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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호

[59호] 2020년 11월 1일의 청량리~부전무궁화호 완주, 그리고 이모저모 - 20 도종현

    철도 동호인들 사이에서는 근성 열차라는 용어가 있다. ‘근성 열차는 운행 소요 시간이 매우 길고 상대적으로 우회하는 경로로 이동하는 열차를 의미하며, 이런 특성으로 인해서 전 구간 완주에 근성이 필요해서 근성 열차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철도 동호인들 사이에서는 도전 과제처럼 여겨지고 있다. 이번 여행에서 완주한 청량리~부전 무궁화호 1621 열차는 중앙선 청량리역에서 시작해서 중앙선 전 구간과 동해선 경주역~부전역 구간을 거쳐 부전역에서 종착하는 열차이다. 이 열차는 근성 열차가운데 가장 유명한 열차이며, KTX로 평균 2시간 40분 소요되는 서울~부산을 무려 7시간 38분에 걸쳐서 운행한다. 심지어 가격이 저렴한 것도 아닌 게, 이 열차는 경부선보다 더 우회하는 경로를 사용하기 때문에, 경부선 무궁화호보다 오래 걸리는데도 운임이 더 비싸다. 그래서 서울에서 부산을 갈 때, 이 열차를 사용해서 가는 것은 비효율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느림의 미학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느림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다. 근성 열차 완주보다도 더 비효율적인 여행 방식이라 할 수 있는 시내버스 여행, 국토 대장정 그리고 자전거 여행 유튜브 동영상의 수많은 조회 수가 느림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이 느림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첫 번째 이유는 느린 것을 이용하면, 빠른 것을 이용했을 때 보지 못하는 것들을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무궁화호나 농어촌버스 같은 느리고 저렴한 교통수단의 경우, 장거리 승객보다 단거리 승객의 비중이 높아서 승객 가운데 지역 주민의 비율이 높다. 그래서 빠른 교통수단보다 지역의 분위기를 더 가까이서 느낄 수 있으며, 지역에 따른 차내 분위기 차이도 심하다. 이번 여행 역시 경부선 열차를 타고 갔으면 얻을 수 없었을 것들을 많이 얻었다. 남한강과 두물머리의 푸른빛 물결, 울창한 숲으로 뒤덮인 소백산과 치악산 자락의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었고, 중앙선이 지나가는 지역과 관련된 어린 시절 추억도 다시 떠올릴 수 있었으며, 노선이 지나가는 지역의 여러 도시 문제를 모니터 속 데이터가 아니라 두 눈으로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이유는, 느린 여행은 시간에 뒤 쫓겨서 바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삶과 정반대 방식의 여행이기 때문에, 평범한 여행보다 더 일상과 멀리 떨어질 수 있는 특별한 여행이다. 여행의 목적이 일상에서 벗어나 재충전을 하기 위함임을 생각하면, 느린 여행은 여행의 목적에 더 맞는 오히려 효율적인 여행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행 당시인 2020년의 일상은 대부분 대학생한테 다른 연도의 일상보다도 훨씬 지루한 존재였다. 왜냐하면, 2020년 초에 발생한 코로나19 사태로 인해서 대학 입학 전에 기대하던 캠퍼스 생활, MT, 해외여행 등 일상에서 벗어날 기회가 모두 없어졌고 그 자리를 비대면 강의가 차지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대학 입학 전에 송도 캠퍼스 생활, 아카라카, 연고전 등을 기대하면서 들어왔으나 그게 모두 사라졌다. 그 대신 공부방과 침대방을 왔다 갔다 하면서 와이섹과 phylab의 과제 제출 기한에 조마조마하면서 살아가는 게 일상이 되었다. 게다가 2020년 당시는 코로나가 절정이었던 시기여서 여행을 다니는 게 제한되었기 때문에, 2021년 이후보다 여행 갈 기회가 적었다. 그래서 느린 여행, 그중에서도 2020년에 떠났던 이번 여행은 다른 느린 여행보다도 더 특별한 기억으로 남았다.

    이번에 작성한 여행기는 U410 티스토리에 올리는 첫 여행기이며, 근성 열차 여행을 시작하게 된 계기, 근성 열차 여행을 하면서 보고 느낀 점 등등이 들어가 있다. 그리고 무궁화호 열차 안에서 목격한 팔당 상수원 보호구역 문제, 개발과 문화재 사이의 문제 등 노선 인근 지역의 도시 문제 관련 내용도 들어가 있다. 도시공학과의 학회인 U410의 취지에 맞게 여행하면서 보고 느낀 것보다는 여행하면서 두 눈으로 본 도시 문제의 비중을 높였다.

 

0. 여행 시작부터 청량리역까지

    이번 여행의 계획은 고등학생 때 시험 기간에 딴짓하면서 청량리~부전 무궁화호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그 당시는 입시 학원 뺑뺑이를 돌 때였기 때문에 여행을 갈 여유가 남지 않았다. 그래서 청량리~부전 무궁화호 탑승은 졸업 이후 진행할 버킷리스트에 슬며시 남겨 놓았고, 졸업하고 나서 가기로 했다. 하지만 20201학기의 경우, 코로나19 사태로 인해서 여행이 통제되었고, 공학 물리학 결과 리포트, 도시학개론 리딩 퀘스쳔 등 교수님들의 과제 폭풍은 여행을 갈 만한 여유를 없애버렸다. 2020년 방학의 경우, 1학기 때 부족한 영어 실력으로 피를 봐서 영어 공부에 매진했다. 그래서 방학임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갈 시간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청량리~부전 무궁화호 완주는 점차 기억 속에서 사라져갔다.

