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맨해튼에는 머리 위를 지나는 공중 운송철도 ‘하이라인(High Line)’이 있었다. 1930년대에 지어졌다고는 믿기지 않을 고가철도를 두고 누구나 한 가지 큰 의문이 들것이다. 왜 지상을 놔두고 굳이 비싼 돈을 들여 땅위에 떠있는 철로를 선택했을까? 사실 하이라인이 존재하기 전인 1847년 뉴욕은 화물운송을 위해 땅위에 철로를 깔았다. 하지만 자동차를 포함한 교통량과 유동인구가 증가하며 열차와의 사고가 잦아졌고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철도회사 측은 철로, 열차 관리자를 고용하여 사고를 방지하고자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뉴욕시는 지상 철로를 철거하기로 결정하였고, 대안을 찾던 도중 나온 해답이 ‘하이라인’이었다.
하이라인의 전경 (출처 : Independent.co.uk)
1934년 이 고가선로는 뉴욕 최고의 공공 발전 시설이라는 칭송을 들으며 개통된다. 하지만 맨해튼의 약 2km를 꿰뚫는 이 ‘천재적인’ 계획은 얼마가지 못해 또 다른 장애물에 부딪힌다. 바로 철도보다 더 효율적인 교통수단과 교통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고속도로와 트럭을 이용한 화물운송으로 철도운송이 줄어들기 시작하여 1980년에 하이라인은 칠면조 운송을 마지막으로 방치된다. 방치된 하이라인 위의 철로에는 점차 야생 동식물이 자리 잡기 시작했고, 아래로는 음침하고 더러운 노숙자들의 공간이 되었다. 얼마 안 있어 이 잠자고 있던 고가선로는 하이라인 주변 땅의 소유자들과 부동산 지주 단체 등 이익집단의 의견으로 철거되기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하이라인을 철거하려는 뉴욕시에 반발하며 적극적으로 고소장을 내민 단체가 있었으니 바로 ‘하이라인 친구들’의 대표 조슈아 데이비드와 로버트 해먼드였다. 뉴욕시가 적합한 절차를 밟지 않고 하이라인을 철거하려 한다는 목소리를 내던 이들의 직업은 다름 아닌 여행 작가와 창업컨설턴트였다. 법, 조경, 설계에 대한 전문 지식이 거의 없었던 그들은 공청회, 지역 커뮤니티와 대학을 통해 하이라인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선로 위로 올라가 불법으로 투어(tour) 하는 등 낡은 선로를 공원으로 바꾸어 보자는 운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하이라인 친구들은 브로셔, 모금행사와 각종 연회를 개최하며 그들과 뜻을 함께할 시민들을 모았다. 그러던 와중 새로운 행정부와 마이클 블룸버그가 시장으로 당선되자 그들에게 확실한 기회가 왔다. 하이라인을 지지하는 사람이 시의회 의장 과 도시계획위원회 위원장을 맡게 된 것이다. 기나긴 소송 끝에 ‘잠정적 트레일 용도 허가서’라는 성배를 얻어내고 시와 연방에서 안이 통과되어 지원금을 받게 된다.
하이라인에서 산책을 즐기는 뉴욕 시민들 (출처 : Observer.com)
본격적인 시작에 앞서 개최한 공원 설계 공모전에 51개의 팀 중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과 ‘딜러 스코피디오 플러스 렌프로’ 연합팀의 구상안이 선정된다. 풀과 잡초가 무성한 기존의 하이라인 이미지를 이용하여 하이라인에 무언가를 더하기 보다는 자연 상태 그대로 옷을 벗기고 구조물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에 초점을 맞춘 구상안이 심사단의 이목을 끌었다.
