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겨울, 임업 교수님께서 방학마다 주최하시는 책 읽기 모임에 참가하였다. 우리가 방학 동안 읽은 것은 「능력주의는 허구다」라는 책이었다. 다음은 책 본문 첫 장에 쓰인 내용인데, 책의 방향성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하여 옮겨보았다.
능력주의 사회에서는 열심히 노력해서 능력을 갖추면 그 누구라도 모든 장애물을 극복하고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의 출발점이 어디건 표면적으로는 그 어떤 제한도 없다. 능력주의 신화가 내건 약속에 의하면, 재능과 능력이 있으면 당신은 얼마든지 높이 올라갈 수 있다. 사람들은 이런 이미지를 열광적으로 지지한다. 적어도 추상적으로나마 자신이 노력한 만큼 되돌려 받는다는(보상을 받는다는) 원칙을 열렬히 환영한다. 또한 사람들은 능력주의 시스템은 궁극적으로 공정하며, 평등한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능력주의의 약속은 지켜질 수 있다고 믿고 싶어 한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능력주의 이데올로기가 지금까지 살아남아 있는 것이다. (스티븐.J. 맥나미 외1, 능력주의는 허구다, 김현정, 사이(2015), p.11)
이처럼 우리는 사람의 능력에 따라 보상을 해주는 사회가 어느 정도 공정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능력은 노력을 통해 만들어질 수 있고, 노력은 손쓸 수 없는 인생의 다른 요소들과는 다르다고 믿기 때문이다. 노력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 ‘능력’이고, 따라서 노력의 성과 지표로도 볼 수 있는 ‘능력’이 보상의 기준이 되는 것은 공정하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이 ‘능력’에 해당하는 많은 것들이 사실 노력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손쓸 수 없는 인생의 다른 요소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능력주의, 즉 능력을 척도로 보상이 내려지는 사회를 사실상 공정한 사회라 보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도시공학과에 입학해서 세부적으로는 다양한 수업을 듣게 되지만, 관통하는 한 가지 목표가 있다면 ‘좋은 도시’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는 것이다. 좋은 도시를 이루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있을 테지만, 공정함, Equity는 생략할 수 없을 것이다. 도시의 구조와 시스템은 개개인이 접할 수 있는 기회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에 더욱 신중히 구축되고 수정되어야 한다.
공정함의 개념을 설명할 때 ‘눈높이’와 ‘발판’이 예시로 많이 사용된다. 설명하자면, 세상을 바라보는 눈높이가 제각기 다를 때, 그 차이를 인지하고 각각에 맞는 높이의 발판을 제공하여 동등한 시야에서 세상을 보고 판단할 수 있는 환경은 적어도 마련되는 것이 옳다. 다만 이때 문제가 되는 것이, 이 ‘눈높이의 다름’의 어디까지가 개인의 책임인가에 대한 것이다. 눈높이의 차이가 단순히 키에서 비롯된다고 가정하자. 누군가는 키가 커지기 위해 매일 줄넘기를 하는 등의 노력을 했을 것이다. 누군가는 노력 없이 타고나길 키가 크게 태어났을 수도 있다. 노력해서 키가 커진 사람에게는 눈높이를 맞춘다는 이유로 본인 것보다 높은 발판이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이 불공정하게 느껴질 수 있다. 이처럼 ‘발판’과 같은 인센티브가 주어지는 상황에서는 무엇이 노력으로 극복될 수 있는지 없는지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YDT(연세토론학회) 소속으로 1년간 지내며 다양한 논제에 대한 글을 써왔다. 한 번은 ‘공공기관 지역인재 채용 제도, 폐지해야 한다.’라는 주제로 토론이 이루어져 사전에 그에 대한 글을 써야 했다. 공공기관 지역인재 채용 제도를 반대하는 측에서는 해당 제도가 사람들이 ‘능력’에 따라 채용되지 못하게 하는 불공정한 제도라고 주장한다. 이전에 북피플에서 ‘능력주의는 허구다’라는 책을 읽고 깊이 공감했던 나는 이에 대해 다시 근본적 의문이 들었다. 그들이 주장하는 ‘능력’이 순수 그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것이 맞는가? 이러한 질문을 바탕으로 폐지를 찬성하는 측의 주장을 반박하며 ‘능력주의’의 본질을 비판하는 글을 썼었다.
