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가 원장실의 거대한 청동문과 마주선 것도 이번이 일곱 번째였다. 그럴 때마다 청동문 한 가운데 황금으로 된 부조의 인문들이 그를 내려다보았다. 매번 비슷한 말을 듣고 원장실 문을 닫고 나오기는 했지만 그는 절대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익숙하게 원장실 문을 두 번 두드리고 말했다.
“계십니까? 프랭크입니다. 개척단일로 찾아왔습니다.”
안에서 대답하는 댄 원장의 소리가 두꺼운 청동문을 넘어서 작게 들려왔다.
“자넨 질리지도 않는군, 들어오게.”
처음 오는 사람이라면 대게는 이 작은 대답 소리를 듣지도 못하고 문 앞에서 돌아가고는 했다. 나중에 그 상대가 물어보더라도 자기 대답을 못 들은 것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하고는 했다.
“그 때 저는 사무실에 있었습니다. 아, 제 대답을 못 들으셨다니 유감이군요.”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리거나 자리를 뜨곤 했다. 아마 댄 원장이 방문객을 위한 스피커를 설치하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 방법은 귀찮은 일을 사전에 회피하기에는 충분했다. 보통 이 곳에 직접 찾아오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별 일 아닌 것으로 그를 괴롭히는 사람들이었다. 물론 프랭크는 달랐다. 그가 문을 밀 때마다 동시에 그를 밀어내는 청동문의 묵직함에 놀라지 않을 정도로 그는 이미 그 문에 익숙해져있었다.
안에서는 보고서에서 눈을 때지도 않은 채 댄 원장이 말했다.
“개척단 추천서를 써달라고 찾아온 거겠지. 자네도 참 대단하군. 정말 끈질겨. 그건 인정해주지.”
“그것 한 장 써주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이젠 저도 개척단에 포함될 자격도 충분하고 배우기도 많이 배웠습니다. 당신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꼬맹이는 아닙니다. 이곳에서 지내면서 당신 밑에서 일한지도 이제 거의 15년이 다 되갑니다.”
“그래도 자네는 아직 많이 부족해. 개척단일이 만만해보이나. 자네가 맡아본 가장 어려운 일이 뭔가? 무인도를 사람이 살만한 곳으로 만든 거? 그것과는 비교도 안 되게 어려운 일이야. 공간, 시간, 자본 이 모든 게 자네가 지금까지 경험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네. 지구에서 저 멀리 떨어진 곳에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건 위험천만해. 작은 실수 하나가 절망적인 결과를 만들어내지 식량이 좀만 부족해도 개척단이 다 아사할 수도 있다고, 당장 발전기가 고장 나면 몇 개월 동안 전기와는 담을 쌓고 지내야 되지, 물론 살아남을 수 있다면 말이야. 자네가 아무리 우리 연구소에서 가장 뛰어난 인재라고 해도 원정의 모든 요소들이.......”
“저를 무겁게 짓누르고 제 인생을 나락으로 빠뜨리기 위해 저의 행동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을 거라는 거겠죠 그 얘기를 듣는 것도 이제 일곱 번째에요.”
댄 원장의 시선이 프랭크에게로 움직였다.
“그럼 이제 알만도 하지 않나? 난 자네를 우주로 보낼 생각이 아직 없어. 자넨 아직 이곳에서 배울 게 남아있네. 그것도 아주 많이! 그럼 이제 돌아가 보게.”
프랭크는 화가 났다. 물론 댄 원장이 자신을 아낀다는 것은 안다. 아끼기 때문에 결과를 알 수 없는 여행길에 자신을 보내지 못하는 것도 안다. 마치 어린 아이의 부모처럼 댄 원장은 프랭크를 붙잡고 있었다. 아무리 프랭크가 그를 설득하려해도 댄 원장의 마음이, 생각이 스스로 발을 때지 않는 이상 프랭크는 댄 원장에게 물가에 내놓은 아이나 마찬가지였다.
댄 원장에게 인정받을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다짐하며 그는 30분전에 그를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던, 이제는 나가지 못하게 그를 밀어내려하는 청동문을 밀어냈다. 프랭크의 등 뒤에서 댄 원장이 말했다.
“이것도 이제 일곱 번째 들으니 지겹긴 하겠지만 다시 말하겠네. 나를 원망하지는 말게나. 때가 되면 내가 자네를 부르겠네. 좀만 참고 기다리길 바라내. 물론 이곳에 오는 건 자네 맘이긴 하네만.”
