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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호

[59호] 내가 도시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 - 20 최윤서

    ‘우리는 왜 도시공학을 공부해야 할까?’ 도시공학과의 수업을 들으면서도 항상 스스로에 대해 가지고 있는 질문이었다. 내가 느끼는 도시공학이라는 학문은 세상을 바라보는 센스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도시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있어서 자동화되고 정형화된 방법론이 있다기보다는 그때그때 알맞은 방법을 센스있게 적용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우리의 실생활에서 가깝게 접하는 여러 문제를 해결한다는 적극성은 매력적이지만, 이것이 과연 도시공학을 배운다고 잘 할 수 있는가 생각했을 때는 회의적이다. 도시공학에서 가장 필요한 세상을 바라보는 센스는 배워서 학습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에 한창 사로잡혀있을 시점에 모빌리티데이터마이닝이라는 수업을 듣게 되었다. 다양한 모빌리티 데이터들을 배우고 머신러닝 방법론을 적용해보는 수업이었다. 도시를 공부할 때는 추상적인 센스가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직접 데이터에 구체적인 방법론을 적용하여 결론을 도출하는 일련의 과정은 너무 흥미로웠다. 이후에 도시의 도메인에 대해 배우는 것보다는 더 많은 데이터를 처리하는 머신러닝, 딥러닝 방법론을 익히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고 느꼈다. 무엇을 위한 공부인지 목적성은 미뤄두고 많은 데이터 사이언스 방법론을 공부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좋은 기회로 카카오 모빌리티 AI 팀에서 일하시는 김정민 님의 특강을 듣게 되었다. 특강을 들으며 데이터 사이언스가 더 중요하다고 느꼈던 나에게 이게 전부가 아니고 왜 도시공학에 대한 도메인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 동기 부여가 되었다. 우리가 왜 도시공학을 공부해야 하는지, 그리고 도시에 대한 이해가 수반된 전문가가 왜 기업에 필요한지 스스로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모빌리티 데이터의 근본은 사람들이 어디 있는지를 나타내는 위치 데이터이다. 하지만 위도, 경도로 표현되는 위치 데이터는 그 숫자 자체로는 아무 의미가 있지 않다. 해당 위치가 지도상에 어디를 의미하는지 알 때, 그리고 여기가 어디고 무엇을 위한 공간인지(POI 데이터)를 알고 있을 때 의미가 있다. 그래서 오프라인 공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며 도시공학 도메인이 기업에서 필요하다. 여기가 어떤 공간인지를 모른 채 단순히 숫자 데이터로 접근하려고 하면 세상을 해석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어떤 공간에서 갑자기 택시 호출이 늘어났는데 오프라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면 그 이유 등을 알 수 없는 문제가 나타나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이를 느끼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도시 모빌리티 분석 및 계획이라는 수업을 통해 은평구 승용차 이용 저감을 위한 솔루션을 제안하는 프로젝트를 했던 적이 있다. 나는 단순히 데이터만 분석하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이것저것 인사이트를 찾아내려고 노력했다. 이때 팀원분이 그래도 가서 대상지를 좀 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답사하러 갔던 적이 있다. 직접 가서 보면서 여기에 뭐가 필요하겠구나. 여기가 정말 막히는구나.’ 등을 느낄 수 있었고, 데이터상에는 사람이 집중되어 나타나는 지역이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등 다른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데이터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인사이트를 내기보다는 실제 공간을 관찰하고 이해해보며 문제를 해결할 필요성을 배울 수 있었다. 또한, 교통계획 연구실에서 인턴을 하며 DRT 수요데이터를 분석할 때도 수요를 숫자로 보는 것보다 공간적인 접근의 필요성을 많이 느꼈다. ‘A 정류장이 가장 수요가 많네.’에서 끝나지 않고 해당 위치를 표시해보고 그 공간이 어떤 곳인지 이해하며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 도시공학이 해야 하는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부끄럽지만 지금까지 나는 너무 추상적이고 도시에 관한 생각을 많이 요구하는 과목들은 듣기를 피했었다. 수리적이고 내용이 명확한 과목에서 배울 수 있는 요소가 훨씬 많다고 생각했었다. 이제는 도시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듣고 배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아직도 도시란 참 어려운 학문임은 분명하지만 그래도 내가 왜 공간,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를 공부해야 하는지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