꽤 오래 전에 썼던 글이라 부끄럽지만, 향후 도시에서 어떤 사람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제공될지에 대한 영향을 미치는 일을 하게 될 수도 있는 우리이기에, 한 번쯤 능력주의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입장의 글을 읽어보면 좋을 것 같아 공유한다. 능력주의가 정말 문제가 있는 것인지, 무엇이 옳은 판단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잘못된’ 판단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최대한 다양한 관점을 미리 접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본문: <어디까지가 당신의 능력입니까?>
공공기관 지역인재 채용 제도는 여러 가지 취지를 가지고 있지만 그중에 중요한 한 가지는 수도권과 지방의 불균형을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공공기관이 위치한 지역의 대학 출신들에게 일정 수준의 할당량을 부여하는 특혜를 줌으로써 서울권 대학으로 학생들이 쏠리는 현상을 완화하고, 인재들이 지역에 남아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그리고 그 특혜의 이유는, 수도권 대학과 지방 대학 사이 인프라와 기회에 불균형, 불평등이 있다는 것에서 온다.
하지만 제도에 반대하는 측은, 이 불평등이라는 것을 맞추려다, 오히려 수도권 학생들에게 역으로 불평등한 상황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능력’과 ‘실력’을 기준으로 채용을 해야지, 출신 대학이 지방에 있다는 이유로 특혜를 받는 것이 오히려 공정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면 이때 궁금해지는 것이 있다. 그들이 주장하는 ‘능력’은 과연 공정한 기준일까? ‘능력’이 과연 한 사람에게 채용과 같은 보상을 줄 만한 좋은 기준일까?
그들이 칭하는 ‘능력’을 평가하는 지표에는 학벌, 학점, 대외활동과 같은 것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지표들을 통해 그 사람의 재능, 근면성, 태도 등을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지표들이 과연 그 사람이 노력해서 얻은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 운이 좋아서 얻은 것은 없을까? 운을 통해 얻은 것을 잘 거르는 것도 중요하다. 노력과 상관없이 쌓은 것에 대해서까지 보상을 주는 것이야말로 불공정하기 때문이다.
노력과 상관없이 결정되는 것 중 대표적인 한 가지가 바로 지금 논제와 관련된, 거주 공간이다. 수도권에 태어나느냐, 지방에 태어나느냐는 우리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태어나보니 그곳이었고, 자라 보니 그곳이었다. 하지만 이 거주 공간은 충분히 교육 기회의 불평등을 유발하는 요소로 인정을 받아, 우리가 대학에 들어올 때도, 우리의 입시에 영향을 미쳤다. 대표적으로 농어촌 전형은,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곳에서 교육을 받아 상대적으로 입시에 불리했기에, 그것을 감안하여 학생의 노력을 평가하고자, 농어촌 지역 출신 학생들을 위해 만들어진 전형이다. 지금은 인터넷과 교통의 발달로 수도권과 지방에 큰 차이가 없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분명히 차이는 존재한다. 학습 분위기, 주변 사람들, 교육 인프라 등을 고려하면 농어촌 학생들에게는 분명 더 걸림돌이 많았을 것이다.
그럼 누군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수도권과 지방의 기회 불평등이 대학 입시 과정에서 어느 정도 보정이 됐다면, 그 이후에는 굳이 지방 대학 출신들에게 또 다시 특혜를 줄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닌가? 지방 대학에 기회가 없다는 생각이 들면, 노력해서 수도권 대학을 가면 되잖아!”
한국고용정보원 통계에 따르면 수도권 학생 70%는 수도권 대학을 거쳐 일자리까지 수도권에서 갖게 되었다고 한다. 반면 비수도권 학생 84%는 비수도권 대학에 진입하며, 대학부터 일자리까지 모두 수도권으로 이동한 비수도권 학생은 4% 정도에 그친다고 한다. 결국 거주공간이 생각보다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거주 공간 이외에도 교묘하게 마치 진정한 능력인 것 마냥 영향을 미치는 것들에는 부모의 경제적 자원, 가족의 배경, 부의 세습, 사회적 자본, 문화적 자본 등 이외에도 수많은 것들이 존재한다.
‘지금 당신의 능력이 당신을 평가할 만한 정확한 지표냐’고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지 못하겠다. 아니, 아마 아니라고 말할 것 같다. 나 역시 지금 나의 능력이라고 평가받는 것들 중 많은 부분은 운에서 비롯되었다고 인정한다.
지방 소재 대학 출신들에게 일자리 특혜를 주는 것이 수도권 학생들에게 역차별이라고 주장하며, ‘능력’을 통해 공정한 평가를 해야 한다는 이들에게 되묻고 싶다.
그렇다면 과연 ‘능력’은 공정한 평가 기준이 되는가? 당신이 강조하는 능력 중 어디까지가 당신의 진정한 ‘능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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