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56호

[56호] 나의 호주 교통 답사기 - 14 공재형

대륙은 역시 규모가 달랐다. 어느 방향을 보아도 지평선이 보이고 도로를 따라 쭉 달려가도 주변에는 푸른 들판에 검은점으로 보이는 흑우(블랙앵거스다 다른 거 아니고...)들이랑 흰점으로 보이는 양들만 보일 뿐이었다. 특별히 다른 게 없어도 배경으로 높은 푸른 하늘과 푸르지만 투명한 바다가 이미 할 일을 다 해서 어디를 아무렇게나 찍어도 엽서에 실을만했으며 자연도 스케일이 내가 우리나라에서 봐왔던 나무며 숲이며 절벽 등과는 다른 세계의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사진과 글로는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기 마련인데 보통 여행기를 이런 봐왔던 것들로 채우곤 한다만 호주는 그 규모의 특성상 직접 가보시길 추천해 드리고, 필자는 여기서는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호주에서 우리나라와 비교하면서 보고 느낀 호주의 몇몇 교통시스템에 대하여 소개하고 개인적 생각을 덧붙이고자 한다.

 

스마트 모빌리티를 실현해가는 교통 환경

보통 공항에 가는 방법에는 공항철도나 버스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자차나 택시 등을 이용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인천공항에 가보면 버스와 택시가 정차할 수 있는 공간은 물론 장기, 단기 주차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호주에 공항에는 ‘Public pick-up zone’이라는 공간이 추가로 마련되어 있다. 이 공간은 5분 이내로 정차 후 빠져나가면 주차료를 받지 않으며 중앙버스 정류장과 같이 도로 사이에 있어, 차들이 빠르게 사람과 짐을 태우고 빠져나갈 수 있게 해두었다. 사실 공항이용자를 가족이나 친구가 환송이나 환영하기 위해 차로 마중 나오거나 배웅하는 일은 우리나라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기에 이러한 공간이 놀라울 것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zone들은 일정 구간마다 알파벳과 숫자로 구분되도록 표시해 놓아 택시와 다르게 이미 사람에 따른 차량이 지정되어 있지만, 택시처럼 구별이 쉽게 되지 않는 카 쉐어링 서비스 제공자와 사용자가 쉽게 서로를 찾을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간단한 시설이지만 최근 늘어나고 있는 공유 경제를 도시공간에서 실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인천공항에서도 카 쉐어링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으나 사용자가 차량과 만날 장소에 도착하여 호출해야 하고 게이트 간격이 멀어 한 번에 차량과 사람이 만나기 힘들며 만날 장소가 가변적이어서 사용자와 제공자가 경우마다 새롭게 설정해야 해서 지정장소에 항시 대기하고 있는 택시에 비해 사용성이 떨어질 수 있고 전체적인 측면에서도 공유 차량의 무분별한 정차로 입국 층이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는 문제가 있어 보였는데 호주 공항의 ‘Pick-up zone’은 공유 경제 시대에 맞게 카 쉐어링의 경쟁력을 높여주면서도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멜버른 공항의 Public pick up zone

시드니 공항의 Priority pick up zone

한편 도심에서는 길목마다 자리한 공유 킥보드를 볼 수 있었다. 이제는 신촌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것들이지만 호주의 경우 Lime2018년 말부터 브리즈번 시내 전역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사용방법이나 요금 수준은 신촌의 것과 큰 차이가 없었으나 안전을 위해서인지 모든 라임 스쿠터에는 헬멧이 갖추어져 있었다. 물론 헬멧이 없는 스쿠터도 있었는데 이 점은 여의도에서 시도했다가 실패한 따릉이 헬멧 대여 서비스와 같은 이유일 것으로 보인다.

학교 안에서도 자주 마주쳐서 이제는 별로 신기할 것이 없지만 한 가지 달랐던 점은 GPS로 보행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라임 스쿠터는 보행자 구역으로 지정된 곳으로 진입하게 되면 액셀러레이터가 사용할 수 없도록 설정되어 일반 킥보드와 같이 인력으로만 움직일 수 있다. 요금이 킥보드 잠금 해제 이후 시간당 요금으로 책정되므로 불합리한 조치라고 생각될 수 있지만, 오히려 스쿠터들이 보행자 구역으로 진입을 막아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최근 국내에서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전동 킥보드의 안전성 문제에 대해 참고할만한 사례일 것이다.

보행자 보호에 GPS를 활용하고 있는 브리즈번의 공유 전동 스쿠터 ‘Lime’

 

땅의 스케일이 만든 도로환경

땅이 넓으니 도심에서 나가면 직선으로 쭉 뻗어나가는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이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가장 충격이었던 것은 멜버른에서 그레이트 오션로드로 차를 빌려 가는 중에 본 왕복 2차선 도로였는데 대관령 옛날 도로처럼 해안선을 따라 구불구불하게 커브가 많은 길임에도 불구하고 제한속도가 무려 80km/h였다. 우리나라에서 시속 80km의 속도를 부여하는 건 직선 구간이 대부분이거나 곡선반경이 큰 고속화도로나 도시고속도로 정도가 전부인데 급커브가 많은 해안도로에 이렇게 높은 제한속도를 부여한다는 것은 충격이었고 대부분 차가 이 제한속도에 근접하게 달리고 있다는 것도 놀라웠다. 이는 국토의 규모상 어쩔 수 없는 것인데 대신 다른 방법으로 안정성의 문제를 보완하고 있었다. 바로, 각 커브마다 권장속도를 명시하는 것이다. 운전자는 권장속도를 고려하여 이 커브가 얼마나 급한지 파악하고 속도를 미리 제안된 속도로 줄일 수 있어 높은 속도에서도 안전하게 운행할 수 있을 것이다.

