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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호

[55호] 「토지이용계획」 수업을 듣고 - 17 최원준

전공 필수 과목이 아닌데도 들은 건 실무적으로 적지 않게 배울 텐데 좀 힘들어라는 선배의 조언 때문이었다. ‘힘든 건 선배가 힘든 거고 난 수업 열심히 들어서 많이 배워가야지라는 내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이 수업을 통해 도시 계획수업이나 국토 및 지역 계획에서 배운 계획이론, 교통공학교통계획에서 배운 지식이 어떻게 실제 도시에 적용되는지 배웠다. 그러나 선배의 말은 엄살이 아니었다. 중간고사 공부는 일주일 치 식량을 하루 만에 먹는 느낌이었고 기말 발표 때는 손목이 아플 정도로 캐드 작업을 했다. 그래도 다 끝나고 옹기종기 모여 햄버거 먹으면서 완성된 토지이용계획도를 볼 땐 다 큰 자식을 보는 것 같았다. 얘들 중에선 내 자식이 가장 이뻐 보이는 것까지. 이 글은 토지이용계획을 수강하지 않은 (혹은 못 한) 사람들에게 주는 정보 문이며 나한테 있어서 복기 문이다.

수업은 크게 중간고사와 중간발표, 기말 발표로 나뉜다. 중간고사 땐 토지 이용과 토지이용계획의 개념이 무엇인지, 어떤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지, 도시를 설계하는 데 무엇이 필요하며 얼마만큼 필요한지 이론적으로 배운다. 중간발표는 기말 발표를 위한 준비 과정인데, 실제 도시의 토지이용계획도를 보고 해석하는 방법을 배운다. 토지이용계획 수업의 하이라이트는 기말 발표이다. 수업 시간에 배운 지식으로 실제 개발예정지구를 대상으로 토지이용계획을 직접 해보는 시간을 갖는다.

이번 학기는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 2지구를 대상으로 토지이용계획을 진행하였다. 대상지는 다음과 같다.

설계 대상지, 정말 쉽지 않게 생겼다. 누구는 펭귄을 닮았다고도…

저 빈 땅에 적당한 크기로, 적절한 위치에 도시에 필요한 시설을 넣어야 한다니. 정말 맨땅에 헤딩하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 싶었다. 가장 고민이 되는 건 교통망이었다. 도시 시설은 정해진 면적을 짜인 교통망에 넣으면 되니까 비교적 단순하다고 생각했지만, 맨 처음의 교통망을 어떻게 짤지가 막막했다. 토지이용계획을 붕어빵 만드는 데 비유하자면 교통망을 만드는 건 붕어빵 기계를 만드는 것 같다고 할까. 두 번째로 어려웠던 건 도시만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었다. 우리 도시만의 장점을 찾아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게끔 해야 했다.

그다음으론 정해진 면적에 따라 용지를 배분하면 되었다. 앞의 두 과제에 비해 막막하진 않았지만, 도시 시설들이 최대한의 외부효과를 낼 수 있는 입지를 찾기 위해 여러 번 수정하였다.

가령 녹지의 위치는 남과 북이 조화를 이루며 외부의 녹지와 연결이 되어야 했다. 공동주택의 위치는 고속도로와 너무 가깝지 않게 하면서도 서울까지의 접근성을 높여야 했다. 상업은 최대한의 수요가 발생할 곳을 예측해서 입지를 선정해야 했다. 학교는 주택가와 가까우면서도 상업에 너무 가깝지는 않게 위치해야 했다. 도시 내부의 조화뿐 아니라 밤섬 유원지와 왕숙천과 오남천, 이마트와 지식산업단지 등 도시 외부의 조화도 신경 써야 했다. 그렇게 기말 발표날이 다가왔다. 동일한 대상지, 동일한 면적 배분에서 얼마나 다양한 토지이용계획도가 나왔을까?

우리 조의 토지이용계획도
다른 조의 토지이용계획도

보다시피 각 조의 특징이 확연히 드러나는 결과물이 나왔다. 붕어빵에 비유하자면 붕어빵을 만드는 기계는 똑같은데 속의 앙금은 각각 다르다고 할까? 일단 우리 조는 팥으로 만든 일반 붕어빵은 아니었다. 호주의 캔버라를 연상시키는 육각형 교차로와 속속들이 뻗어있는 내부교통이 우리 조의 특징이다. 가장 통과교통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역세권 근처에 육각형 도로망과 상업 용지를 배치해 상업의 활성화를 도모하였다. 외부의 두 산과 밤섬 유원지가 연결되도록 녹지 축을 배치하였고, 업무지원용지는 지식산업단지에 최대한 가깝게 배치해 지식산업단지의 외부효과를 최대한 이용하고자 하였다. 공공청사는 중앙에 배치해 접근성을 최대한 높이고자 하였다.