막 문턱을 넘어가 청동 문이 닫히고 있는 사이로 대답이 세어 들어왔다.
“제가 우주로 나가는 것도 제 맘이었으면 좋겠군요. 이제는 홀로스크린에 떠오르는 그 빌어먹을 시뮬레이션 결과를 확인하고 새 모델을 만들어 내는 것도 지겹습니다.”
매번 똑같은 소리를 듣고 참으려니 속이 뒤틀리는 느낌이었다. 도대체 몇 번을 더 이 짓을 해야 그 고집불통인 남자를 넘어뜨릴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 떠오르자 미칠 노릇이었다. 머릿속에서 오만가지 방법들이 맴돌고 있었다. 주간 체스 대회를 할 때에도 지금처럼 머리를 쓰지는 않았으리라.
수만 가지 경우의 수를 조합하다보니 정류장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 버스를 타면 집까지 한 시간 반 정도가 걸린다. 차를 탄다면 그보다 훨씬 덜 걸리기는 하겠지만 내 주제에 개인용 승용차를 탈 수는 없었다. 그런 사치는 방금 만나고 온 댄 원장같이 내가 지금까지 이룬 업적에 관심도 가지지 않을 정도로 사회를 돌아가게 만드는 사람들이나 가질 수 있는 특권이었다. 물론 차가 부족한 건 아니었다. 단지 지금 인류가 겪고 있는 문제들 때문이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 엄청난 양의 자원 소비, 국가의 붕괴와 같은 빠져나갈 수 없는 유사와 같은 문제들이 인류에게 시한부인생이 내려진 진단서를 내밀고 있었다. 최후의 수단으로 인류는 개인의 많은 것들을 통제하고 우주에서 새로운 터전을 찾기 시작했다. 문제들이 부각되기 전만해도 소비를 뒷받침하기 위한 자원을 목적으로 우주에 나갔지만 이제는 새로운 땅을 찾아 개척단을 보내고 있었다. 매월 수십 곳의 발사장에서 로켓과 우주선들이 우주의 이곳저곳을 향해 날아올랐다.
“저기요. 잠시 시간 좀 빌릴 수 있을까요?”
정류장에서 가장 가까운 개척단의 선원들을 확인하려던 찰나에 누군가가 프랭크를 불렀다.
“안녕하세요. 전 오울북스의 방문판매원 리처드 필립스라고 합니다.”
요즘 세월에 방문판매원이라는 직업이 남아있다는 사실에 프랭크는 놀라웠다. 사실 보통 요즘 기업들은 마치 엄마들처럼 내 취향의 물건을 찾아주는 광고서비스를 통해 자신들의 제품을 홍보하고 판매하려고 하지 방문판매원과 같은 비효율적이고 구식인 방법은 사용하려들지 않았다. 가장 최근에 방문판매원을 만나본 게 언제인지 생각하느라 대답을 못한 프랭크에게 방문판매원이 말했다.
“실은 저희 회사에 좋은 책들을 소개시켜드리고 싶거든요. 특가 세일 중이랍니다.”
프랭크는 정류장의 전광판을 보고 15분 이상 시간이 남은 것을 확인하고 대답했다.
“네, 한 15분정도는 시간이 될 것 같네요.”
방문판매원은 기분이 좋아졌다는 것을 얼굴 표정으로 드러내었다. 겨우 첫 손님을 확보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군요. 그럼 제가 처음부터 설명하기보다는 고객님의 관심사에 맞춰 책을 추천해드리는 게 좋겠네요.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가 있으신가요? 저희는 거의 모든 분야의 책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 우주 개척과 관련된 책을 좋아합니다. 얼마 전에 『왜 지구를 떠나야하는가?』를 읽었는데 유익한 정보들이 많더군요.”
“아 그 책을 읽으셨군요. 저도 얼마 전에 읽어보기는 했습니다만 사실 좀 잘못된 부분이 있더군요.”
“잘못된 부분이요? 전 대체로 옳은 소리라고 느꼈습니다만 어떤 부분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시는 지 궁금하군요.”
사실 그 책의 일부는 방금 만났던 댄 원장이 집필했었다. 그는 우주 개척에 있어서 나나 그와 같은 전문 건설사들이 왜 필요한지, 그리고 그로 인해 얻는 이점에 대해 어리석은 독자들을 위해 친절하게 풀어서 설명을 했다.