커브 권장속도를 고려하여 운전자들이 커브의 급함 정도를 미리 파악, 빠른 속도에서도 안전한 운행을 도움

노변에 설치된 붉은 시선 유도표지

달리다가도 우주를 볼 수 있을 정도로 도심 부근이나 램프를 제외한 고속국도에는 가로등이 전혀 없는 대신 도로 좌우에 시선 유도표지를 설치하여 차로를 유지하며 안전히 달리도록 돕고 있었는데 환경보호의 목적인지, 국토가 광활하여 인프라를 갖추는 비용이 부담인지는 모르지만, 이 점은 조금 위험해 보였다. 고속도로 램프나 외곽에 있는 고속도로 분기점에는 원형교차로를 설치하여 많지 않은 교통량을 쉽게 처리하고 있었는데 해당 도로의 통행이 적어 입체화하기에는 비용이 과다하다고 생각했거나 그레이트 오션로드로 가는 고속화도로에는 회전교차로가 너무 많아서 시속 80km로 달리고 있더라도 교차로만 나왔다 하면 회전하기 위해서 서행하여야 해서 빠른 속도에서도 운전자에게 지속해서 주의가 필요한 상황을 만들어 안전한 운행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싶다.

 

도심 대중교통 시스템과 시설

어느 나라라도 결국 땅 크기와 관계없이 도심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고 호주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시드니의 경우 교통문제가 가장 심각하여 주 정부에서도 대대적인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특이하게도 호주의 2대 도시인 시드니와 멜버른은 모두 city loop를 시점으로 교외 방향으로 뻗어 나가는 시티레일과 트램, 버스에 의존하고 있다. 한편 유럽의 도시들과 달리 도로의 완충녹지와 트램 시설은 잘 갖추어져 있더라도 상대적으로 자전거 시설을 빈약했는데 그래서인지 별로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을 유럽만큼은 보지 못했다.

각 주는 각자의 대중교통 시스템을 운영해서 각 주마다 교통카드도 다르고 카드 가격이 다를 뿐만 아니라 대중교통 이용에 따른 요금 체계도 다르다. 환승 횟수와 환승 할인 정도는 물론 요금 주 상한제와 월 상한제까지 세세하게 읽어보지 않으면 왜 요금이 이렇게 나왔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 당황스러웠다.

뉴사우스웨일스주(시드니) Opal 카드와 빅토리아주(멜버른) Myki 카드, 퀸즐랜드(브리즈번) Go 카드:
|출처| Google 이미지 검색, 각 주정부
각각의 주에서 사용되는 카드, 요금정책, 탑승 가능 수단, 환승 조건이 다르다.

시티레일을 이용하면서 가장 적응이 되지 않았던 것은 노선들이 플랫폼을 공유한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노선도에 표시된 노선 색은 달라도 모든 노선은 같은 색과 형태의 열차를 운영한다. 그런데도 열차가 들어올 때마다 특별한 방송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열차 운행을 알려주는 전광판을 확인하지 않으면 길 잃기가 십상이었다. 대신 전광판의 경우 우리나라 지하철 것보다 자세하고 알아보기 쉬웠는데 일부 노선은 같은 목적지를 가지더라도 서로 다른 루트를 이용하거나 같은 루트라도 몇 개역을 건너뛰는 열차도 있는걸 보면 이런 전광판을 가지게 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시티레일의 특성상 결국 모든 노선이 도심의 city loop으로 향한다는 점에서 검표시스템도 특이한데 외곽 역들에는 개찰구가 존재하지 않고 교통카드 단말기가 붙은 기둥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시내 역들에는 우리나라와 같은 개찰구가 설치되어 있어서 탈 때 태그를 하지 않으면 도심에 도착해서 나갈 수가 없으므로 승하차 처리를 할 수밖에 없고 물론 검표원도 돌아다닌다고 한다.

멜버른 Flinders Street역의 전광판:  
city loop에서 모든 노선이 출발하는 만큼 노선과 플랫폼, 시간을 안내하고 있다.