하이라인 설계공모 당선작 (출처 : friendsofthehighline.wordpress.com)
하이라인 설계공모 당선작 조감도 (출처 : Green Urbanism and Ecological Infrastructure)
이와 더불어 경제적인 타당성을 입증하며 반대하던 이익집단의 저항도 줄어들자, 2006년 드디어 공사에 착수하여 2014년 마무리 되었다. 한때 ‘죽음의 거리’라고 불리던 10번가 거리에는 이제 바쁜 뉴욕거리와 스카이라인을 감상할 수 있는 광장이 들어섰다. 사람들은 걷고 벤치에 앉아서 책을 읽고 경치를 만끽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하이라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공원관리 기금을 포함한 공원 운영은 아직 하이라인 친구들이 도맡아 하고 있다. 그들은 뉴욕시에서 받는 예산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을 시민들과 재단의 기부로 충당하고 있다. 하이라인 속의 참된 의미는 도심 속 버려진 공간을 녹지화한 것 뿐 아니라 모든 과정이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진 민주주의에 있다.
하이라인 뿐만 아니라 기존에 쓰지 않던 공간, 구조물을 다시 활용하는 사례는 생각 외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이라인이 만들어지기 불과 몇 년 전 프랑스 파리의 고가철도였던 프롬나드 플랑테가 최초로 공원화되면서 유휴공간에 대한 재해석, 재정비 및 재활용에 대한 붐이 일어났다. ‘하이라인 친구들’ 역시 이를 모티브로 생성되었다. 비단 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선유도공원도 좋은 사례이다. 새로운 정수장이 증설됨에 따라 폐쇄되고 철거될 위기에 처하게 된 선유정수장은 건축가 조성룡씨의 손길로 2002년 공원으로 시민들의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공원 곳곳 80년대 정수조로 사용되었던 옛 흔적들은 오랜 세월과 지난 역사를 그대로 보내준다. 한 때 단절되고 냄새나던 공간에는 이제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드나들며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파리의 프롬나드 플랑테 (출처 : parisiensalon.com)
2015년 서울역 앞의 고가도로도 새로 단장하려고 한다. 9m 높이, 약 1km에 달하는 고가도로는 남대문로와 만리동 사이를 잇는 교통의 요지다. 안타깝게도 2006년 서울역 고가도로가 안전도 D등급을 받으며 이후 버스와 트럭 등의 중차량 운행이 중지됨과 동시에 철거 및 재시공이 확실시 되었다. 하지만 얼마 못 가 박원순 시장이 당선되며 서울시가 서울역 고가도로에 대한 태도를 180도 바꾸었다. 구조물을 그대로 놔둔 채 하이라인과 같은 공원과 함께 주변 17개 보행로를 조성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서울역 7017 프로젝트’라고 불리는 이 사업은 70년대의 도로들을 2017년까지 녹지화한다는 큰 포부를 담은 박원순표 도시재생 1호 모델이다.
반발도 만만치 않다. 인근 영세상인과 주민들은 이 계획이 주변 도로 폐쇄에 따른 교통단절 등으로 생존권을 위협할 뿐 아니라 교통대책 등 실질적 대안의 부재와 안전상의 문제 등 많은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하이라인의 경우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고가철도였지만, 서울역 고가의 경우 재시공하면 충분히 제 구실을 할 도로를 왜 공원화 시키느냐는 시민들의 목소리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시는 충분한 의견교환 없이 주변 일대와의 연계 및 도보관광으로 서울역을 살리겠다며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경제적 타당성 입증과 교통 혼란을 막을 대책 수립은 서울시가 떠맡은 숙제이다.
하이라인은 정말 느리게 완성되었다. 모든 계획과 구상에는 사람들의 반발과 이익집단과의 다툼이 있었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이를 이루어갔다. 단순히 제멋대로 뚝딱 짓고 말 공원이라면 이토록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을 수 있었을까? 하이라인이 천천히, 섬세히 이루어졌듯 현재 ‘서울역 7017 프로젝트’에도 박원순 시장의 ‘소통’이 빛을 발해야 할 때다.
서울역 7017 프로젝트 개요 (출처 : 이데일리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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