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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호

[51호] 광화문 광장, 어떤 모습으로 [2부] - 14 현재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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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에서는 광화문 광장이 있는 장소가 우리네 역사에서 어떻게 만들어져 현재에 이르렀는지, 광화문 광장의 형태와 조성 과정에서 어떠한 문제점들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이제 2부에서는 광화문 광장이 앞으로 어떠한 모습으로 변해야 하는지를 중점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광화문 광장의 미래. 

광화문 광장에는 서울의 브랜드 이미지를 창출하여 새로운 관광명소를 만들겠다는 욕망이 내재되어있다. 그로 인해 테마파크의 구경거리마냥 일부러 시간을 내서 찾아가 여러 장식물 사이를 바삐 걸으며 둘러봐야 하는 장소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광화문 광장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광장이다. 육조거리에서 시작되어 지금까지의 역사가 이어지는 장소라는 상징성을 지녀야 하며, 다양한 활동과 자연스러운 시민 생활이 어우러지는 공간으로 기능해야 한다. 

광화문 광장의 본래 의미를 되찾기 위해서는 변해야 한다. 서울의 정체성이 녹아있는 장소이자 현대의 시민 생활을 담아낼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변화의 목표는 ‘서울의 중심축이 지닌 상징성을 되살리는 것’과 ‘시민들이 광장을 광장답게 이용할 수 있는 것’으로 설정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광화문 광장이 과연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생각해보자.


1) 광장의 이전

현재 광화문 광장을 세종문화회관 방면으로 이전하는 방안이 제시되었다. 이 방법대로라면 광화문 광장은 세종로 좌측에 위치하며 정부서울청사, 세종로공원, 세종문화회관, 현대해상빌딩을 잇는 형태가 된다. 가장 큰 장점은 차도를 건너는 과정 없이 자유롭게 광장을 이용할 수 있는 동선이 확보된다는 점이다. 게다가 서울의 중심공간에 걸맞은 상징성 부여가 가능해진다. 

광화문 광장이 세종로 왼편으로 이전할 경우 한양 도시계획의 중심축을 따르게 된다. 경복궁을 중심으로 광화문을 지나는 직선(축선)을 하나 그어보자. 그러면 직선이 광화문 광장에 닿지 않고 세종문화회관 방면으로 향함을 알 수 있다. 광장에서 경복궁 방면을 바라보았을 때 광화문과 그 뒤로 자리한 경복궁이 정면에 있다기보다는 왼쪽으로 살짝 치우쳐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것은 이 때문이다. 세종로의 원형인 한양의 육조거리도 이 축선 상에 위치한 공간이다. 오히려 광화문 광장의 축선은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총독부를 중심으로 한 축선에 가깝다. 


서울의 중심축. 경복궁을 중심으로 광화문을 지나는 축선(하얀색 직선)은 세종문화회관 방면으로 향한다. 

광화문 광장이 놓인 축선은 일제강점기의 조선총독부를 중심으로 한 축선에 가깝다. 


도시공간에서 축선은 그 도시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기준이며, 축선을 적절히 활용하면 다양한 도시적 요소의 통합이 가능하다. 물론 광화문 광장이 반드시 한양의 중심 축선을 따라야 한다는 의무는 없다. 지나친 축선의 강조는 오히려 공간에 형식적, 권위적인 성격을 부여한다. 그러나 일제가 설정한 축선을 따르는 광화문 광장에는 서울의 본모습이 담겨있지 않으며,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부끄러운 공간이다. 세종문화회관 방면으로 광장을 옮기면 서울의 중심축을 되살릴 수 있으며, 한양을 계획한 선조들의 정신적, 사상적 중심을 계승해나갈 수 있다. 

또한 광장의 이전은 세종문화회관과 여러 길이 광장과 연결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세종문화회관은 뮤지컬, 오페라, 콘서트 등 주요 예술 활동이 이루어지는 서울의 상징적 문화공간이다. 세종문화회관 앞에 광화문 광장이 자리하면 다양한 문화행사가 건물 내외를 오가며 일어날 수 있다. 광장 주변 지역을 연결해주는 골목과 거리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광장으로 향하는 과정을 도와준다. 언제든지 편하게 찾아갈 수 있는 광장, 세종문화회관과 함께하는 문화행사가 열리는 광화문 광장은 서울의 대표적 문화중심지로 자리할 것이다. 시민들이 세종문화회관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앉아 광장에서 열리는 공연을 바라보는 모습을 상상해보자. 