한편으로 트램이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만큼 가장 관심이 가는 대중교통수단이었는데 우리나라의 중앙버스차로제와 같이 대부분 도로 중앙에 트램 선로가 설치되어 있었다. 사실 트램은 버스의 상위 호환 수단으로서 버스보다 많은 인원을 정시성을 조금 더 보장하면서 조금 더 빠른 속도로 운송하는 체계라서 트램과 버스는 일종의 대체재로 사용될 수 있는데 특히 버스전용차로제가 운영되는 경우는 특히 그렇다. 실제로 많은 트램을 운영하는 도시에서 트램 선로가 설치된 차로를 버스와 공유하는 경우가 많은데 둘의 성격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트램이 기존 도시철도보다 건설비가 싸고 도시경관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간선 노선을 트램으로 설치하려는 시도가 많은데 여기에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먼저 우리나라의 도로는 유럽이나 호주와 같이 완충녹지와 트램 선로를 설치하고도 남을 공간을 확보하지 않은 채 깔렸기 때문에 트램이 설치된다면 결국 일반 차들이 겪을 정체는 뻔한 일이다. 게다가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시내버스도 있지만, 간선을 거쳐 주변 도시들로부터 유입되는 광역버스들이 많은 편인데 단순히 하나의 트램 노선을 위해 한 차로를 내준다면, 여러 버스노선을 트램으로 대체하여 도로의 버스를 줄이지 않는 이상 트램 설치로 얻는 편의보다 일반 차로의 혼잡에서 얻는 불이익이 클 것인데 버스와 트램 선로를 공유한다고 하더라도 버스가 더 많은 이상, 트램이 버스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트램이 버스보다 우위에 있는 정시성이나 속도 면에서 이득이 없어져 오히려 트램보다 버스전용 차로를 운행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멜버른의 트램 Transit mall

트램 운영으로 인해 도로에서 특이한 차로 운영방식을 확인할 수도 있었다. 좌측통행을 하는 호주에서는 우회전을 하기 위해 신호를 기다려야 하는데 보통, 이 우회전 차선은 중앙선과 가장 가깝게 오른쪽에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트램 선로가 있는 도로에서는 그렇지 않고 맨 왼쪽 차선의 정지선보다 앞에 있는 대기 구역에서 대기해야 하는데 바로 훅턴(Hook-turn)이다. 트램이 중앙차선에서 우회전을 해야하기 때문에 사고를 피하려면 더 넓은 반경으로 일반 차들이 회전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운영방식은 운전자의 기대심리와 달라서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트램 운행을 위해서라면 필연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방안인 것이다. 당장 몇 년후 개통될 부산의 오륙도 트램이 개통되기 전에 우리는 좌회전을 위한 훅턴을 고려하고 회전교차로 도입 시처럼 혼란을 겪지 않으려면 미리 알리는 방책을 고려해야겠다.

Hook-turn 지시 표지판

Hook-turn을 위한 차로와 대기공간(흰색박스)

시드니에서 가장 독특한 대중교통수단은 아마 페리일 것이다. 시드니는 거대한 만이기 때문에 한강과 같이 다리를 놓기에는 한계가 있을뿐더러 바다라서 쉽게 건너가기 힘든데 이런 구조에서 필연적으로 페리가 효율적이고 빠른 대중교통수단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시드니 만 안쪽은 육지에 둘러싸여 있어 바다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잔잔하기 때문에 안정적인 운항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앞에서 말했듯 특별히 관광자원이 없이 하늘과 바다만 있어도 호주에 온 보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관광객 수요도 잡을 수 있어 시드니에 적합한 대중교통이라 할 수 있다.

시드니의 페리 노선도:
시드니가 만을 품고 있는 도시인 만큼 바다를 건너는 데에는 페리가 유리하다.

한강은 안타깝게도 강변을 도시고속도로가 둘러싸고 있어 접근성이 낮아서 선착장에 접근하는 것 자체가 오래 걸리고 그렇게 힘들게 접근했는데도 강을 가로질러서 시간적인 이득이 별로 없다. 아예 마포구에서 잠실 정도와 같이 멀리 떨어진 강변의 부도심 급 두 지점을 빠르게 이으면 몰라도 서울에서 유용한 대중 교통수단이 되기는 힘들어 보인다.

항상 외국을 나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이번 여행에서도 시드니에서는 페리만 한 번 타도 거의 6,000원이 필요하고 공항철도를 타더라도 공항에 내리는 순간 공항세가 거의 만원이 더 붙지만 우리는 지하철 타고 20km를 넘게 가도 4,000원도 나오지 않는다. 물론 이는 정책적 의도가 다분히 반영된 결과이긴 하지만 우리나라만큼 대중교통이 이용하는데 비용이 낮으면서 서비스 질이 높은 나라는 없다고 느껴진다. 그렇지만 아직 우리나라는 수단 간의 연계가 조금 미흡한 감이 없지 않아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트램같은 새로운 대중교통수단과 자전거, PM 등을 도입하려 시도하고 있는 만큼 환경이 달라서 적용하는 데 수정이 필요하겠지만, 이미 도입하고 있는 호주의 사례를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도시의 건물들도 즐기고 특이한 동물들은 물론 광대한 자연환경도 누렸다. 그런데도 필자는 사람이 도시를 기억하는 부분 중 하나가 교통이라고 생각하는 만큼 교통 측면에서 경험을 기록하면서 여행을 돌아보는 것도 즐거웠고 읽으시는 분들이 방문의 기회가 있을 때 공감하고 생각해볼 수 있으시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