방문판매원은 자신이 말을 잘못 꺼냈음을 직감적으로 깨달은 것 같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설명을 시작했다.
“사실 그 책의 가장 핵심이 되는 가정이 잘못됐습니다. 과연 개척단을 다른 곳으로 쏘아 올리는 게 정말 새로운 땅을 위한 것일까요? 사실 희망고문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개척에 성공한 행성이 존재하기는 했습니까? 과장된 뉴스만 있었지 실제로 드러난 적은 없었습니다.”
판매원의 발언은 듣기 거북했다. 프랭크가 지금까지 바래왔던, 그리고 믿었던 모든 것에 대한 강력한 부정이면서 동시에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발언이었다.
“듣기 좀 거북하군요. 우주 개척은 성공적입니다. 물론 많은 개척단이 실패하기는 하지만 개중 몇몇은 긍정적인 뉴스가 돼서 우리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그 먼 거리를 지나 돌아오지 않습니까? 이 정도면 충분한 근거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그런 개척지로 정착민이 떠나는 걸 본적이 있습니까? 말만 수두룩하지 개척민을 실은 대형 로켓이 떠났다는 소식을 적어도 저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판매원은 시계를 보았다.
“이런 벌써 시간이 다 된 것 같군요. 저희 출판사에서 발간하는 책 중에 손님에게 딱 맞는 것이 있습니다. 관심이 생기시면 저에게 연락해주십시오. 명함은 여기 있습니다.”
판매원은 주머니에서 능숙하게 명함 케이스를 꺼냈다. 은색은 케이스 겉면에는 양각으로 올빼미가 새겨 있었다.
“집에 가서 생각해보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당장 책을 팔지는 못했지만 판매원 리처드는 프랭크가 버스를 타는 순간까지 미소를 잊지 않았다.
그날 저녁 프랭크는 한참동안 명함을 앞뒤로 뒤집으며 마치 명함을 바라보았다. 진실을 상징하는 올빼미가 멋들어지게 그려져 있었다. 프랭크는 명함의 글자 하나하나가 비밀을 담고 있고 그 비밀을 찾으려 하는 고고학자처럼 고민을 하다가 전화기를 들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책이군. 말도 안 되는 음모론이야.’
프랭크는 어제 오후에 집에 도착한 책을 보고 있었다. 오울북스의 『국제 연합 우주 개척 관리 위원회는 우리에게 무엇을 숨기고 있는가?』 이름에서부터 싸구려의 냄새가 풍겨왔다. 표지도 제목 못지않았다. 디자이너의 센스라고는 보이지 않는 표지였다. 한가운데에 저 기다란 제목이 쓰여 있고 배경은 간단한 패턴과 개척단의 로켓이 인쇄되어있었다. 제목과 표지가 프랭크의 예술가적인 심기를 건드렸지만 사실 그의 마음을 더 깊숙이 헤집어 놓은 것은 책이 담고 있는 말들이었다. 저자의 주장은 프랭크에게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였고 프랭크가 저자를 완전히 돌아버린 과대망상증 환자로 보이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개척단이 인류를 속이는 끔직한 거짓말이라니. 단단히 돌았구먼.’
개척단은 인류에게 있어서는 마지막 희망이었다. 인류는 수십 년 전부터 우주로부터 자원을 조달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덕분에 인류의 대부분의 물질의 풍요를 누릴 수 있었고 세계는 늘어나는 인구를 감당할 수 있었다. 하지만 탐욕스러운 자들이 욕심을 부리고 말았고 넘치는 자원과 인구수는 여러 나라와 수많은 사람들을 나락으로 빠뜨렸다. 세계 경제가 휘청거렸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개체수로 인한 문제가 불거졌다.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 우주의 무한히 넓은 공간 안에 존재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 그런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 그저 지구에 바글바글한 사람들을 줄이기 위한 거짓말이라는 책의 주장을 프랭크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불안했다.
프랭크는 노트북을 켜고 웹을 뒤지기 시작했다.
‘성공한 1차 계획이 언제 있었더라?’