    이 열차의 존재가 다시 떠올랐을 때는 20202학기 중간고사 시험 기간 때였다. 이때 역시 공부는 대신 딴짓하면서 고등학생 때 작성한 버킷리스트 한글 파일을 보고 있었는데, 파일에 적힌 근성 열차 완주는 열차의 존재를 다시 상기시켰다. 그리고 이것을 보면서 힘든 시험 기간이 끝나면 이 중 하나를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근성 열차 완주를 제외한 나머지는 지금 당장 하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시베리아 횡단 철도 여행, 선박으로 일본 여행 가기, 일본 보통열차 여행은 해외여행이 통제되어서 불가능했고, 시내버스 여행은 아직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버킷리스트에 들어있는 것 중에서 그나마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근성 열차 완주를 하기로 마음먹었고 아직 날짜는 정하지 않았다. 그렇게 근성 열차 여행 계획은 공부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고 그 덕분에 중간고사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날짜를 정한 것은 여행 출발 전날인 20201031일이었다. 여행 출발 전날은 중간고사가 끝난 지 2주가 지난 후였다. 1학기 때 경험으로 미루어 보면, 학기 중에서 마지막으로 과제 폭탄이 없는 기간이 이맘때 즈음이었다. 그래서 이때가 아니면 여행을 갈 시간이 없을 거라고 예상했고, 이 불길한 예감은 적중해서 정확히 그다음 주부터 공학 물리학 리포트를 필두로 수많은 과제가 쏟아져나와서 나를 괴롭혔다. 이 예상을 하고 나서 바로 코레일톡 어플을 켜서 청량리~부전 무궁화호 1621 열차를 예매했다. 그다음에 집에서 청량리역에 738분까지 어떻게 갈지 고민하면서 가방을 싸기 시작했다. 가방 안에는 여행에 필요한 필수품은 물론, 과제를 하기 위해 노트북도 넣었다. 청량리역에 가야 하는 방법을 알아보니까, 광역버스 첫차를 타는 것 말곤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첫차를 타기 위해서 시계 알람도 오전 3시로 맞춰 놓았다. 여행 전날에는 시계 알람을 듣고도 못 일어날까 봐 걱정되는 것과 여행에 대한 설렘으로 인해서 잠이 오지 않았다.

    다음날 오전 3시에 일어나고 나서 샤워를 하고 전날 싸둔 가방을 챙기고 오전 4시 반에 집에서 나갔다. 그리고 서울역으로 향하는 광역버스 첫차를 타는 것에 성공했다. 첫차 시간대여서 그런지 도로 정체가 없어서 서울역까지 40분도 채 안 걸렸다. 서울역에 도착하고 나서는 1호선을 타고 청량리역까지 이동했다. 청량리역에 도착하니 오전 618, 열차 출발 1시간 20분 전이었다. 엄청 일찍 출발한 덕에 여유가 생겼지만, 그 여유가 너무 길었고 바깥 날씨는 쌀쌀했다. 그래서 식당에서 배를 채우면서 시간을 보내기로 정했다. 청량리역 바깥으로 나가니까 롯데리아가 보였다. 다른 식당도 있나 찾아봤지만 없어서 결국 롯데리아에서 햄버거 세트를 시켜서 먹었다. 롯데리아에서 배를 채우고 나서도 시간이 30분 정도 남았다. 그래서 청량리역 근처에 있는 편의점에서 잠을 깨우기 위해서 핫식스를 사서 먹었다, 청량리역 구내에 들어오고 나서, 급하게 예매하느라 복도 쪽 자리에 배정된 것을 알게 되었고 자리를 창가 쪽으로 바꾸고 승차권도 새로 발급받았다. 열차 탑승 직전에는 열차 측면에 있는 행선판과 열차의 기관차를 기념으로 사진 촬영했고, 열차 객차 내부도 촬영했다. 그리고 2020111일 오전 738분에 열차가 출발하면서 7시간 42분의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1. 아름다운 팔당호의 어머니 ‘규제’ 그리고 지역 주민의 아픔

    열차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나서 몇 분 동안은, 지어진 지 10~20년 정도 되어 보이는 아파트 단지들과 대략 4~5층 정도 되어 보이는 작은 건물들이 섞인, 익숙한 서울과 경기도의 모습이 차창 밖에 보였다. 그러나, 10분이 지나자마자, 이런 대도시의 모습은 사라지고 차창 밖은 푸른 빛의 남한강과 주위의 광활한 산 그리고 어두운 터널로 가득 찼다. 서울역에서 열차를 탄 지 1시간이 넘어야 시골다운 풍경이 나타나는 경부선과 대비되었다. 하지만, 그냥 시골 철도와 달리, 열차가 통과하는 역들의 스크린도어가 이 구간이 전철이 다니는 수도권이라는 것을 암시했다. 나는 수도권이지만 시골 같은 이 구간을 보고 의심이 하나 생겼다. 왜냐하면, 수업 시간에 배운 호이트의 선형이론에 따르면, 도시의 발달은 주요 간선 교통망을 따라서 이루어지는데, 이 구간은 호이트의 이론과 정반대로 중앙선이라는 간선철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시가 형성되지 못한 사례였기 때문이다. 이 의심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이 구간 근처에 팔당댐이 있어서 지역에 여러 규제가 중복으로 지정되었음을 알고 나서 풀렸다.

