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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호

[55호] 공정한 판단 속 착각 - 18 김지수

2016년 세계 경제포럼 회장인 클라우스 슈밥이 클라우스 슈밥의 제 4차 산업혁명이라는 이름의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을 완전히 바꿔놓는 책을 내놓았다. 4차 산업혁명은 이전 산업 혁명이 요구했던 단순한 암기를 통한 업무 능력이 아닌 창의성을 요구한다고 슈밥은 말한다.[각주:1] 반도체산업과 IT산업을 세계적으로 이끌고 있는 한국이 계속 주도권을 유지하고 그 기술들을 발전시키려면 창의성을 향상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초등, 중등, 고등교육 12년의 결과로 우리는 대학에 진학한다. 그 결과를 증명하는 수단인 대입제도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각주:2]

 

 

현재 정시와 수시의 학생 선발 비율에 대한 논쟁이 격렬하게 일어나고 있다. 20175월 문재인 정부가 수시전형 비율 확대라는 목표를 내걸고 대입제도의 문제점을 대폭 개선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움직임에 따라 큰 노력을 수시에 쏟으려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나는 수시 제도와 정시제도 모두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수시 제도의 문제점에 무엇이 있는지 먼저 알아보자. 이 전형에 응시하는 학생은 생활기록부에 기재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해야 하는 자기소개서, 일명 자소서를 생활기록부와 함께 대학에 제출해야 한다.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의 자소서보다 뛰어난 자소서를 만들기 위해 자소서학원에 다니며 그 내용을 보충한다. 문장이 어색하거나 표현이 어색한 경우에 다듬는 것을 도와주는 학원이면 큰 문제는 없다. 그러나 학생들은 학생부의 상당히 많은 부분을 고치며 자신도 생각지 못한 특이사항, 특징 등을 가지게 된다. 여기서 한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학생들이 조작된 자기 자신을 만들어 갈수록 대학이 원하는 인재상에 가까워가는 만들어진 자신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자신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을 하나라도 자소서에 쓰는 순간 이 전형은 잠재력을 지닌 창의적인 학생을 선발하려는 목적을 잃어버리게 된다. 수시전형은 창의적 인재를 선발할 능력을 잃어버렸다.

대입제도 중 정시제도인 대학수학능력시험의 문제점은 또 어떠한가. 1950년대, 세계 전쟁사에 참혹한 전쟁 중에 하나로 기록된 한국 전쟁을 겪은 우리는 다른 나라의 발전된 산업을 따라가기 급급했다. 자동차산업, 선박산업, 섬유산업 등 제조업 분야에서 외국 기업들의 기술과 운영방식을 따라 했다. 기술들을 그대로 배워 따라 하는 것만으로도 외국 기업들과 어느 정도 경쟁을 할 수 있었고 심지어 그들보다 앞설 수 있었기에 서론에서 말했듯이 창의성 없이도, 자신만의 생각 없이도 단순 암기를 통한 메뉴얼에 따르기만 하면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세계는 지금 창의성을 요구하고 있다. 로봇, 인공지능은 4차 산업혁명을 몰고 오면서 반복적 인지 업무만 수행하면 성공할 수 있었던 산업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다. 인간은 반복적인 업무를 로봇, 인공지능보다 더 잘 할 수 없는데 그러므로 그 의문은 인간이 산업에 꼭 필요한가에 대한 질문인 것이다. 인간이 존립 위기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능력은 창의성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모두 단순 암기 한 내용을 얼마나 정확히 시험시간에 출력해 내 사회적으로 인정받은 명문대학에 입학하는 것을 목표로 공부한다. 대입 시험은, 특히 수능은 60만 명의 암기력을 근간으로 하는 단순한 지적 활동만을 측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주어진 다섯 개 항목 중 하나의 정답을 골라내고 이를 컴퓨터로 채점해 60 만여 명의 학생을 한 줄로 세우는 현행의 수능 제도는 창의력을 기르는 측면에서 최악이다. 흔히 말하는 최상위권 대학, SKY에 들어가기 위해 학생들은 자신의 특징과 장점이 무엇인지 모른 채 혹은 알아도 국수영탐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은 최대한 개발하지 않는 방법으로 수능 공부에만 집중하고 있다. 문제는 책상에서 해결되지 않는다. 한국 학교의 시험은 학생의 창의력을 평가하지 않는다. 미리 정해진 정답을 명확하게 입력했는가를 평가한다. 학생들은 비판적 사고력을 키우는 진정한 배움의 기회를 얻지 못한다.

