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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호

[59호] 양날의 검 전세 - 19 윤현수

    사회로 나갈 시기가 다가오면서 취업을 앞둔 동기들과 직장에 다니고 있는 선배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막막한 내 집 마련이 종종 화두로 올라오곤 한다. 평범한 직장인의 봉급으로 아파트를 매입할 만큼의 자본력을 갖추긴 어렵고, 월세는 장기적으로 저축이 힘드니 주택담보대출을 끼고 전세로 들어가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안으로 거론된다. 헌데 최근에 이런 일이 있었다.

    가계의 부담을 덜기 위해 고교 시절부터 공장에서 일했던 한 청년이 있었다. 그는 수년간 밤낮으로 일하여 전셋집을 마련하고, 자립에 성공했다는 생각에 뛸 듯이 기뻤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임대인이 파산하고, 집은 경매에 넘어갔다. 수년간 모아온 전세금은 돌려받지 못하며, 계약기간이 끝나면 집을 나가야 하고, 주택담보대출은 남아 신용불량자가 될 예정이다. 수술을 앞둔 어머니와의 통화 중 2만 원만 보내줄 수 있냐는 말이 자살하기 전 마지막 모자의 대화였다.

    그는 인천 미추홀구 전세 사기 사건의 피해자 중 한 명이었다. 인천의 건축왕으로 불리던 남 모 씨는 건설업체와 공인중개사 조직을 같이 운영하였다. 차명으로 토지 담보 대출을 받아 토지를 매입하고 주택 담보 대출을 받아 주택을 세운다. 그리고 공인중개사 조직을 통해 주택 전세 계약을 뿌린다. 공인중개사는 남 모 씨와 한패이므로 주택 가격을 크게 부풀려서 전세가율을 낮추거나, 남 모 씨가 주택을 수백 채 보유한 법인이라 설득하여 저당이 잡힌 주택이라도 전세 계약을 성공시킨다. 사기 조직은 대출금을 연체하고, 주택은 경매로 넘어가며 반환될 전세금은 남지 않는다. 경매가 진행되면 집에는 새로운 주인이 들어오고, 세입자는 대출빚만 잔뜩 들고 강제 퇴거당한다. 남 모 씨 조직에 손해를 입은 세대는 2,479세대에 달하고, 피해 금액은 1,500억 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에만 있는 전세는 어떤 제도이길래 이런 사기행각이 가능한 것일까?

    전세 제도는 한국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사금융이다. 과거 자금이 부족했던 우리나라에서는 투자를 할 때 은행에서 빌리기보다 세입자에게서 자금을 융통하는 사금융 방식이 더 활발하게 이루어졌는데, 이것이 전세제도이다. 외국에서는 주택에 투자하고 싶을 때 모기지론으로 자금을 조달하고, 렌트 월세를 받아 이자를 충당하는 방식인 반면, 한국은 금융기관을 거치지 않고 바로 세입자에게서 자금을 조달해 주택에 투자할 수 있다.

    장기주택담보대출과 전세를 비교해보면, 은행은 LTV(Loan to Value) 등의 주택 가격 대비 대출 규제가 있고, DTI(Debt to Income) 등으로 소유자의 상환능력을 검증한다. 반면 전세제도는 사금융이므로 아무 제한이 없어 소유자에 대한 상환능력 검증도 불가능하고 집값의 100% 대출도 가능하다. 장기주택담보대출은 20~30년에 달하는 장기 만기로 대출 유지가 가능하고, 전세는 만기가 존재하며 대부분 2년마다 도래한다. 즉 대출은 주식, 전세는 선물과 같은 속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은행 대출은 담보 물건에 대한 조사, 소유자의 신용도 검증, 지속적인 모니터링에 의한 금융 비용이 발생하지만, 전세제도는 집의 사용권이라는 권리의 상호 부여 및 보유를 통해 금융기관을 거치지 않고 렌트비나 이자 지급과 같은 현금흐름을 생략함으로써 효율성을 극대화한다. 그러므로 전세를 통해 돈을 빌리는 집주인은 은행을 통해 빌리는 것보다 훨씬 싸게,

많이 빌릴 수 있고, 돈을 빌려주는 세입자는 은행에 예금해서 이자를 받는 것보다 훨씬 비싸게 돈을 빌려주는 셈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이득은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는 시기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주택 가격이 하락하는 시기에는 집주인의 신용도에 세입자의 목돈이 달려있다. 금융기관이 개입할 시에는 대출자의 신용도를 까다롭게 확인하고 집 가격의 특정 비율 이상은 대출 금지 등으로 방어하며 은행이 리스크를 가져간다. 그러나 전세제도는 금융 효율성을 더 높이고 리스크를 더 많이 지며, 그걸 모두 소유주와 임차인이 나눠 갖는 구조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부동산 가격 변동에 따라 벌면 내 꺼, 잃으면 네 꺼 식의 전세 사기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전세는 단순히 주거지를 구하는 방식 중 하나를 넘어서 2년마다 갱신하는 사금융 대출을 주는 것, 자신이 모은 막대한 양의 목돈을 걸고 하는 선물투자와 궤를 같이한다고 인지하며 경계해야 한다. 소유주 입장에서는 만기마다 보증금을 돌려줘야 하고, 시장이나 사회 상황에 따라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면 신용 위험에 봉착한다. 2023년 3월, 개인회생 사건이 약 11,000건으로 근 10년 중 역대 최다를 기록했으며, 부동산 가격 하락이 유의미한 영향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전세제도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만 시행하고 있는 제도이다. 장점이 많은데도 다른 나라에서 수입해가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