    팔당댐은 하남시 배알미동,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양쪽에 걸쳐 있는 댐으로, 1974년에 완공되었다. 이 댐이 완공되면서 저수량이 약 25,000만 톤에 달하는 인공호수. 팔당호가 생겼다. 팔당호 주변은 다른 경기도 지역보다 자연환경이 잘 보존되었고, 서울 근교의 청정 지역이라는 희소성 덕분에 수도권의 관광지로 기능하고 있다. 먼저 남한강과 북한강이 갈라지는 곳인 두물머리는 서울 근교 드라이브 코스로 유명하며 연잎을 넣어서 만든 연핫도그가 유명하다. 자전거 라이더들한테 팔당호는 강원도를 가기 위해 꼭 거쳐 가야 하는 곳으로 인식되고 있고, 폐선된 중앙선 구 선로의 자전거길과 양수역을 거쳐 가는 3고개, 5고개 코스가 유명하다. 이곳 이외에도 능내리의 다산 정약용 생가, 다산 생태공원, 광주 퇴촌면 붕어찜 마을 등 팔당호 주변에는 여러 곳의 관광지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렇게 팔당호 주변 자연환경이 잘 보존된 이유는 팔당호 주변에 여러 규제가 중복으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구 2,600만인 거대 도시권의 상수원으로 기능하는 만큼 팔당호의 중요성이 크기 때문에, 그만큼 보호하기 위한 노력도 많다고 볼 수 있다.

    팔당호 주변은 현재 그린벨트, 상수원 보호구역, 수변구역, 자연보전권역, 수질 보전 특별 대책 지역, 등 여러 규제가 지정되어 있다. 먼저 그린벨트의 경우, 연세대학교 도시공학과 학생이라면, 도시계획, 환경계획 그리고 도시설계개론 등의 여러 수업을 들으면서 그린벨트라는 단어를 자주 접했을 것이다. 그린벨트는 도시의 무질서한 확산 방지, 도시 주변의 자연환경 보전, 군사적인 보안 등의 이유로 지정되는 개발이 제한되는 구역이다. 그린벨트는 영국의 도시계획가 하워드(E.Haward)가 전원도시를 제안하면서 제시한 개념이다. 하워드는 전원도시를 제안하면서 도시 주위를 둘러싼 영구한 농업 지대를 둬서 도시의 무분별한 확산을 막고자 했다. 이런 그린벨트는 하워드가 태어난 영국의 런던뿐만 아니라, 미국, 영국, 일본 이란 등 세계 여러 나라의 대도시에 설정되어서 제 역할을 해내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1968년 김신조 사건을 계기로 1971년부터 대도시 주위에 그린벨트가 설정되었으며 현재까지 스프롤 현상 방지, 자연보전 등 제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그린벨트는 사유재산권 침해, 지역발전 저해, 대도시 부동산 가격 상승 등 여러 부작용을 가지고 있어서 현재는 여러 지역에서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지역 개발을 하려는 움직임이 발생하고 있다. 팔당호 주변 그린벨트의 경우, 1973, 팔당댐이 완공되면서 설정되었다. 팔당댐 그린벨트 지정 이전에는 두물머리는 남한강과 북한강이 갈라지는 수상 교통 중심지였기 때문에, 조선 시대부터 나루터로 기능을 하였으나, 그린벨트 설정 이후에 어로행위와 선박 건조가 금지되면서 나루터 기능이 상실되었다. 그린벨트 지정 이전부터 어업에 종사하며 살아오던 지역 주민에게는 어업권이 부여되었으나 상속 및 양도가 제한되었기 때문에 주민들이 고령층이 된 2023년 현재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그다음으로 상수원 보호구역의 경우, 수도법 제 7조에 따르면, 상수원의 확보와 수질 보전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지역에 시, 도지사가 지정하는 규제 지역이다. 팔당댐 주변의 경우, 팔당댐 완공 이후 2년 뒤인 1975년에 팔당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 상수원 보호구역 내에서는 수도법 제 7, 수도법 시행령 제 12조에 따라, 오염물질 방류, 가축 사육, 야영, 어패류 양식, 레저, 자동차 세차, 농작물 경작 등 여러 행동이 금지된다. 그리고 건축물의 건축, 토지 공사 등 여러 행위가 관할 지자체장의 허가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상수원 보호구역 역시 그린벨트와 비슷한 이유로 지역 주민들의 기피 대상이 되고 있다. 그리고 상수원 보호구역은 보통 대도시 근교의 상류 지역 저수지에 지정되는 경우가 많고 소유권과 관리권은 규제받는 상류 지역 지자체가 아니라 혜택받는 하류 지역 지자체가 가지는 경우가 많아서 지역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그 예시로는 첫 번째로, 송탄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혜택을 받는 평택시와 규제받는 용인시 사이의 갈등이 있고 두 번째로는 법기수원지로 인해 규제받는 양산시와 법기수원지로 혜택을 받는 부산광역시 사이의 갈등이 있다. 팔당 상수원 보호구역 역시, 양평군, 남양주시 등 규제를 받는 상류 지자체들은 규제 완화를 원하고 있지만, 서울특별시, 인천광역시 등 하류 지자체들은 규제 완화를 원하지 않아서 지역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자연보전권역은 수도권정비계획법에 근거하며 수도권 지역 가운데 자연보전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지역에 적용되고 있다. 현재, 팔당댐부터 시작해서 남한강과 북한강 본류와 지류가 지나가는 모든 지자체는 자연보전권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팔당댐 주변은 1984년에 자연보전권역으로 지정되어서 규제를 받고 있다. 자연보전권역 위에서는 수도권정비계획법 제 9조에 따라서 개발사업의 규모와 종류가 제한되고, 학교, 공공 청사, 업무용 건축물 등 인구집중유발시설의 설치가 제한된다. 이렇게 자연보전권역이 지정되면, 공업용지 규모 제한 등의 규제로 인해서 기업 투자가 제한되고 그만큼 지역의 일자리 창출, 산업 기반 확보가 제한된다. 그리고 택지개발도 제한되기 때문에 인구 유치에도 한계가 생긴다. 따라서 자연보전권역 역시 지자체들은 완화를 원하고 있고, 중앙정부에 규제를 완화해달라는 목소리를 보내고 있다. 이 세 규제 이외에도 팔당댐 주변은 수변구역, 팔당 상수원 특별대책 지역 등등 여러 규제를 받고 있다.