사실 그는 자랑할 만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일반인들이 모를만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을 만한 위치에 올라가 있는 사람이었다. 북미 건설사 연합 웹 자료실과 국제 연합 우주 개척 관리 위원회 웹 자료실에서 1차 계획이 성공한 개척단이 목록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3년 전에 두 번 1년 전에 한 번 그리고 8개월 전에 한 번 총 네 번의 성공 사례를 찾을 수 있었다. 개척단을 보내 소규모의 자급자족 가능한 공동체 건설을 목표로 하는 1차 계획이 성공한 행성은 빠른 시일 내로 대규모 이민선을 통해 많은 수의 이민자를 받아야 했다. 그리고 생활이 안정되면 지구와의 장거리 연결망을 통해 연결되는 것으로 총 3단계 개척 계획이 완료되어야 했다. 그런데 1차 계획이 2차 계획까지 이어진 사례가 보이지 않았다. 8개월이나 1년 전 사례는 아직 시간이 부족해서 그럴 수도 있었지만 3년 전 성공 사례들은 그 이후에 2차 계획이 실행되지 않은 것은 이상했다.
‘정말 이 책의 미친 소리가 맞는다면?’
책의 주장은 간단했다. 인류의 개체수가 줄지 않는 이상 인류에게 희망은 없다. 이것은 너무 확실했다. 결국 인류의 존속을 위해서는 어떻게든 지구의 인류를 줄이고 다른 행성에 인류를 정착시킬 필요가 있었다. 가능성이 없는 개척 계획을 실행함으로서 사람들을 우주에 버리고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었다. 끔찍한 소리였다. 이 말이 맞는다면 인류를 위해 자신을 바친 영웅들은 하루아침에 불쌍한 희생자가 되어버리게 된다. 그리고 인류의 희망역시 환상이 되어버린다. 스스로 출혈을 일으키면서 연명을 하지만 아무리 시간을 늦추어도 파멸을 막을 수는 없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 될 뿐이었다. 미래를 꿈꾸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 범죄자가 되어버리게 만드는 주장이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3년 전 개척단 보고서를 보고 있던 와중에 익숙한 성이 보였다.
[제이든 T 테일러]
제이든은 댄 원장의 동생이었다.
‘댄 원장은 이유를 알고 있을지도 몰라.’
프랭크는 전화기를 집어 들고는 댄 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괘종시계가 9시를 알려오고 있었다. 댄 원장은 늦은 밤에 전화를 받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프랭크의 전화는 잘 받아주는 편이었다. 연결음이 그치고 댄 원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프랭크 자네는 질리지도 않는군. 도대체 용건이 뭔가?”
“오늘 아침 일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저도 사리분별을 할 줄을 안다고요 지금 전화를 드린 건 3년 전 개척단에 관해서 궁금한 게 있어서 그렇습니다.”
짧은 침묵이 흘렀다.
“3년 전? 몇 차 개척단이 궁금한 건가?”
“45차 개척단입니다.”
프랭크의 대답을 듣고는 댄 원장은 짧은 탄식을 내뱉고는 입을 열었다.
“내 동생 이름을 보고 연락한 거로군. 도대체 뭐가 궁금한가?”
“찾아보니 45차 개척단이 몇 안 되는 성공 사례더군요. 그런데 계획이 2차로 이어진 기록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 권한이 부족한 건가요. 아니면 아직 2차 계획까지 이어지지 못한 건가 궁금해서 연락드렸습니다.”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프랭크의 전화기 반대편에 있는 댄 원장은 쉽게 대답을 하지 못하는 듯 했다. 앞선 침묵보다 좀 더 시간이 흐른 뒤에야 프랭크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그 개척단은 실패했네.”
첫 침묵보다 오래가지는 못했지만 이번엔 댄 원장이 아니라 프랭크가 침묵을 지켰다.
“분명히 성공했다고 나와 있는데요? 보고서가 잘못된 건가요?”
“자넨 실패했다고만 알고 있으면 되네.”
“그렇군요.”
프랭크는 직감적으로 잘못된 곳을 건드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 냉정한 원장이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프랭크 자네에게 해줄 말이 있네. 내일 아침에 알려주려고 했는데 미리 알려줘도 상관없겠지. 축하하네, 자네 꿈이 이루어졌네. 우주로 떠날 준비를 하게. 자세한 내용은 메일로 보내주지. 잘 자게.”
프랭크의 인사말을 듣고 댄 원장은 바로 전화를 끊었다. 댄 원장이 마지막으로 전해준 소식은 이상하게도 프랭크를 기쁘게 만들지 못했다. 전화로 주고받은 대화에서 느껴진 불안한 감정만이 프랭크를 무겁게 짓눌렀다. 피곤해진 프랭크는 마지막으로 한 문장을 읽고 아끼는 나뭇잎 책갈피를 꼽고 책을 덮었다.
