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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호

[50호] 광화문 광장, 어떤 모습으로 [1부] - 14 현재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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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1부, 2부로 나뉘어 연재될 예정이다. 1부에서는 광화문 광장의 현재 상황과 문제점을 진단하며, 2부에서는 광화문 광장이 어떤 공간으로 변해야하는지를 다룰 것이다.)


지난해 9월에 읽었던 기사가 생각이 난다. 광화문 광장을 현재의 위치에서 세종문화회관 쪽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 기사가 보도된 직후 몇몇 언론매체를 통해 광장 이전에 대한 찬반 의견이 제시되었지만, 논의가 지속되는 것 같지 않았다.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광화문 광장을 다룬 기사나 보도 자료는 찾기 힘들었으니까 말이다. 


광화문 광장은 2009년에 세워진 길이 557m, 너비 34m의 남북으로 긴 광장이다. 세종로 한복판에 있다 보니 좌우로 서울의 혼잡한 교통상황을 마주할 수 있고, 그 너머로는 직장인들이 바쁘게 오가고 있다. 공연, 전시회 등의 문화행사나 집회가 열릴 때에는 천막들이 광장 곳곳에 세워진다. 여름에는 광장에 설치된 분수대가 꼬마아이들의 놀이터로 변한다. 시민들은 분주히 움직이고,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동상은 제자리에서 광장을 내려다보고 있다.  


이 모습들은 광화문 광장 하면 떠오르는 익숙한 풍경이다. 마치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광장을 이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찬찬히 살펴보면 광화문 광장은 여러 문제를 지니고 있는 장소임을 알 수 있다. 도로 한복판이라는 위치는 보행자들이 광장에 자연스럽게 접근하는 것을 방해하며, 주변에 자리한 경복궁, 세종문화회관, 교보빌딩 등 다양한 건물과의 연계 역시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오죽하면 ‘세계 최대의 중앙분리대’라는 별명까지 얻었겠는가. 


지금의 광화문 광장은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서울시에서 계획 중인 다른 사업들에 비해 광화문 광장 변경은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는 것 같다. 남대문시장 상인들의 반대, 교통체증 등의 우려가 가득한 서울역 고가공원과 비교해보았을 때, 광화문 광장을 둘러싼 논란은 잠잠한 수준이다. 아직은 시민과 전문가의 다양한 의견을 들어보는 단계에 불과하다해도, 정작 광화문 광장이 왜 바뀌어야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마저 부족한 상황이다. 


광화문 광장은 서울의 중심축이자 상징적인 장소이며, 수많은 시민들이 찾는 곳이다. 이 중요한 공간을 아무런 논의 없이, 특정 집단의 생각만으로 바꾸어나간다는 것은 제아무리 사업 목적이 좋더라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광화문 광장이 지닌 문제점에 대한 충분한 인식, 광화문 광장의 미래에 관한 여러 생각과 의견의 제시이다.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광장의 모습을 그려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도 한 번 고민해보자. 광화문 광장은 왜, 어떻게 바뀌어야할까?


광화문 광장. 광화문 광장은 여러 문제점들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왜,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 것일까. 

 

시작은 육조거리. 

광화문 광장이 위치한 세종로는 일방적인 ‘통행’의 의미가 강하다. 왕복 10차선의 차도는 항상 자동차로 가득하며, 양쪽 보행로를 따라 직장인들이 자신의 목적지를 향해 바쁘게 걷고 있다. 폭 100m의 커다란 길인 셈이다.

그러나 과거의 세종로는 지금처럼 도로의 형태는 아니었다. 정도전은 한양을 계획하면서 삼각산과 관악산을 잇는 선을 도시의 중심축으로 삼고, 축의 북측 시작점에 경복궁을 세우고 그 좌우로 종묘와 사직을 배치했다. 그리고 한양의 중심축 상에 놓인 광화문에서부터 지금의 세종로 사거리까지의 빈 공간 좌우로 육조를 배치하였는데, 이 공간이 바로 세종로의 원형인 육조거리이다. 국가의 업무를 맡은 관청들이 자리했으며, 당시 상업의 중심지였던 종로를 비롯한 주요 길들이 모이는 육조거리는 한양의 중심이자 정신적인 상징이었다. 

