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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호

[56호] 부잣집 가는 길 On The Way to Rich House - 15 서성주

부잣집 가는 길 On The Way to Rich House. 글을 쓰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내 귀에 울려 퍼지는 음악의 제목이다. 제목만으로는 도대체 무슨 곡인지 감을 잡기 쉽지 않을 것이다. 바로 영화 기생충Soundtrack이다. 살인의 추억과 괴물, 마더 등 무수한 명작을 연출하여 한국 영화의 한 획을 그은 거장인 봉준호 감독의 2019년 작품인 영화 기생충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전원백수로 살 길 막막하지만 사이는 좋은 기택(송강호) 가족. 장남 기우(최우식)에게 명문대생 친구가 연결시켜 준 고액 과외 자리는 모처럼 싹튼 고정수입의 희망이다. 온 가족의 도움과 기대 속에 박사장(이선균) 집으로 향하는 기우. 글로벌 IT기업 CEO인 박 사장의 저택에 도착하자 젊고 아름다운 사모님 연교(조여정)가 기우를 맞이한다. 그러나 이렇게 시작된 두 가족의 만남 뒤로, 걷잡을 수 없는 사건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출처| 네이버 영화

위의 배경음악은 기우가 박 사장 집으로 향하는 장면에서 쓰인 것으로, 묘하게 기묘한 분위기를 느끼게끔 한다. 아마도 가난한 동네에 사는 기우가 부자 동네에 가면서 느끼는 감정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다. 자신이 흔히 보던 동네와 달리, 새로운 분위기의 동네를 접하는 기우는 마냥 편안하고 자연스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우리로 치자면 학년이 올라 새로운 학교에 진학하는 느낌과 비슷할 것이다. 분명 설레고 기대되는 감정도 있을 것이고, 걱정되고 겁나는 감정도 있을 것이다. 여러 감정이 복잡 미묘하게 섞여 들어가며 익숙함보단 어색함이 더 클 것이다. 특히나 대학교를 진학하는 경우엔, 본인이 원래 살던 동네가 아닌 다른 지역으로 옮겨오는 경우가 많으니 더욱 그럴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한평생 자신보다 훨씬 부유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를 겪어보기 어려웠을 기우는 과외 선생으로서의 첫 감정과 더불어 색다른 동네에 대한 어색함을 느꼈을 것이다.

동네라는 단어 자체가 그렇다. 자신이 사는 집 주변을 의미하니, 당연히 동네를 벗어나는 순간 우린 낯설다는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다. 자신의 동네라고 인식하는 범위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최소한의 자신이 익숙한 구역은 있을 것이다. 매일 같이 집을 오고 가며, 흔히 접하는 풍경과 그 분위기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사람마다 머릿속에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그 기억에 맞추어 다른 동네에 대한 인식도 확연히 달라진다. 자신의 동네와 비슷한 곳에선 익숙한 느낌이, 그렇지 않은 곳은 다른 정도가 클수록 어색한 느낌이 강하게 들 것이다.

이러한 동네의 영향력은 생각보다 큰 듯하다. 특히 같은 동네에 머물러온 시간이 오래됐거나 어렸을 적부터 살아왔거나 하면, 향수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을 느낄 수 있듯이 말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동네보단 그 근거인 정서의 영향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맛있는 고기를 구워 먹는다고 생각해보자. 고기와 함께 쌈채소는 물론, 버섯, 양파, 부추, 김치 등 함께 곁들어 구워 먹을 수 있는 것들도 함께한다. 고기를 먹을 때, 고기가 영양상으로 우리 몸에 필요한 요소를 지니고 있기에 먹는다고 하긴 어렵다. , 쌈을 싸서 먹는 행위도 그들의 조화가 이성적으로 이롭다고 할 수 있기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맛있는 맛이라는 감각을 통해 느끼는 행복감을 위해 먹는다고 봐야 한다. 다소 철학적인 표현뿐인 듯하지만, 결국 쉽게 말해 우리에게 있어 정서의 영향력은 꽤 크다는 것이다. 마찬가지의 이유로 동네가 불러일으키는 감정 또한 영향력이 상당하다.

다시 기우의 입장으로 돌아가 보자. 반지하에 있는 본인의 집에서 자그마하게 뚫린 창문을 통해 바라본 바깥세상, 즉 그의 동네라곤 웬 술 취한 사람이 노상 방뇨를 하는 곳이다. 반면에, 고액 과외를 하러 간 박 사장네 집 거실에 넓게 뚫린 통유리 창호를 통해 바라본 그의 동네는 따사로운 햇살이 넘실거리는 곳이다. 물론 영화상의 화면 표현상 색채와 느낌 등이 과하게 대조되게끔 그려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두 동네의 모습이 다름은 확연하다.