하늘은 프랭크의 앞길을 가로막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현하듯 화창했다. 바람이나 온도 같은 모든 요소가 발사에 문제가 없음을 계기판을 통해 보여주었다. 오로지 프랭크만이 감출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을 뿐이었다. 사실 발사와 관련해서 프랭크가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최근 몇 년 동안 발사과정에서 사고가 일어난 적이 없었으니까. 물론 그렇다하더라도 언제나 위험은 존재했다. 하지만 프랭크는 기술적인 문제보다는 몇 주 전 저녁에 댄 원장과 나누었던 대화, 그 전에 읽고 있던 책 그리고 이번 이벤트를 위한 준비 기간 동안 느낀 묘한 위화감에 더 신경이 쓰였다. 프랭크의 예상보다 준비 프로그램이 쉬워서 그랬던 것일 수도 있었다. 준비가 덜 된 것 같은 느낌이 불안감을 만들고 있다고 프랭크는 생각하고 있었다.
“걱정 말게 프랭크. 자네는 최고야.”
어느새 댄 원장이 프랭크에게 다가와 커피를 건네고 있었다.
“발사 직전에 카페인 섭취는 금지라는 걸 모르고 계시지는 않겠죠?”
“이 정도는 괜찮네. 마시게, 마음이 편해질 거야.”
프랭크는 댄 원장으로부터 커피를 건네받았다.
“자네를 볼 수 없다는 게 아쉽겠군. 자네만한 부하도 없는데 말이야. 한동안 나도 고생 좀 하겠어.”
“그러게 제가 갈 생각도 못하게 월급을 올려주셨어야죠.”
이 제 곧 해어지겠지만 그래도 그 둘의 대화는 평소와 비슷했다. 둘의 대화 도중에 개척단들은 대기실로 모이라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무운을 비네.”
프랭크는 마지막으로 댄 원장과 악수를 하고 복도를 지나 대기실로 향했다. 앞으로 몇 시간 뒤면 로켓의 동면캡슐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긴 잠에서 깨어나면 인류의 수많은 희망 중 하나에 도착하게 되리라. 그런 생각에 프랭크는 불안감을 이성으로 떨쳐내고 마음의 준비를 마쳤다.
삡-
삡-
의식의 깊은 곳에서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짧은 경고음. 경고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다가오며 프랭크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고음은 프랭크의 바로 옆에서 프랭크의 청각을 뒤흔들었다.
그리고는 두 눈이 떠졌다. 적막을 지나 프랭크의 의식이 돌아오고 있었다. 몇 번을 연습해도 익숙해지지 않았던 동면 후의 그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프랭크는 멍한 머리 한편에서 동면캡슐을 여는 법을 기억해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머리가 돌아가지를 않아서 그 간단한 정보를 기억해내는데 수십 분이 걸린듯했다. 동면캡슐을 열고 한발을 내디뎠다. 온몸에 쥐가 난 것처럼 감각이 없었다. 막 심박수가 정상으로 돌아오면서 온몸에 피가 돌기 시작했다. 수백 개의 바늘이 온 몸을 찌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프랭크는 절뚝거리며 조작 패널을 찾아 움직였다.
‘다 도착한 건가. 도대체 지금이 며칠이야. 몸이 말을 안 듣는군.’
조작 패널까지의 그 짧은 거리를 움직이는 데에도 긴 시간이 필요했다. 그 시간동안 프랭크는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해 생각했다. 전문 건설사로서 개척지에서 자신이 해야 하는 일. 국제 연합은 단순한 전진기지를 원하는 게 아니었다. 프랭크와 그 동료들을 이 먼 거리까지 보낸 것은 그 이후 탐사나 개척을 위해서가 아니라 항구적인 거주지를 원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높으신 분들의 목표였다. 지구의 부담을 덜 수 있게끔 수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거주지가 필요했다. 그렇기에 개척단이 처음 행성에 도착했을 때부터 모든 것이 계획될 필요가 있었다. 개척단이 세운 거주블록은 마을이 돼야하고 더 나아가 도시의 중심부가 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프랭크는 이 개척단의 유일한 전문 건설사였다. 한마디로 말해 도시 건설의 중심인물이었다. 프랭크는 역사에 이름을 올리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 생각이었다. 그 어떤 개척지보다 대단한 개척지를 만들기 위해 모든 신경을 쏟아 부을 예정이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프랭크는 자신의 몸을 끌고 조작 패널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조작 패널의 화면이 켜지는데 까지 5초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건 뭔가 잘못됐어.’