    이런 여러 가지 규제들 때문에 팔당댐 주변은 개발 행위가 제한되고 있으며, 그만큼 자연경관이 잘 보존되고 있다. 하지만 이 규제들로 인해서 팔당호 주변 지역은 지역발전이 저해되었고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지역 주민에게 돌아왔다. 2008년에 경기개발연구원이 시행한 연구에 따르면 팔당댐 주변 지역이 규제로 받은 총 피해액은 1973년부터 35년 동안 무려 134조 원으로 계산되었다. 이렇게 지역에서는 규제로 인한 피해를 완화하고자 대통령 당선인에게 중복 규제 손질을 요구하고, 팔당 상수원 보호구역에 대해 헌법 소원 심판을 진행하는 등, 여러 방법으로 노력하고 있다. 조사하면서 광주시, 이천시, 여주시가 GTX-A 노선 연장 주장의 이유로 그동안 받은 규제에 대한 보상을 들었던 게 생각났다. 팔당호 주변 지역에 대해 알아보기 전에는 이들 지역의 고충을 모르고 핌피 현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조사하고 나서 이들 지자체의 규제에 대한 한이 이해되었고 핌피라고 생각했던 것을 반성했다. 분명한 건, 팔당댐 주변 지역의 문제가 팔당댐과 그것을 식수원으로 삼는 수도권이 없어지지 않는 한 계속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행을 다녀올 당시에는 아름다운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지만, 앞으로 이 지역을 다시 갈 일이 있으면 아름다운 풍경 뒤에 숨어 있는 지역 주민의 한도 생각해볼 것이다.

 

2. 험준한 자연과 그것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노력, 또아리굴

    어느덧 열차는 길고 긴 양평 구간을 빠져나왔고, 여행 당시 복선 구간의 끝인 만종역에 도달했다. 만종역 이후 구간은 일제강점기였던 1940년대에 지어지고 나서 거의 모습이 변하지 않았다. 기관차가 일제강점기의 증기기관차에서 최신식 전기기관차로 바뀌었고, 산업화 때 선로 위에 전차선이 추가된 게 변화의 거의 전부일 정도이다. 그만큼 속도는 복선전철화 구간보다 느려졌지만, 그 대신 차창 밖에 보이는 아름다운 치악산 자락은 마치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만들었고 기차여행의 낭만이 무엇인지를 느끼게 해줬다. 그리고 이 구간은 초등학교 1학년 때, 삼촌과 주천강 계곡에서 놀다가 삼촌 집으로 돌아갈 때 이용한 적이 있었는데, 그 시절의 추억도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이 구간을 통과하다가 신기한 일이 하나 생겼다. 분명 긴 터널을 통과했는데, 차창 밖 풍경이 통과 전의 차창 풍경과 거의 비슷했다. 왜 그럴까? 이 문제의 해답은 바로 치악산 산악지대의 고도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건설된 루프식 터널 금대 2터널이었다.

    경사진 지형을 극복하는 것은 옛날부터 기술이 발전한 지금까지 교통계획에서의 숙제이다. 왜냐하면, 철도와 도로는 경사가 너무 높으면 속도와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기 때문에 경사 제한이 존재하는데, 이 제한이 매우 낮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기준으로 철도 노선의 최대 허용 경사도가 겨우 3.5%, 고속도로가 5%에 불과할 정도이다. 특히 철도차량의 경우, 마찰계수가 낮은 철 차륜을 사용하기 때문에, 마찰계수가 높은 고무 타이어를 사용하는 자동차보다 경사에 취약하다. 그래서 교량과 터널 기술이 부족하던 시절의 철도와 도로는 산악지대를 최대한 회피하고 평지와 단층대를 따라가는 경로로 지어졌다. 조선 시대 서울~부산 사이 최단 경로인 조령 대신 높이가 낮은 추풍령을 통과하는 경로로 지어진 경부선, 양산단층과 신갈단층을 따라서 지어진 경부고속도로가 그 예시이다.

    어쩔 수 없이 산악지대를 통과해야 하는 경우, 고도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우회하는 경로를 사용하거나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시설물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철도의 경우, 도로보다 경사 제한이 심해서, 산악지대를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진 시설물의 종류가 많았다. 급경사 구간 정상부에 설치된 모터에 달린 쇠줄로 열차를 끌어 올리는 방식인 강삭철도, 열차 대차에 설치된 톱니와 레일에 설치된 톱니가 서로 맞물려서 경사 구간을 올라가는 치상 궤도, 산악지대 경사면에 N자 모양으로 선로를 설치해서 중간 구간에서 열차가 후진하는 스위치백, 똬리를 튼 뱀처럼 철도를 한 바퀴 돌려서 철도의 경사를 낮추는 역할을 하는 루프식 터널이 그 예시이다. 루프식 터널의 경우, 도로에도 사용되고 있으며, 지형이 매우 험한 울릉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이런 시설물들은 속도가 느리고 교통시설의 용량을 감소시키기 때문에, 점차 없어지는 추세이다. 영동선에 있던 강삭철도의 경우 1963년에 우회 철도가 개통하면서 폐선되었고, 영동선 스위치백 역시 앞서 언급한 우회 철도와 함께 2012년에 솔안터널이 개통하면서 사라졌다. 여행 당시에 봤던 두 루프식 터널 역시 각각 202012월과 20211월에 중앙선 신 선로가 개통하면서 사라졌다.