그러한 두 동네의 모습을 보고 기우는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무수한 감정 중에서도 미묘한 이질감을 느꼈음은 틀림 없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비수도권 지역에서 반평생 넘게를 보냈던 내게 서울이라는 곳은 환상의 나라였다. 이야기 속에서만 듣던 그런 곳 말이다. 그러다 실제로 고속버스를 타서든, 고속철도를 타서든, 그 어떤 수단을 이용해서 서울 아니, 수도권에 입성하는 순간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건물의 높이가 하늘을 뚫을 마냥 천정부지로 높아졌다. 동네에선 아무리 높은 빌딩이어 봤자 고개를 꺾을 필요가 없었으나, 서울에선 고개를 위로 꺾어야 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확연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지역이 특정 동네와 같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 이질감과 함께 꼭 부정적인 감정만이 불러 일으켜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에도, 설렘이라는 감정이 더 크게 느껴졌듯이 말이다. 또 어떻게 모든 동네가 동일한 양상을 띠겠는가? 사람 개개인마다 천차만별이듯이, 사람마다 선호하는 분위기가 다르며, 그들이 만들어나가는 동네마다 특색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오히려 그 특색이 자신의 동네를 좋아하게끔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고, 추억에 남아 있게끔 하는 잔상이 될 수 있다. 그것은 자연히 자신의 동네를 소중히 가꾸어나가도록 이끄는 힘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자신이 현재 머무르는 동네와의 차이점이 여행지의 매력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높디높은 아파트들 틈에서 지내던 사람이 단독주택들이 모여 있는 동네에 놀러가 사진 찍으며 놀기도 하고, 푸른 잎들이 풍경화 같이 펼쳐져 있는 시골 동네 길을 걸으며 사색을 즐기기도 한다. 물론 단순히 그 차이점 때문에 많은 이들이 여행으로써 그 동네를 향유한다고 말하기 쉽진 않지만, 그 차이에서 오는 색다름, 미묘함, 신기함과 같은 감정이 여행의 한 요소임은 분명하다. 그래서 동네의 특성 및 개성, 이미지가 뚜렷하면 뚜렷할수록 여행지로서의 인기도 높아진다. 예를 들어, 예스러운 건물이 모여 있는 삼청동과 익선동, 바다를 품고 있는 여수와 통영, 미래도시적인 강남과 송도는 특색 있는 분위기로 여행지 중에서도 익히 알려져 있음은 틀림없다.

문제는 그 경계이다. 과연 어느 정도까지의 차이가 용인될 수 있는가이다. 당연히 이 또한 사람마다 다양한 기준을 이야기할 수 있고, 바람직한 기준을 결정하기도 쉽지 않다. 다른 여러 사회적 문제와 마찬가지로, 정성적인 정도의 문제인 경우에는 특정 대안이 무조건 옳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시시각각 변화하는 상황에 맞추어 그 당시의 최적안을 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럼에도 동네 간 차이의 기준을 제시해보자면, 과연 그 동네가 주거지로서 기능할 수 있는지이다. 쉽게 말해, 서로 다른 각각의 동네 모두가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는 동네였으면 한다. 스포일러겠지만 영화의 내용을 생각해보자면, 비가 억수 같이 쏟아지던 날 박사장네 아들은 마당의 캠핑 텐트에서조차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반면에, 기우네는 침수되어 가는 집을 멀리하고 대피소에서 겨우 잠을 청한다. 박사장네 동네와 달리, 기우네 동네 사람들은 집으로 흘러들어오는 물을 퍼내느라 정신이 없다. 분명 이는 동네의 분위기 차이를 넘어선 기반시설의 차이임에 틀림없다. 이 정도의 차이까지 용인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쉽사리 그렇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그 경계의 기준으로서 각각의 동네가 최소한의 주거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가를 제시하고 싶다. 소수의 인원이라 하더라도 그 동네에 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 동네는 충분히 지켜나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무리 여행지로써 유명하고 좋은 동네라 하더라도 주민들이 떠나기 시작하여 공동화가 진행되어버리는 동네는 개선의 필요성이 있다. 그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결과적으로 그 동네는 언젠가는 소멸해버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동네는 방문객과 같은 제3자가 아닌 결국 그 구성원인 사람들로 이루어진 곳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동네 간의 차이가 개성인지 불평등인지 구분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으로서 개개의 동네가 최소한 사람들로 하여금 상당 기간 머무르고 싶게 하는지를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