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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호

[55호] 도시공학은 선택의 이정표가 되어주곤 한다. - 15 서성주

드라마 ‘SKY 캐슬보셨나요? 2018년 연말의 안방극장을 책임진 이 대세 드라마의 이름을 다들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학문 정진의 장, 아니 현실적으로 성공의 지름길이라 불리는 좋은 대학을 가고자 하는 여러 등장인물의 미친듯한 노력을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입시 코디라는 전문 인력을 활용하면서까지 서울의대를 추구하는 강예서(김혜윤 분)네 집안을 보고 있자니 많은 사람이 분노하면서도 씁쓸해합니다. 비록 자세한 내용은 스포일러가 될까 봐 서술하지는 않겠습니다만, 이 드라마에서 인용하고자 하는 부분은 바로 예서 집안의 내적 갈등입니다. 어느 날 사회적 평판이 매우 좋던 황우주(찬희 분)는 다른 친구를 살해했다는 누명에 쓰였습니다. 그는 물론 예서에게도 친절하게 잘 대해주었습니다. 그렇기에 예서네도 진실을 밝힘으로써 그의 억울함을 풀어주고자 합니다. 그러나 사실을 밝히기에는 많은 용기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진실이 밝혀지면, 예서의 부끄러운 민낯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자신의 밝은 미래를 향해 나아갈지 아니면 이를 포기하고 어둠 속에 있는 우주에게 빛이 되어줄지 선택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경우를 많이 보고 경험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선택을 많이 합니다. (Birth)과 죽음(Death) 사이에는 무수한 선택(Choice)이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 말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선택을 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 제약조건이 있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제한된 돈을 가지고 우리가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할 수는 없습니다. 10,000원을 손에 들고 있다면, 그 돈으로 음식을 사먹을지, 영화를 볼지, 책을 구매할지 선택해야 합니다. 이를 다시 생각해보면, 선택이라는 것은 결과적으로 포기하는 것(기회비용)을 동반합니다. 이는 선택을 더욱 신중하게 하도록 하고, 심지어 요즘에는 선택 장애라는 신조어까지 생길 정도로 결정을 어렵게 만듭니다. 만약 이러한 선택의 순간이 단순히 식사 메뉴를 결정하는 걸 넘어서 자신의 진로, 그리고 미래를 결정짓는 상대적으로 중요한 때라면, 그 고민은 더더욱 난제로 느껴질 것입니다. 바로 예서의 경우가 그렇다고 볼 수 있지요.