조선은 철저한 신분사회였기 때문에 육조거리 역시 모두가 평등한 수평적 공간이기보다는 권력으로 집중되는 직선적, 수직적 공간이었다. 그러나 궁궐과 주요 관청이 위치하며 여러 길이 모이는 중심지다보니 고위 관리부터 하층민에 이르기까지 온갖 계층의 사람들이 거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도성 내 평민들은 육조거리에서 서로 거래도 하고, 나라에서 붙인 방도 살펴보고, 이런저런 이야기꽃도 피웠다. 때에 따라서는 상소문을 올리는 선비나 사신 행렬, 임금의 행차도 구경할 수 있었다. 육조거리는 딱딱하고 엄격한 성격을 지닌 공간일 수 있음에도 다양한 사람들의 삶으로 가득했던 것이다. 


육조거리. 육조거리는 한양의 중심축이자 정신적인 상징이었다.

그렇지만 사람들의 삶이 가득한 광장이기도 했다.


육조거리가 오늘날의 대로(大路)로 바뀌게 된 것은 일제강점기부터였다. 원래 육조거리 끝단에서 숭례문까지를 잇는 도로는 없었다. 그러나 국권을 강탈한 일제는 1926년 경복궁 안에 조선총독부 청사를 세우면서 광화문부터 숭례문까지 이어지는 도로를 개설하고, 육조거리 좌우의 건물들을 총독부 건물의 중심축에 맞추어 새롭게 재편하였다. 우리가 지금 마주하는 광화문 앞의 모습은 일제강점기 때 기초가 형성된 것이나 다름없다. 한양의 남북축을 관통하는 도로는 광복 이후로 군사정권을 겪으면서 계속 확장되었고, 물자, 교통 수송의 의미가 강해지면서 예전처럼 사람들이 모여들기 어려워졌다. 결국 약 500년 동안 한양 중심의 광장으로써 기능해온 육조거리의 정체성은 사라져버렸다. 

광화문 앞에 시민들이 걸어 다닐 수 있는 빈 공간이 자리잡아야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일제강점기를 겪으면서 사라진 경복궁 앞 육조거리의 모습을 되찾는 것. 이는 외세의 개입으로 인해 뒤틀려버린 우리의 도시공간을 바로잡는 일이요, 한 도시의 정신적인 중심을 되살리는 일이다. 도시의 중심을 바로세우고 가꾸어나간다는 것은 무작정 개발논리를 앞세우기보다는 도시 고유의 정체성을 지켜나가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오랜 역사를 가진 도시일수록 중심축을 간직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감탄을 아끼지 않는 런던, 파리, 프라하 등의 유명한 도시들도 각자의 중심을 온전히 지켜나갔다. 광화문 광장은 오랜 시간 동안 서울의 중심이었던 육조거리를 계승하는 공간으로의 역할을 해야 한다.


좋은 광장이란. 

광화문 광장은 처음부터 광장의 역할을 하도록 조성된 공간이다. 서울의 중심에 수많은 시민들이 모일 수 있는 광장을 만들었으니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광장을 이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광화문 광장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면 다들 어딘가를 향해 바삐 걸어 다닐 뿐, 온전히 광장을 즐기고 있다는 기분이 들지 않는다. 특별한 행사나 집회가 있어야 비로소 사람들이 광장에 머물게 된다. 다른 도시의 광장에서도 이런 분위기가 느껴질까. 

유럽에 여행을 가면 이런저런 광장들을 마주치게 된다. 유럽의 도시들에 있어 광장이란 종교, 정치, 사법, 상업, 사교, 집회 등 당시 사회생활의 중심지였고, 거의 모든 도시에 광장이 세워져 있다. 광장 한가운데서 주변을 둘러보면 개인에서부터 공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범위의 활동이 일어나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유랑 가수의 노래를 듣기위해 둥글게 모인 사람들이 있고, 분수 옆에 기대어 이야기를 나누는 젊은이들이 있고, 재치 있는 입담을 자랑하는 장사꾼도 있다. 광화문 광장에서도 이런 모습이 보이기는 하지만, 어딘지 불안하고 바쁘게 움직여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유럽의 광장에서 느낄 수 있는 편안함, 자연스러움, 잠시 머무르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힘들다. 

