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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호

[55호] 10번째 사람 - 18 신정범

책을 쓰는 친구의 원고를 잠깐 본 적이 있는데 영화 월드워Z에서 나오는 이스라엘의 10번째 사람(10th man)이라는 개념이 등장했었다. 10번째 사람이란, 9명의 사람이 찬성하는 의견에도 반대표를 던져서 일어나기 희박한 상황마저도 대비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영화에서는 10번째 사람 덕분에 이스라엘에 좀비들을 막을 수 있는 벽을 건설한다. 원고를 읽고 감명받아서 10번째 사람과 비슷한 구조에 대해 더 찾아보았다. 가톨릭에서는 10번째 사람이 악마의 변호사(Advocatus Diaboli)라는 직책으로 나타난다. 악마의 변호사는 어떤 인물을 성인으로 추대하는 과정에서 그 인물이 성인이 되기 위해 행했던 기적들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 반대자의 임무를 수행한다. 심지어 마더 테레사의 시복[각주:1]조차도 그 당시 대표적인 언론인이었던 크리스토퍼 히친스가 악마의 변호사를 행했었다.

요즘 SNS나 현실 세계에서는 여러 안건으로 뜨겁다. 물론 대부분의 이야기가 4~5년 전에 환경문제가 뜨거웠고 요즘엔 잠잠하듯이 단순히 몇 년 후에는 사그라지는 주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들이 필수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하는 문제일 수도 있다. 1900년대 중 후반에는 과학에 부작용을 무시하고 기술의 발전만을 생각했었다. 그 시대의 대다수는 그것을 당연시 여겼지만 레이첼 카슨은 침묵의 봄에서 최초로 과학의 부작용에 대해 문제점을 제기했다. 몇몇 언론인과 과학자들은 시류에 맞지 않고 과학발전을 저지하는 레이첼 카슨을 비난했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그 책으로 인해 DDT의 심각성을 깨닫고 과학의 환경파괴 부작용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침묵의 봄의 내용 중엔 과학적으로 틀린 사실도 있고, 이 책 이후에 사이비 과학이나 극단적인 과학 혐오자, 극단적인 환경 운동가들이 생겼지만, 만약 과학의 부작용에 대해 여전히 사람들이 둔감했다면, 지금의 상황보다 더한 최악의 결과로 이어졌을 것이다. 현재 제기되는 문제들 역시 레이첼 카슨과 같은 10번째 사람, 악마의 변호사들이 모두가 당연시하던 생각들에 반대표를 던졌기에 시작되었다. 우리는 이런 문제점들에 대해 깊게 논의해봐야 하며 근거 없이 침묵의 봄을 비난했던 언론인, 과학자들과는 다르게 행동해야 한다. 물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중에 부작용이 발생하고 극단주의자들이 생길 수는 있지만, 이는 문제 제기의 타당성과는 무관하다. 그렇다고 무작정 모든 제기된 문제들에 대해 동의해서도 안 된다. 항상 악마의 변호사가 옳지는 않기 때문이다. 마더 테레사가 성인이 아님을 증명해야 하는 사람도 존재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당연하게 여겼던 생각에 문제 제기하는 활동 자체에 익숙해져야 하며 제2의 레이첼 카슨이 될 가능성이 있는 수많은 10번째 사람들이 상정한 문제를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다.

 

  1. 교회가 공경할 복자로 선포하는 일. 거룩한 삶을 살았거나 순교한 이에게 복자 칭호를 허가하는 교황의 공식 선언. 시복은 로마 교황청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 결정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