 자유 시간이다. 고수들이 춤 추는 걸 보고 있으면 영화 속에 들어온 것 같다. 여기서 스윙 댄스를 보고 나니 다른 곳 스윙 댄스는 시시하게 느껴졌다. 그 밖에도 languae café (자국어를 가르쳐주면서 노는 행사), 중고장터, 비영리단체 홍보, 퀴즈 대회, 드랙퀸 쇼 등 수많은 행사가 열린다. 이 공간 덕분에 더 자주 외출한 교환학생들이 많을 것이다.

중고장터와 드랙퀸 쇼 모두 1층의 카페&첩에서 행해졌다. 1층은 행사마다 분위기가 확 바뀐다.

 

 

3. Københavns Universitet, Søndre Campus

 직역하면 “코펜하겐 대학교 남쪽 캠퍼스”가 된다. 코펜하겐 대학교는 단과대학별로 도시 곳곳에 퍼져 있다. 기숙사도 마찬가지다. 남쪽 캠퍼스에는 인문대와 법대가 있는데, 정말 예뻐서 아직도 이곳 사진을 노트북 잠금 화면으로 쓰고 있다. 그래서인지 밖에서 식사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뷔페형 학식을 먹더라도 접시를 들고 나와 수로변, 계단, 야외 테이블에서 먹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이곳 사람들이 햇살 쬐기를 특히 좋아하는 것도 영향이 있을 것 같다. 

인문대 수로와 자전거 보관소. 사진을 찍으려니 마침 자전거가 없다.

 실외에서 또 눈에 띄는 건 곳곳에 둥글둥글하게 툭 튀어나와 있는 작은 언덕이다. 이 언덕은 지붕이고, 그 아래는 자전거 보관소다. 코펜하겐에서 가장 효율적이고 인기 있고 경제적인 교통수단은 자전거이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지붕 위에 올라가서 햇살을 쬐며 도시락을 먹기도 했다.

 핵심 실내 공간으로는 아트리움이 있다. 수업 전 대기 장소로, 학식을 먹는 장소로, 커피를 마시는 장소로 애용된다. 인접한 교내식당의 주방장(으로 추정되는) 할아버지께서 수요일 저녁이면 social dining이라는 행사를 여신다. 일반인도 참여할 수 있는 행사이고, 매주 다른 나라 음식을 테마로 열린다. 사람들 간의 대화를 유도하기 위해서인지, 자율 배식이지만 뷔페식은 아니다. 처음 온 사람들이 뷔페처럼 덜어가려고 하면 할아버지께서 웃으시며 커다란 그릇을 통째로 안겨 주신다. 음식이 잔뜩 담긴 그릇을 가져가서 원하는 만큼 덜고 그릇째로 테이블에서 돌려 가며 나눠 먹어야 한다. 이러다 보니 "그 후무스 좀 줄 수 있나요?"라는 한 마디라도 더 하게 된다.

아트리움과 소셜 다이닝

 덴마크는 디자인에 자부심이 강한 국가인데, 캠퍼스에서도 그게 느껴진다. 일단 실내가 전반적으로 환하고 알록달록하며, 학교 곳곳에 귀엽고 다양한 소파와 공부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이 많다. 인구밀도가 낮아서 모두 쾌적하다. 독특한 조합도 종종 보이는데, 예를 들어 법대 라운지는 도서관 느낌이면서도 피아노가 있고, 어느 도서관에는 아트리움의 벚꽃나무 모형과 해먹이 있다. 다른 나라에서 온 친구들도 캠퍼스에는 아주 만족했다.

캠퍼스 내 스터디 공간

 

 

4. Bispebjerg Kirkegård

꽃, 묘비, 명소의 조화


 코펜하겐의 모든 공동묘지가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유명한 공동묘지들은 공원 같다. 벚꽃 사진을 찍으러 사람들이 나들이를 오고, 벤치에 앉아 노트북을 하는 시민도 있다. Bispebjerg Kirkegård 역시 벚꽃 시기가 지났음에도 목련꽃으로 화사한 분위기였다. 각 묘지마다 넉넉한 공간을 갖고 꽃나무 등으로 꾸며져 있었다. 공간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이런 공동묘지를 더 조성하기는 어렵겠지만, 고인을 모시는 공간이 밝고, 개방적이고, 휴식을 목적으로 방문하는 공공공간이 될 수 있다는 걸 직접 경험해서 신기했다. 특히 이 묘지는 유명 명소인 교회 Grundtvigs Kirke와 인접해 있어서, 기피시설이 아닌 공원의 느낌이 더욱 강해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