유럽에서도 시민들이 계속 찾는 광장들을 둘러보면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광장의 길이와 너비의 비례가 적절하여 수평적인 평등함, 정적인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각주:1]광장 자체는 빈 공간이지만 주변이 건물로 둘러싸여있는데, 적당한 높이의 건물들로 둘러싸인 빈 공간은 위요감(encircle)을 형성하여 방문자가 아늑함을 느낄 수 있고, 건물과의 연계도 원활히 이루어져 사람들이 광장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도록 만든다. 게다가 지역의 중심지에 자리하며 주변 골목, 거리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있어 사람들이 어디에서든 광장을 쉽게 찾아오도록 도와준다. 이 특징들은 시민들이 광장을 계속 방문하도록 만들며, 광장 안에서 다양한 활동들이 일어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유럽의 광장. 캄포 광장(위), 끌레베르 광장(아래)과 같은 공간은 사람들이 계속 찾아오며, 다양한 활동들이 일어나고 있다.

일상의 공간으로 자리하는 좋은 광장의 예이다. 

 

광화문 광장은 유럽의 광장에 비교했을 때 큰 문제점이 있다. 도로 한복판이라는 입지이다. 광화문 광장의 구조는 차도를 건너가거나 지하를 통해서만 접근이 가능하기 때문에 시민들의 자연스러운 접근을 방해한다. 양측으로 세종문화회관, 교보빌딩 등 여러 건물이 있지만 이 역시 차도로 가로막혀있기 때문에 광장과 건물 사이의 연계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둘러싸임에서 비롯되는 편안함이나 광장에 머무르고 싶은 느낌을 가지기 어렵다. 광장으로 향하는 것, 광장다운 분위기를 느끼는 것, 시민의 활동으로 가득한 광장이 되는 것은 광화문 광장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다. 공간은 만들어 놓았지만, 정작 활용에는 불편함을 겪게 된다. 


좋은 광장은 일상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찾아와 자신의 하루를 보내며, 시민의 다양한 활동이 일어나는 곳이어야 한다. 광장에 있는 시간 동안 편안함과 재미를 느끼며 머무를 수 있어야한다. 그렇지 않은 광장은 어쩌다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에만 비로소 기능하는 장소일 뿐이다. 관광객을 불러들일 수 있을지 몰라도, 시민의 삶이 묻어나는 광장이 될 수는 없다. 과연 광화문 광장을 좋은 광장이라 할 수 있을까. 


왜 광장이었을까.

사실 광화문 광장이 좋은 광장인지, 앞으로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를 논하기 이전에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가 있다. 광화문 광장은 왜 광장으로 계획되었을까. 남북으로 길게 뻗어있는 형태는 길이와 너비의 차이가 그리 크지 않은 일반적인 광장의 경우와 비교했을 때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자동차에서 벗어나 시민들이 걸어 다닐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면 굳이 광장이 아니라 폭이 넓은 거리를 조성해도 큰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이 자리에 원래 있었던 육조거리도 처음부터 광장으로 계획된 공간은 아니었다. 

광장은 서양 도시의 발명품이다. 서양 도시의 형성 과정을 살펴보면 거리들이 모이는 지점에 자리하는 공터를 찾아볼 수 있다. 평범한 가로보다는 훨씬 넓으며, 주변이 건물로 둘러싸여 안정감을 주고, 어디서든 접근하기도 편하다. 이곳으로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고, 만남, 장사, 토론, 공연, 집회 등 다양한 활동들이 행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시민생활의 중심지인 광장이 만들어진 것이다. 서양인들에게 광장은 일상적인 공간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도시계획 역사에서는 서양 도시와 같은 유형의 광장을 발견하기 어렵다. 우리의 도시 공간은 대궐, 관청, 민가 등 목적이 정해진 영역이 먼저 만들어진다. 영역 사이의 빈 공간은 여러 형태의 길로 기능하게 되며, 사람들은 골목들이 모이는 큰길이나 시장이 열린 저잣거리와 같은 공간에 모였다. 서양의 광장에서 보이는 사람들의 행동양식도 우리의 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광장은 도시 한복판에 있는 넓고 빈 공간이 아닌, 길거리 안에 자리하는 것이다. 서양의 광장은 우리에게 익숙한 장소가 아니다. 

