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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호

[55호] 전동킥보드 타고 다니기 - 13 정민승

통학할 때 나에게 가장 큰 난관은 신촌역에서 내려서 학교까지 걸어가는 일이었다. 세상에나, 지하철에서 내린 건 30분이었는데 공 A에 도착하면 거의 55분에 가깝다니. 수업이 대우관에라도 있는 날에는 아주 고역이었다. 그거 아시는지? 몇 년 전에는 학교 정문에서 출발해서 대우관 옆을 지나 기숙사까지 왕복하는 셔틀버스가 있었다는 도시 괴담이 있다. 그걸 놓치면 신촌역에서 정문까지 온 만큼을 또다시 열심히 등반해야 했다.

항상 땀 뻘뻘 흘리며 올라가며 으레 동기들과 이곳에는 에스컬레이터를 하나 놓아야 한다고, 아니면 공항에서나 볼 법한 무빙워크를 하나 설치해야 한다고 분개했던 적이 있었다. 고생하는 학생들을 길옆에서 항상 지켜보고 계셨던 윤동주 시인님도 공감하실 이야기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등반하는 학생들 중 혁신적인 물건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었다. 위이잉하는 조용한 소리와 함께 가파른 안산을 가뿐히 오르는 그것. 물길을 역동적으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 사이의 한 마리 고고한 학과 같은 존재. 전동 킥보드, 세그웨이 등 다양한 형태로 보이는 그것. 퍼스널 모빌리티(PM, Personal Mobility).

 

퍼스널 모빌리티에 대해서 자세히 이야기하려는 글은 아니다. 나도 아직 모르는 부분이 많고, 그것들에 대해서는 수많은 블로거들과 유튜버들이 알려줄 것이다. 파란창을 검색해보시라. 아니, 사실 첨단교통계획 수업을 한 번 듣는 것이 더 좋을 지도 모르겠다. 나는 다만, 내가 이 새로운 물건을 접하며 느낀 점들에 대해서 더 이야기해보고 싶다.

나는 이걸 한강공원에서 처음 타보았다. 남들보다 한참 늦은 시작. 한창 SNS를 뜨겁게 달구다 떡밥이 다 쉬고 없어진 한강 전동 킥보드였다. 킥보드는 생각보다 빨라서 가속 레버를 당길 때마다 몸이 뒤로 밀리는 것이 느껴졌다. 주변에서 보기에는 자전거와 비슷한 속도였는데, 나는 그 어떤 노력을 하지 않고 그 속력에 다다르니 자전거보다 더 빠르게 느껴졌다. 한강 도로에서 자전거와 나란히 달리는데 내가 자전거에 부딪혀서 사고 날 생각보다 내가 운전을 잘못해서 사람과 부딪힐 것이 더 걱정될 정도였다. 물론 시간이 지나니 그런 것은 없어지고 멋진 풍경이 남았다. 과연, 한 번쯤 해볼 만한 경험이었다. 어찌나 빠져들었는지 대여시간보다 15분은 늦게 반납하고 말았다. 맘씨 좋은 사장님은 초과시간을 모른 척 넘겨주셨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한 번 그 속도감을 느끼고 나니 이제는 사고 싶어졌다. 평소에 운동도 안 하는 주제에 지하철역이나 학교는 걸어가야지 하고 나를 말려보았다. 통하지 않았다. 최후의 수단, 월세가 나가는 통장의 잔액을 보았다. , 정말 형편없는 통장이군. 그제야 현실이 나에게 다가왔다.

 

그러다 한 두어 달 전 교내에서 전동 킥보드 대여 사업을 하려 한다는 한 스타트업이 등장했다. 당장 베타테스터 신청을 했다. , 나도 이제 언덕 위 나의 자취방을 걸어 올라가지 않아도 되겠구나. 하지만 그 스타트업의 야망은 안전문제를 우려한 학교의 반대에 무너졌고, 나의 최소한의 운동도 계속 이어지게 되었다. 학교의 반대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학교 안에 그 빠른 것이 보행자들과 혼재되어 있으면 사고가 안 날 수가 없다. 속도 차가 심한 보행자와 킥보드는 분리할 필요가 있는데, 아직 그런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기야 국가도 아직 퍼스널 모빌리티에 대한 뚜렷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데 일개 대학이 어떻게 하겠는가. 그저 이러한 문제를 예견하지 못한 스타트업이 원망스러울 따름이었다.

 

그러다 얼마 전 강남을 걷는데 똑같은 모양의 킥보드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킥고잉이라는 전동 킥보드 대여업체의 킥보드였다. 이제는 따릉이 자전거처럼 서울 도심에서 전동 킥보드를 빌려서 짧은 거리를 돌아다닐 수 있었다. 버스나 지하철이 이어주지 못하는 이면도로에서의 교통을 이제 퍼스널 모빌리티가 담당하는 세상이 오고 있는 것이다.

나도 한번 써보고 싶어서 앱을 설치해 보았는데 기본료 1000원에 5분 이후 1분마다 100원씩, 생각보다 괜찮은 요금이었다. 환승은 안 되겠지만, 대중교통과 비슷한 요금이었다. 그런데 막상 타려고 했더니 이걸 과연 속도를 내서 탈 수 있을까 싶었다. 이걸 과연 도심 어디에서 탈 수 있을까. 강남과 같이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에서 인도에서 탈 수도, 그렇다고 차량도 많은 10차선 도로 위에서 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업체는 이면도로 내부에서 이용하기를 권장하지만, 강남은 이면도로도 통행량이 무척 많다.

애초에 우리나라의 관련 규정이 참 답답한 면이 있다. 자전거도 차도를 이용할지 인도를 이용할지도 사용자가 느끼기에는 확실하지 않다. 그렇다고 자전거도로가 완벽히 확충되지도 않았고, 자전거가 안전을 보장받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은 상태이다. 더욱 오랫동안 교통수단으로 이용해온 자전거조차 상황이 이런데, 아직 제대로 된 규정조차 마련되지 않은 퍼스널 모빌리티는 더욱 상황이 열악하다.

 

언제쯤이면 이런 훌륭한 기술들을 법규나 정책들이 가로막지 않는 날이 올 수 있을까. 하루빨리 내 자취방을 편리하게 오르내릴 수 있는 날이 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