 

수능은 객관성과 공정성이라는 이유로 대입정원의 수시 비중을 줄이고 정시 비중을 늘리자는 담론의 주요한 논리가 되고 있다. 학종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보다 그나마 공정하다는 수능은 이제 물리쳐야 할 적이 맞는가. 그렇다. 학생들은

학교생활 안에서 이루어지는 의미 있는 학습, 활동, 만남 등을 통해 많은 변화와 발전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다양한 발전을 측정하기 위한 척도인 시험에서 암기력을 근간으로 하는 단순한 지적 활동만을 측정한다. 이는 다시 학교생활에 영향을 주어 학교에서의 교육 활동을 지나치게 단순화한다. 그 결과 의미 있는 많은 교육 활동을 무가치하게 만들고 학교 밖에서의 사교육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악순환을 되풀이하고 있다. 학생들이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감수하는 불이익에 비해 사회는 그만큼의 보상을 해주지도 않는다. 명문대학교에 나와도 현재 대학 졸업자가 20%에 불과한[각주:3] 지금의 사회는 아직도 대학의 레벨을 따지고만 있다. 대학교에서도 자신들의 학교 레벨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들의 교육이념과는 다르게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많이 벌까만 고민하고 있다. 대학의 의미가 무엇인가. 자신의 독창적인 능력, 숨겨진 재능에 지식을 더해 주어 날개를 달아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 곳이 대학이다. 하지만 지금은 날개를 달아주기는커녕 자기의 학교에 입학하려는 학생들에게조차 수능의 단순한 지적 활동만 요구하고 학생부 종합전형의 자기 자신을 조작하는 방법을 알려 주고 있다.

 

201851일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2020학년도 대학입학 전형 시행계획을 발표하면서부터 대입제도 수시, 정시 비율을 놓고 대입제도 개편 국민제안 열린 마당등 학생, 학부모들이 참여할 수 있는 많은 회의가 열리고 있다. 지금 수시 비중을 어떻게 하고 정시 비중을 어떻게 하자라며 갑론을박할 때가 아니라 창의적인 학생을 뽑기 위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당장은 어렵겠지만 이는 4차 산업혁명의 시기에 한국의 학생들이 세계적 사회에 진출하여 경쟁력 있는 인물이 되기 위해, 부차적으로 한국이 세계적인 국가로 거듭나기 위해 꼭 해야만 하는 일이다.

 

  1. 클라우스 슈밥의 제 4차 산업혁명, 클라우스 슈밥, 송경진 옮김, 새로운 현재, 2016, pp. 10~25 [본문으로]
  2. 정시와 수시, 두 가지가 있다. 정시전형은 1994년부터 한국 평가원이 출제한 시험을 치러 그 결과에 따라 대학에 입학하는 전형이고 수시전형은 수시 선발 전형의 줄임말로 정시를 치르기 이전에 대학에서 자기 학교에 입학할 학생을 미리 선발하는 전형이다. 수시전형에는 학생부 전형, 논술고사, 특기자 전형 등이 있는데, 학생부 전형은 고등학교 생활기록부에 기재된 내신성적과 특기 사항 등을 정성 평가하여 학생들을 뽑는 전형이며 논술 고사는 특정 주제에 대한 의견의 서술이 얼마나 논리적인가를 평가하여 학생들을 뽑는다. 마지막으로 특기자 전형은 학생의 특이적 사항으로 학생들을 평가해 학생들을 뽑는 전형이다. [본문으로]
  3. 대학생 다섯 중 하나는 졸업하자마자 실업자, 아시아경제, 2018. 04. 22.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8042209485098763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