광화문 앞의 공간을 새롭게 바꾸고자 했다면 거리의 속성을 반영하여 계획할 수도 있었다. 그 편이 우리 정서에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시민생활의 중심지를 만드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광화문 ‘광장’이 된 것은 정치세력의 탓이 크다. 도시공간을 개발하는 사업 중에서 광장을 세우는 일은 반대하는 여론이 적다. 광장은 시민 중심의 민주적인 공간이므로 광장 조성은 시민을 위한 일로 비춰지기 때문이다. 정치가 입장에서 광장을 세우는 것은 거리 조성보다 훨씬 의미 있는 일이며, 시민들의 공간을 만든다는 타당한 명분까지 갖춘 업적 과시용 사업이다. 게다가 광화문 광장의 경우, 입지 자체가 서울의 중심이자 엄청난 상징성을 지닌 곳이다. 광장을 만든 정치가의 권력과 명성이 세대가 바뀌어도 남아있게 된다는 뜻이다. 

정치적인 의도는 광화문 광장을 조성하는 과정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2006년 10월, 문화재청은 광화문 광장 조성 방안과 명칭에 대한 결정을 시민들의 투표에 맡겼다. 도시공간의 형성에 관하여 시민들의 의견을 구하고 이를 반영한다는 것은 민주적, 시민참여적인 좋은 일이다. 문제는 광장의 위치를 조사하는 설문조사였다. 선택지는 세종로의 중앙, 편측, 양측이었고, 44.4%의 대중 선호도에 의해 광화문 광장은 중앙에 놓이게 되었다. 


중앙의 광화문 광장. 광화문 광장은 시민들의 투표에 따라 도로 중앙에 배치되었다.

그렇지만, 중앙에 놓였을 때 생길 불편함을 시민들에게 설명하고 다른 방안을 찾는 것이 더 나은 해결책이 아니었을까. 


대중의 입장에서 ‘중앙’이라는 말은 편측, 양측 등 한쪽으로 몰려있는 것보다 훨씬 좋은 의미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러나 접근성, 광장 이용의 편의, 활용성 등의 측면에서 생각했을 때 광화문 광장은 세종로 한쪽에 자리하는 것이 낫다. 도로 중앙에 광장이 배치되었을 때 얻는 이점은 주변 풍경과 명확하게 대비되어 눈에 띄는 광장의 모습, 그러므로 공간을 만든 사람의 업적을 드러내기 쉽다는 점이다. 정치세력이 광화문 광장을 진정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고자하였다면 지금처럼 도로 한복판에 광장을 배치하였을까? 설문조사는 그저 광장의 중앙배치를 위해 시민의 결정이라는 명분을 얻기 위한 도구가 아니었을까?

서양의 광장과 우리의 길거리는 비록 형태는 서로 다르지만 시민생활의 중심지로 기능한다는 공통적인 본질을 지닌다. 그러나 광화문 광장은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문화행사장으로 기능할 뿐, 광장도 길거리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이는 광화문 광장을 서울의 중심 관광지로 조성, 활성화하여 자신들의 영향력을 과시하려는 정치세력의 욕심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광장이 되어야함에도 정작 어떤 공간을 만들어야하는지, 광장이라면 무엇이 우선이 되어야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었던 것이다. 세종대왕 동상 뒤로 펼쳐진 잔디밭이나 광장에 어울리지 않는 몇몇 시설물에서는 광화문 광장을 최대한 빨리, 멋있게 꾸며서 선보여야한다는 정치가들의 생각이 엿보인다. 광화문 광장이 우리한테 친숙한 모습을 갖춘 시민 중심의 공간으로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 그저 여느 관광지와 다름없는 신세라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51호에 이어질 2부에서는 광화문 광장이 어떻게 바뀌어야할지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서울의 중심에서 시민의 삶이 묻어나는 광장을 만들기 위한 방법들을 의논할 것이다.


참고자료

1) 정기용,「서울 이야기」, 현실문화연구, 2013, 87 ~ 121쪽.

2) Matthew Carmona, Tim Heath 외, 「도시설계 : 장소 만들기 여섯 차원」, 대가, 2009, 257 ~ 269쪽.

3) 정원식,「광화문광장은 ‘고립된 섬’」,『주간경향』, 2009.08.18. ,http://newsmaker.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5&artid=200908121908001&pt=nv

4) 음성원,「광화문광장, 세종문화회관 쪽으로 이전 추진」,『한겨레』, 2014.10.01. ,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5758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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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부분의 광장의 경우, 공간의 길이가 폭의 세 배를 넘지 않는다. 이를 넘어서면 한 방향으로 축이 형성되어 광장보다는 가로의 형태를 띠게 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