    최근에 지어지는 철도와 도로가 점차 고속화되는 추세이고, 교량과 터널 기술이 많이 발전해서 산악지대를 회피하거나 앞서 언급한 시설물을 사용해서 고도 차이를 극복하는 대신 장대 터널로 정면돌파하는 방식으로 건설되고 있다. 그런데 교량과 터널 기술이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교통계획에서의 숙제로 남은 구간이 존재한다. 그 구간은 바로 고원지대에서 저지대로 넘어가는 구간이다. 이런 구간의 경우, 양 끝 지점의 고도 차이가 크기 때문에, 고도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경사로를 사용해야 한다. 21세기에 준공되었지만 우회하는 경로를 사용하는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구간, 새만금 포항 고속도로 익산~진안 구간이 그 예시이다. 아예 곡선반경이 큰 루프식 터널을 지어버려 고도 차이를 극복하면서 철도의 속도에 방해가 되지 않게 하기도 한다. 2012년에 준공되어 기존 스위치백 철도를 대체한 영동선 솔안터널이 그 예시이며, 250km/h급 준고속철도로 건설된 경강선 역시 영서고원과 동해안 사이의 고도차를 극복하기 위해서 루프식 터널을 사용하려 했으나 무산되었다.

    아마 경사진 곳을 정상 속도로 이동할 수 있을 정도로 힘 좋은 신교통수단이 발명되지 않는 이상, 산악지대, 그중에서도 고원과 저지대를 잇는 구간은 노선계획에서의 영원한 숙제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통일이 되면 개마고원의 존재로 인해서 고원과 저지대를 잇는 구간이 더 많아질 것이고 이들은 교통 노선을 계획하는 사람의 머리를 아프게 할 것이다.

 

3. 열차 안에서 본 지방 소멸의 현 상황

    백두대간 죽령을 넘는 긴 터널 하나를 지나면 경상북도 영주시에 다다르게 된다. 경상북도 구간은 백두대간을 넘기 전 충청북도 구간과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차창 바깥은 치악산, 소백산 자락의 험준한 산악지대와 푸르고 넓은 남한강에서 높이가 낮은 야산들과 그 사이사이에 있는 시골 마을과 간이역들로 바뀌었다. 열차도 영주역 이남 구간은 전철화가 아직 안 됐기 때문에 영주역에서 기관차가 전기기관차에서 디젤기관차로 교체되었다. 8분이나 소요되는 기관차 교체는 중앙선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며, 가슴을 벅차오르게 했다. 차내 승객들의 모습도 바뀌었다. 경기도 구간에서 내 귀를 채우던 표준어는 사라졌고 그 자리는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가 차지했다. 차내 승객들의 얼굴에는 평균적으로 주름이 많아졌고, 검고 곧은 머리카락보다, 구불구불한 회색이나 백색 머리카락을 가진 승객들이 많아졌다. 그리고 만석이었던 경기도 구간과 다르게, 빈자리도 많아졌다. 그 덕분에 승무원한테 양해를 구하고 콘센트가 있는 출입문 쪽 자리에서 노트북을 충전할 수 있었다. 경상북도 구간의 이런 노령화된 모습은 여행을 다녀오고 난 5개월 뒤, 강승범 교수님의 도시계획 수업 시간에 독서 비평 조별 과제를 하면서 왜 그런지 알 수 있었다.

    도시계획 수업 시간에서 우리 조가 고른 책은 지방 소멸, 어디까지 왔나?”였다. 이 책은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 유선종 교수가 2018년에 쓴 책으로 지방 소멸의 실태를 인구, 가구 그리고 주택에 관한 여러 가지 지표를 통해서 보여주는 책이다. 책에서 제시된 지표로는 고령화율, 가구 중위연령, 마스다 교수의 지방소멸위험지수 등 기존에 지방 소멸의 지표로 쓰이던 지표들도 있었고, 인구 노후도, 가구 노후도 그리고 주택 노후도 등 저자가 책을 쓰면서 새롭게 만든 지표들도 있었다. 지표를 설명하는 부분 뒤에는 전국을 시도 단위, 시군구 단위 그리고 읍면동 단위로 분할하고 지표의 정도에 따라 색을 달리한 지도가 첨부되어서 지방 소멸이 심각한 지역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만들었다. 각각의 지표 지도를 볼 때 중앙선 경상북도 구간에 포함된 6개 시군을 유심히 봤는데, 그 과정에서 놀라운 점을 하나 발견했다. 대부분의 지표 지도에서 6개 시군이 진한 푸른색으로 칠해져 있던 것이다. 이 특징을 발견하고 나서, 여행 당시 봤던 차내 승객들의 모습과 빈자리들이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갔다.

    경상북도는 여러모로 지방 소멸의 최전방에 자리한 지자체이다. 먼저 인구 분포의 경우, 경상북도는 2021년 기준으로 20~39세 청년층 비율이 21.49%로 전국에서 두 번째로 낮다. 반면,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은 22.22%로 전국에서 두 번째로 높으며 UN의 분류 기준에 의하면 초고령사회다. 그리고 소멸위험 지역 지자체 비율이 도내 지자체 가운데 78%, 전국의 광역 지자체 가운데 제일 높다. 경상북도 중에서도 중앙선이 지나는 지역의 지방 소멸 문제는 더 심각하다. 그중에서도 의성역이 위치한 의성군, 화본역이 위치한 군위군의 문제가 두드러진다. 먼저 0~14세 유소년 인구에 대한 65세 이상 고령층 비율인 노령화 지수의 경우, 군위군이 전국 1, 의성군이 2위이며, 노인 인구 비율 역시 의성군이 전국 1, 군위군이 2위이며 소멸위험지수 역시 의성군이 1, 군위군이 2위로 둘 다 소멸 고위험 지역이다. 경상북도 구간의 나머지 영주시, 안동시, 영천시, 경주시는 의성군과 군위군 정도는 아니지만, 지방 소멸의 위협 속에 놓여 있다. 이들은 소멸 위험 지역으로 네 지자체 모두 최근 몇 년 사이에 인구가 감소하였다.