패널에 나타난 날짜가 이상했다. 목적지에 도달하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그리고 깨어난 사람도 프랭크 혼자였다. 다른 사람들의 알람은 도착 예정일을 한참 지나서 맞추어져있었다. 우주선의 위치도 말이 안 되었다. 프랭크는 뭔가 잘못됐음을 느끼고 통제실로 향했다. 동면실에서 통제실까지 이어지는 복도와 기계실에는 어둠으로 뒤덮여있었다. 전력을 아끼기 위해 방향을 알리는 비상등만이 주기적으로 깜빡이기만 했다. 프랭크는 익숙하지 않은 내부를 한참동안 돌아다니고 나서야 올바른 길에 들어설 수 있었다. 통제실의 입구에 도착한 프랭크의 몸은 이제는 온전히 프랭크의 것이 되어있었다. 그 덕분에 뻑뻑한 크랭크를 돌리고 두꺼운 원장실의 청동문 못지않게 묵직한 철문을 미는데 큰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다. 통제실의 문을 열자 커다란 창문과 수많은 스위치, 계기판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문의 뒤편에 선장과 부선장이 잠들어 있는 동면캡슐을 볼 수 있었다. 비상시가 아니라면 도착 전까지 두 사람이 일어날 일은 없었다. 높은 철제 문턱을 지나 통제실에 들어오자 거대한 창문의 모든 면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프랭크는 우주선의 왼편을 확인할 수 있었다.
커다란 소행성이 우주선의 왼편에 위치해있었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인류가 세워놓은 자원 채굴용 시설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 곳을 지날 이유가 있나?’
위치뿐만 아니라 궤도도 이상했다. 우주선은 소행성을 지나야 할 텐데 소행성이 멀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마치 우주선이 소행성 주변을 돌고 있는 듯했다. 프랭크는 자신의 생각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한참동안 창밖을 쳐다보았다. 20분쯤이 지나 프랭크가 자신의 생각을 확신하게 되었을 때 소행성의 지평선 너머로 새로운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소행성의 일부라기에는 비정상적으로 튀어나와 있는 그 덩어리가 확인될 수 있는 위치에 오기까지 15분이 더 걸렸다. 그리고 프랭크의 눈에 들어온 것은 우주선의 산이었다.
수많은 우주선의 잔해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그리고 산의 경계에서 채굴용 드론들이 일부는 날고 일부는 땅을 기면서 자원을 수거하고 있었다. 그제야 프랭크는 출발 당일 느낀 불안감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 모든 말도 안 되는 루머가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압박감. 그 압박감이 프랭크를 불안에 떨게 만든 것이었다.
프랭크는 모든 사실이 명확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곳이 지금까지 지구에서 떠난 우주선과 개척단의 결말이었다. 애당초에 희망은 없었다. 인류는 언젠가는 파멸할 수밖에 없었다. 인류가 살 수 있는 다른 행성은 존재한 적이 없었던 것이었다. 아니면 도달할 수 없었거나. 불안감, 분노, 좌절을 넘어 신기하게도 프랭크는 안도감을 느꼈다. 저 우주 어딘가에서 떠돌거나 희망도 없는 땅에서 죽어가지는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리라. 언젠가 프랭크는 지구로 가는 운반선에 실려 지구로 돌아갈 것이다. 죽음에 저항하는 인류에게 낭비할 수 없는 자원으로서.
같은 시간 댄 원장은 두 가지 보고서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45차 개척단과 관련된 보고서, 그리고 다른 보고서에는 프랭크의 이름이 실려 있었다. 보고서를 내려놓은 댄 원장의 눈에 책 한 권이 보였다. 『국제 연합 우주 개척 관리 위원회는 우리에게 무엇을 숨기고 있는가?』 책을 펼치자 나뭇잎 책갈피가 책으로부터 흘러내렸다. 댄 원장은 책갈피를 집어 들었다. 잘 만든 책갈피였다. 검소하지만 깔끔했다. 댄 원장은 책갈피를 한참동안 앞뒤로 확인하고는 프랭크의 이름이 적힌 페이지에 끼우고는 보고서를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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