우리 사회 또한 여러 선택의 순간을 겪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선택은 마찬가지로 제약조건 아래에서 가장 바람직한 결과를 도출하고자 할 것입니다. 신중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 우리는 여러 수단을 활용하곤 하는데, 수업시간에도 배우듯이 대표적으로 우리는 계획이라는 방법을 활용합니다. Paul DavidoffThomas Reiner에 따르면 계획이란, 연속적인 선택을 통하여 적절한 미래 행동을 결정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합니다.[각주:1] 다시 말해, 더 나은 미래를 추구하기 위하여 계획을 세워 지금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가 바로 우리가 지닌 시간과 돈과 같은 자원들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죠. Lee에 따르면 이러한 계획의 과정은 4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고 합니다. 시스템 묘사 및 문제의 정의(1단계), 대안 탐색 및 분석(2단계), 평가 및 선택(3단계), 집행 및 점검(4단계). 선택 행위 직전 단계를 보면 선택을 위해 여러 대안을 수립하여 서로 간에 비교·분석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 비슷한 맥락에서 사업의 추진 여부를 신중하게 결정하고자, 예비타당성조사라는 제도를 이용합니다. 대규모의 자원 특히, 공공 재원이 투입될 것으로 예상되는 사업에 있어서 사전에 경제성을 검토함으로써 세금 낭비가 아닌 효율적인 투자로 이어지도록 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더 나은 선택을 추구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이처럼 우리가 흔히 해오던 선택의 결과가 모두 사전에 예상이 될까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비록 드라마에서는 예서의 선택이 불러올 결과를 알고 있기에 더욱 고민합니다. 특히, 많은 여러 연관된 사연들이 예서네 사람들로 하여금 죄책감을 느끼게 만들어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려는 마음을 저지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례도 여럿 있을 겁니다. 오히려 자신의 이익 추구가 불러올 결과 특히, 타인에 대한 영향을 쉽게 체감하지 못할 것입니다. 부동산을 투자수단으로 활용하는 때도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분명 부동산 자산도 금전적 가치를 무시할 수 없기에 투자수단으로의 활용 가능성이 없을 수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다만, 이러한 투자가치가 너무 부풀려지는 경우, 즉 집값이 턱없이 높아 실제로 해당 건물에서 거주하고파 하는 사람들조차 소유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부동산 투기꾼들의 선택 하나하나로 인해 실수요자들이 피해를 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투기꾼들은 그러한 피해가 어떠한지 체감하기 쉽지 않을 것이고, 그래서 예서네처럼 고민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추가로 선택의 결과가 전부 예상된다고 하더라도 신중해야 하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국가의 정책을 결정한다고 하였을 때, 이를 둘러싼 복잡한 이해관계가 엮여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카풀이라는 새로운 제도를 수용하고 지향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수립하면, 동시에 택시라는 기존 산업의 위세가 약화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QR코드 결제와 같은 간편결제 서비스의 등장이 체크카드 및 직불카드 등의 기존 수단에 미칠 영향이 없으리라는 보장은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새로운 기술 및 산업의 도입을 반대하고 저지할 수는 없습니다. 이처럼 하나의 선택이 한 쪽에는 긍정적인, 다른 쪽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경우도 많기에 예서의 고민과 같이 우리는 어떠한 선택을 할지 심사숙고해야 합니다. 특히, 그 영향력이 사소하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더욱 찬찬히 그 결과와 부작용 등을 예상하고 대응책을 고민해보는 등의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한편, 예서의 선택 과정을 살펴보면, 예서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측면에서만 고민하려 하지는 않습니다. 감정적인 측면까지도 고려하기에, 즉 양심과 죄책감이라는 요소를 고려하기에, 예서는 쉽사리 진실을 묻어버리고 서울의대를 진학하겠다는 결정을 내리지 못합니다. 과연 이러한 결정이 매우 비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항상 이성적인 사고 중심적으로만 세상을 살아나가야 할까요? 계획을 해오던 계획가들도 앞과 같은 고민을 해왔던 것 같습니다. 수업시간에 배우는 계획이론의 역사를 살펴보면, 과거에는 효율성과 합리성을 추구하는 합리적 계획 방법을 지향했다면, 점차 당사자들의 입장도 고려하는 의사소통적 계획 방법도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고려해야 할 현실 요소가 더욱 늘어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서술한 바와 같이, 선택이라는 행위는 예서의 고민과 같이 매우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인생에서의 선택도 그러하지만, 사회의 미래를 결정하는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로 선택은 신중해야 합니다. 우리가 도시공학과에서 배운 내용에 대해 거리감이 들더라도, 수업시간에 나오는 여러 내용은 앞길이 막막한 가운데 그나마 점자블록의 역할을 해주기도 합니다. 그만큼 도시공학이라는 분야가 사회 전반과 많이 연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또 도시공학은 전문적이지는 않게 보일 수 있어도 광범위하게 사회 기저에 깔려있습니다. 만약 도시공학에 회의감이 든다면, 좌절하지 말고 인생의 새로운 선택을 내리는 데에도 그 바탕으로 활용할 수 있길 바랍니다.

  1. (John Dakin, 2007) John Dakin (1963) An Evaluation of the “Choice” Theory of Planning, Journal of the American Institute of Planners, 29:1, 19-27, DOI: 10.1080/01944366308978033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