    현재 경상북도의 상황은 통계 자료와 눈으로 보이는 것 둘 다 심각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먼저 중앙정부 차원에서는 인구감소지역, 관심 지역인 지자체에 지방 소멸 대응 기금을 지원하고 있으며, 중앙선 경상북도 구간 6개 지자체 모두가 지방소멸대응기금 지원 대상이다. 경상북도 차원에서는 전국에서 최초로 지방소멸대책특별위원회를 수립해서 2021년부터 활동을 개시하였다. 기초지자체 차원에서의 해결책들도 많이 시행되고 있다. 먼저 영주시는 10만 인구를 지키기 위해 영주사랑 주소 갖기운동을 추진하고 있고, 베어링 국가산단을 유치했다. 안동시는 경북혁신도시가 있는 예천군과의 통합을 추진하고 지방소멸대응기금으로 백신 산업을 특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영천시, 의성군, 군위군 3개 지자체는 대구광역시가 통합 이전하는 군부대를 유치해서, 군부대 관련된 정주 인구를 유치하려 하고 있다. 영천시는 군부대 말고도 대구권 광역철도, 대구 도시철도 1호선 연장선을 유치해서 대구와 좀 더 가까워지려고 하고 있다. 군위군은 대구경북통합신공항을 유치해 공항 건설의 파급 효과를 누리고자 하고 있다. 여기에 한술 더 떠서 군위군은 대구광역시로의 편입을 추진했고 20237월부로 대구의 일부가 되는 것이 확정되었다.

    경상북도 구간의 늙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마음이 아팠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본가가 영천시여서 어린 시절부터 명절 때 많이 갔던 곳이라 경상북도 하면 친척과 쌓은 많은 추억이 제일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 아픔은 친할아버지가 근무하셨던 아름다운 간이역, 화본역과 아버지가 상경하실 때 이용하셨던 아버지 고향 근처, 신녕역에 열차가 도착했을 때 절정에 달했다. 신녕역에서 아버지한테 전화를 드렸더니 기분이 좋아 보이시는 목소리로 조상님들이 근처에 계신다고 답장하셨다. 아버지께 기차 안의 모습은 차마 말씀을 못 드렸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잘했던 결정이었던 것 같다.

 

4. 보존이냐 발전이냐?: 개발사업과 문화유산

    열차는 어느새 영주를 넘어서 안동까지 다다랐다. 차창 바깥은 영주 주변과 크게 달라진 건 없었고 차내에는 빈자리가 더욱 많아졌다. 열차가 곧 안동역에 도착한다는 방송이 울리자, 속으로 벌써 안동이네.”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와 동시에 초등학교 때 들린 하회마을과 그곳에서 먹은 안동찜닭이 생각났다. 안동역에 도착하기 직전에, 차창 밖에 거대한 한옥이 하나 보였다. 규모가 매우 커서 느낌부터가 심상치가 않았다. 안동역에 도착하고 나서 이 한옥의 정체에 대해서 인터넷 검색이 해봤는데, 알고 보니 이 한옥은 중앙선 부설로 인해 훼손된 우리나라의 보물 제182, 임청각이었다. 게다가 임청각은 그냥 오래된 고택이 아니라 독립운동가 석주 이상룡 선생의 본가이자 고성 이씨의 500년이나 된 고택으로 매우 가치가 높은 문화재였다. 그래서 일부 사람들은 일제가 고의로 독립운동가의 기를 꺾기 위해 임청각을 훼손시켜가며 중앙선을 부설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경주시 구간에서도 차창 밖에 고분군, 기와 건물 등 문화재로 추정되는 시설들이 흔하게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경주시 구간 역시 사천왕사지, 동궁과 월지, 능지탑지, 인왕리 고분군 등 철도 주변의 여러 문화재가 임청각과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었다. 임청각과 똑같이 일제가 일부러 철도를 여기에 건설했다.”라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비슷하다. 경주시 구간의 문제는 유네스코가 문화재 보존을 위해서 철도 이설 권고를 내렸을 정도로 임청각보다도 더 심각했다.

    임청각과 경주시의 사례와 같이 과거에는 개발사업으로 인해서 문화재가 훼손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 막기 위해서, 현재는 여러 법률이 신설되어서 문화재 주위에서의 개발사업을 제한하거나 규제하고 있다. 먼저 문화재보호구역은 지상에 고정되어있는 유형물이나 일정한 지역이 문화재로 지정된 경우, 해당 지정문화재의 점유 면적을 제외한 지역으로서 그 지정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하여 문화재보호법27조에 따라 지정·고시된 구역이다. 문화재보호구역 내부에서는 문화재의 현상 변경을 만들 만한 동물 사육, 오염물질 배출, 광고물 부착 등 여러 행위가 문화재청장의 허가가 있어야지만 이루어질 수 있다.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은 지정문화재의 역사문화환경 보호를 위해서 시, 도지사가 문화재청장과 협의해서 정하는 구역으로 문화재보호법13조에 근거한다.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의 범위는 해당 문화재의 외곽 경계로부터 500m 이내가 원칙이며, 필요에 따라서 500m를 초과하게 지정할 수 있다.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 내부에서는 문화재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행위가 제한되며, 제한되는 행위는 개별 문화재에 따라서 구체적인 행위 기준을 고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서, 석촌동 고분군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의 경우, 건축물의 색, 외벽의 재료 등이 제한된다.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 내부에서는 국가지정문화재의 현상 변경, 국가지정문화재의 보존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행위, 국가지정문화재의 보존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탁본 및 촬영 행위 등 여러 행위가 문화재청장의 허가가 있어야 가능하다.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은 규제가 너무 천편일률적이라는 비판이 존재했기 때문에, 2022119일에 정부가 주거, 상업, 공업지역에서 규제 범위를 500m에서 200m로 줄이고 지자체 자율권을 확대하는 등, 개선 방안을 내놓았다.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과 문화재보호구역은 이미 등록된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해서 지정되는 구역이다. 그렇다면, 춘천 레고랜드 사례와 같이 문화재가 건설 중간에 출토되는 경우는 어떻게 할까? 이 경우에는 매장문화재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이 출토된 문화재를 보호한다. 이 법률에 따르면, 매장문화재를 발견했을 때는 발견자나 매장문화재 유존지역(매장문화재가 존재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지역)의 소유자, 점유자 또는 관리자가 그 현상을 변경하지 말고 발견 사실을 7일 이내에 관할 지자체나 경찰에 신고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문화재 발견이 개발 공사 중간에 이루어졌을 경우, 즉시 공사를 중단하여야 한다. 잠실 진주아파트 재건축 사업이 잠시 차질을 빚었던 것도 재건축 공사 과정에서 삼국시대 문화재가 출토되어서 그랬다.