우리 조는 형태적 완결성을 중시해 가운데에 육각형의 도로망을 중심으로 교통망을 짰지만, 다른 조는 교통망을 중심으로 시설을 배치했다. 이 조는 교통망이 직관적이고 간결하면서도 위계가 잘 잡혀 있고, 블록의 크기도 적합하게 나눈 것 같다. 역시 높은 녹지비율로 녹지 축의 연결을 도모하였고 학교가 잘 분산되어 있어 일반 거주민들이 이용하기 편리한 도시를 만들었다. 토지이용계획도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지하터널을 만들어 녹지 축이 단절되지 않게끔 하는 특화계획도 참신했다.

위의 두 토지이용계획도 말고도 두 개가 더 있었으며 각자 다른 색을 띠고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곰곰이 생각해봤다. 똑같은 대상지에 똑같은 비율로 나누었는데 결과물은 왜 이렇게 다를까? 이유는 두 번째 산을 넘는 방식, 즉 도시의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조마다 중요시한 게 달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조는 육각형의 형태를 핵심 뼈대로 삼아 거기에 이야기를 붙여 나갔다. 육각형 모양의 교차로와 6개의 도시 테마. 육각형 내부에 커뮤니티 센터를 위치시켜 6개의 조화로운 테마가 사람들 간의 화합을 유도한다는 이야기를 담았다. 위의 조의 경우, 화합을 유도한다는 생각까진 같았으나 구현 방식에서 차이가 발생했다. 원활한 교통망으로 도시 내부와 외부를 연결하는 것이 화합이라고 본 것이다.

살고 싶은 도시를 만드는 건(물론 살고 싶은 도시에 대한 정의가 각자 다르지만, 경향적으로) 그래서 어려운 것 같다. 도시의 미시적인 부분은 수적이고 계산할 수 있다. 가령 상업 업무 용지 수요추정은 다음과 같이 계산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미시적인 부분을 포함하는 도시의 거시적인 목표는 수나 방정식으로 계산할 수 없다. 가령 세종시의 도시 건설 이념은 상생과 도약, 순환과 소통의 도시 건설 이념 아래 더불어 잘사는 공생의 도시 추구이다. 상생, 도약, 순환, 소통은 무엇인가? 사전에 쓰인 정의가 정말 이 단어의 본질인가? 그러나 이 명확하지 않은 개념들이 실제 계획에선 영향력을 미친다. ‘인간과 생태계가 함께 순환하는 도시라는 도시개발 방향은 시민들이 자연과 생태환경을 느낄 수 있는 공원을 개발하게 하고 이는 주요 동식물 서식지와 자연경관을 보존한다. 도시의 미시적인 부분도 변한다. 예를 들어 참여와 교류가 활성화된 소통에 방점을 찍으면 공공청사의 평균 층수가 내려갈 것이다.

따라서 나는 계획가의 언어가 신중히 사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문장 내지는 한 단어가 실제로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계획가의 언어 감수성은 어떻게 늘릴 수 있을까? 경험을 다양하게, 오롯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민이 조화롭게 잘 사는 도시라는 말을 사용하려면 말이 책상 위가 아닌 발아래에서 완성될 수 있게끔 다양한 계층의 사람을 만나보며 경험의 폭을 넓히는 것이다.

경험을 오롯이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하다. 가령 저소득층 가정에서 갖은 고생을 하며 성공한 계획가는 그렇지 않은 계획가보다 저소득층 복지 증대를 중요하게 여길 것이다. 그러나 다른 계획가들이 이 모든 것을 종합해 최대한 객관적으로 파악했을 때 저소득층 복지 증대가 우선순위가 아니라면, 그리고 그 결론을 거부하는 이유가 본인의 경험이라면 힘들더라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는 이상적인 말이다. 또 모든 경험을 다양하고 오롯이 받아들인다고 상생이나 도약이 무슨 뜻인지 완벽하게 느끼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시간과 노력과 감수성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말 좋은 계획가라면 이러한 방향성을 지니고 이상과 현실의 틈을 줄일 수 있도록, 옳은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 확인하며 조금씩 조금씩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