    여행을 갔다 오고 나서 2년이 지난 현재, 임청각과 경주 시내 문화재들은 동해선과 중앙선이 고속화되고 외곽 지역으로 이설되면서 철도와의 불편한 동거를 마쳤다. 임청각의 경우, 임청각을 지나는 마지막 열차 전면부에 임청각 마지막 기차, 잘못된 만남의 끝이라는 플랜카드를 붙이고 운행했을 정도로 철도 이설에 환호했다. 그리고 제2, 3의 임청각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앞서 설명한 여러 법률이 만들어졌고 제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법률이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제2의 임청각 사태는 여전히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시가 부동산개발분석 수업 시간에 손상혁 교수님께서 언급하신 김포 장릉 아파트 사건으로, 장릉 근처에 아파트를 짓던 건설사들이 문화재청에 문화재 현상변경 허가를 받지 않고 건설을 진행하다가 문화재청이 인천광역시 서구청과 건설사를 고발해서 건설이 중단된 사건이다. 이와 반대로, 지나친 규제가 역효과를 낸 사건도 있었다. 문화재 보존을 위해 만들어진 법률에 대한 지역 주민의 분노가 문화재로 향해서 결국 문화재가 훼손된 풍납토성이 그 사례이다.

    개발사업과 문화재 문제, 그리고 문화재 규제에 대한 의견은 사람마다 다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도시공학과 관련된 직장들은 다른 직종에 비해서 일하면서 다루는 대상지의 면적이 넓어서, 임청각 문제와 같은 문화재 문제를 만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그리고 개발사업 중간에 문화재 문제가 생기면, 앞서 언급한 사례들과 같이 좋은 결과로 끝나지 않을 확률이 높다. 그래서 임청각과 중앙선 문제, 더 나아가서 개발사업과 문화재 문제에 대해 알아보면서, 도시공학과 학우들이 문화재와 개발사업의 관계에 대해 이해할 필요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5. 님비 현상과 근시안적 결정: 동해선 호계역, 신해운대역

    열차는 경주시에서 중앙선에서 동해선으로 갈아탔고, 그 뒤로 1시간이 지나자 열차는 길고 긴 경상북도 구간을 넘어가고 울산에 도착했다. 차내는 경주 근처부터 빈자리가 많이 줄어들었고 오히려 수도권 구간보다도 혼잡했다. 승객들도 어르신의 비율은 점차 줄어들었고 그 대신 내 또래로 보이는 사람들이 부산에 가까워질수록 더 많아졌다. 차창 밖은 경상북도 구간보다 더 도시다운 색채가 짙어졌고 수도권과 느낌이 비슷했다. 울산광역시로 진입하고 나서 제일 먼저 만나는 역은 바로 호계역이다. 호계역은 경상북도 구간의 평범한 간이역처럼 역 구내 선로 수가 적었고 역 건물 규모가 작았으나, 이와 대비되게 수도권 구간의 웬만한 정차역들보다 더 많은 승객들이 승강장에서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울산광역시 북구 인구 절반보다 많은 12만 명의 배후 인구를 가졌으니 어찌 보면 이렇게 수요가 많은 건 이상한 게 아니다. 이렇게 지역의 중요한 교통시설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호계역은 앞으로 사라질 것이다. 그 원인은 철도 고속화, 수요 저조 등으로 인해 폐역된 대부분 폐역과 다르게, 지역의 님비(NIMBY) 현상이다.

    님비 현상은 Not In My Front Yard의 줄임말로 도시에는 꼭 필요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기피 대상이 되는 혐오 시설의 설치를 반대하는 지역이기주의이다. 님비 현상을 불러일으키는 시설로는 버스 차고지, 원자력 발전소, 하수처리장, 쓰레기 매립장 등이 있으며, 지상 철도도 그 예시이다. 지상 철도가 혐오 시설이 된 이유는 지상 철도로 인한 지역의 동서 단절, 열차로 인한 소음공해와 디젤 엔진의 매연으로 대기오염, 철도 주변부 슬럼화 등이 있다, 동해선 철도도 이런 피해 때문에, 지역으로부터 혐오 시설 취급을 받았다. 특히 동해선은 일제강점기에 지어져서, 최근에 건설되는 지상 철도와 달리, 건널목의 비율이 높고 교량과 터널 수가 적어서 지역 동서 단절 문제가 더 심각했고, 아직 전철화가 안 되어서 디젤 열차가 운행했기 때문에, 열차로 인한 소음공해와 매연이 더 심각했다. 복선전철화 계획이 수립될 당시 뉴스 기사에 나온 그동안 동해남부선이 북구 도심지를 통과해 지역발전을 가로막는 최대 걸림돌이었다.”라는 울산광역시 관계자의 의견과 마을 중간을 관통하는 철도가 지역발전과 도로교통의 흐름을 막는다.”라는 주민의 의견에서 당시 호계역과 동해선에 대한 시각을 알 수 있다. 결국, 동해선 복선전철화 사업계획은 지역의 님비 현상으로 인해서 호계역을 지나면서 기존 노선을 활용해 고가화하는 방안에서 시가지 외곽으로 돌아가는 방안으로 변경되었다.

    여행을 갔다 오고 나서 1년이 지나자, 호계역은 폐역되었고, 그 대신 호계역과 약 2km 떨어진 새로운 선로 위에 북울산역이 새로 생겼다. 지상 철도는 터널과 고가철도로 바뀌었고 우렁찬 디젤기관차와 무궁화호 디젤동차는 조용한 누리로 전기동차와 전기기관차로 바뀌었다. 게다가 앞으로 이 북울산역에는 동해선 광역전철이 몇 년 안에 개통할 것이고, 울산광역시는 중앙선-동해선 KTX를 북울산역에 정차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님비를 불러일으키던 혐오 시설이 불과 몇 년 사이에 많은 지역에서 원하는 고속철도역 겸 전철역으로 바뀐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북울산역에 관한 기사들을 보면, “북울산역은 인근 송정지구에서도 걸어서 입장하기엔 너무 외진 곳에 있고, 버스 노선도 크게 줄어 접근성이 크게 떨어진다.”, “원래 호계역 입지가 이쪽 주민들은 앞에 버스가 지나다니는 것도 많이 있고 해서 접근하기가 편했잖아요. 근데 저기(북울산역)는 버스 다니는 것도 지금 여기 다니지도 않는 마을버스 딱 한 대뿐이라서."라는 등 접근성 문제가 크다는 주민들의 의견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북울산역의 접근성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지역 주민들의 님비 현상으로 인한 계획 변경인데, 그것은 잊어버린 채로 지자체와 정부를 비판하니 참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다.

    동해선 부산 구간에도 비슷한 사례가 존재한다. 바로 폐역된 동해선 해운대역과 새로 만들어진 동해선 신해운대역이다. 철도청이 주장한 동해선 복선전철 사업 해운대 구간은 기존 해운대역을 지나가는 노선을 그대로 복선화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부산광역시에서 철도가 해운대구 우동의 지역 단절을 유발하고, 해운대 신시가지 개발을 지연시키고, 수영삼거리 일대 교통난을 증대시키며 지역에 소음 피해를 준다는 이유로 철도를 외곽 지역인 반송동으로 이설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나마 이 방안은 경제성 문제 때문에 무산되었으나, 기존 노선을 따라가는 방안 역시 부산광역시의 강력한 반대로 인해 무산되어서 결국 기존 동해선 해운대역은 폐역되었고 동해선 신선 신해운대역이 기존 해운대역과 무려 2.5km나 떨어진 곳에 만들어졌다. 신해운대역 역시 북울산역과 마찬가지로 지역 주민들이 접근성 및 연계교통 부실 문제로 불편함을 호소하고 있다. 북울산역과 마찬가지로 자업자득이라는 말 말곤 할 말이 없는 상황이다. 특히나 신해운대역 사례의 경우, 기존 해운대역이 해운대구의 주요 도로인 해운대로 근처에 있어서 시내버스 연계도 편리하고, 부산 도시철도 2호선과도 환승 되는 최적의 입지에 있었기 때문에 너무나도 아쉬운 결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북울산역과 신해운대역의 사례 조사를 하면서 속으로 도시계획을 할 때 지역 주민의 지나친 참여가 과연 옳은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도시계획 수업의 Q&A 시간에 강승범 교수님께서 개인적으로 교통 정책 수립이 주민 참여형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반대한다.”라고 말씀하셨던 것과 스마트도시대중교통 시간에 정진혁 교수님께서 교통 정책을 설명하시면서 설득시키기가 어렵다. 벽에 대고 말하는 것 같다.”라고 말씀하셨던 게 생각났다. 두 사례의 기승전결은 정진혁 교수님과 강승범 교수님의 말씀이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를 깨닫게 해줬다. 여기에 더해서, 예비타당성조사 말고도, 도시계획에서의 지역이기주의를 막을 제동 장치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6. 여행을 마치며

    어느덧 열차는 마지막 역인 부전역에 도착했고, 장장 7시간 42분의 대장정이 끝났다. “우리 열차는 잠시 후 마지막 역인 부전역에 도착합니다.”라는 차내 방송이 울리자. ‘퀘스트 클리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스타그램에는 완주라는 단어와 함께, 청량리역에서 받은 승차권을 올렸다. 그리고 열차에서 하차하고 나서, 6시간 동안 부산을 돌아다니면서 돼지국밥과 밀면을 먹었고, 광안리와 해운대 블루라인파크 구경도 했다. 3개월 만에 온 부산이라 반가웠지만, 근성 열차를 탔을 때만큼 설레지는 않았다. 집으로 돌아갈 때는 SRT를 타고 돌아갔다. 집에서 출발한 것까지 포함하면 10시간이나 걸린 거리를 겨우 2시간 만에 돌아가니까, 시원하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했다.

    여행기를 쓰는 2023년 현재는 여행 당시의 구 선로 구간이 대부분 사라졌고 앞으로 남은 구간도 2024년에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이번 여행은 구 중앙선 선로와 함께한 추억으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