2) 광장 내 공간적 장치

광장의 위치를 옮긴다는 것은 지금의 광장에 적용된 공간적 장치들도 바뀌어야 함을 말해준다. 특히 지하 해치마당에서 광장으로 올라오는 램프(ramp)[각주:1]가 문제인데, 광장이 이전한다면 램프는 지하 공간으로부터 광장으로 이어지는 길의 역할을 담당할 수 없다. 그렇다고 이미 조성된 지하의 전시공간과 램프를 다시 메우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광장을 이전할 경우, 램프를 아예 없애기보다는 일부 활용하는 형태로 지하 공간과 연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램프를 반으로 나누어 왼편은 새로운 광장의 연결부로 확장하는 대신 오른편은 다시 도로로 사용해야 한다. 이 방법은 새로운 광장과 차도 사이의 명확한 경계를 설정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광화문 광장의 램프. 광장이 이전된다면 지하 전시공간과 광장을 잇는 램프에도 수정이 가해져야 한다.
램프를 아예 메우기보다는 일부 활용하여 새로운 연결점을 만드는 것은 어떨까. 


광화문 광장에는 이순신 동상과 세종대왕 동상이 있다. 두 동상 모두 광장의 중심에 위치하며, 단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형태이다. 이순신 동상의 경우 비록 군사정권 시절의 국가주의적 통치이념이 반영된 시설이지만, 1968년부터 현 위치를 지켜온 세종로의 상징물이며 광장 전면부에 있기에 상대적으로 권위적인 느낌이 덜한 편이다. 동상을 굳이 철거하기보다는 지금의 자리에서 시민들에게 우리의 현대사를 담담히 말해주는 역할로 남겨두는 것이 더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세종대왕 동상은 지나치게 큰 단상 위에 자리하여 인자한 모습보다는 위압적인 느낌을 준다. 게다가 광장 중심에서 경복궁과 북악산을 향하는 시선을 가로막고 있어, 서울에서만 바라볼 수 있는 도시풍경의 조망을 방해한다. 

광장 중심에 동상을 배치하여 위압감과 권위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근대적인 발상으로, 현대 도시의 광장이 가져야 할 자세는 아니다. 런던의 의회광장에는 윈스턴 처칠, 링컨, 넬슨 만델라 등 유명인들의 동상이 있지만, 일반 성인과 비슷한 크기인 데다 광장 한쪽에 세워져 있다. 위압감보다는 친숙함이 느껴지는 시설물이다. 세종대왕 동상도 규모를 줄이고 단상에서 내려와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어야 한다. 광장 한가운데에서 스스로를 과시하기보다는 가장자리에서 시민들을 맞이하는 편이 더 낫다. 세종문화회관 계단에 세종대왕 동상을 단상 없이 세우는 것은 어떨까? 오가는 시민들을 살피는 세종대왕의 모습은 광장과 잘 어울릴 것 같다. 


세종대왕 동상. 세종대왕 동상은 광장보다 지나치게 크고 권위적이다. 광장에서 경복궁, 북악산의 조망을 방해한다. 


3) 비어있는 광장.

지금의 광화문 광장에는 동상, 분수대, 잔디밭, 전시물이 여기저기 배치되어 있다. 사람들은 구경거리로 채워진 공간에 잠시 들러 주변 풍경을 감상하면 그만이다. 가끔 광장에서 행사가 열려야 비로소 일방적인 구경에서 벗어난 사람들의 다양한 생활양식이 나타난다. 정작 시민이 주체가 되어 자발적으로 광장을 활용하는 모습이 없다. 

광장의 속성은 ‘비어있음’이다. 도시의 공공 공간 중 비움으로써 시민의 활동을 담아낼 수 있는 곳은 광장이 유일하며, 광장이 비어있을수록 사람들은 오히려 광장을 자유롭게 이용한다. 파리 퐁피두센터의 광장은 가장자리의 예술 조형물 몇 개를 제외하면 그저 살짝 기울어진 빈 공간이다. 그러나 파리 시민들은 이 광장에서 일광욕을 하고, 책을 읽고, 담소를 나누거나 토론을 하고, 광장 바닥에 분필로 그림을 그리고, 거리예술가들의 공연을 감상하고, 주변 카페로 향하는 등 다양한 일들을 한다. 텅 빈 광장은 시민의 다채로운 활동으로 가득하며, 사람들은 광장에서 편안함과 재미를 느낀다. 광장은 비어있을 때 시민들에게 일상적인 공간으로 다가갈 수 있다.


광화문 광장의 거리 분수대. 평소의 거리 분수대는 빈 공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분수의 물이 솟아오르면 사람들은 분수대 안에서 뛰논다.

광장은 비어 있어야 하며, 광장을 채우는 것은 시설물이 아닌 시민들의 활동이다.  

 

광화문 광장의 이전은 비어있는 광장으로 변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기존 광장에 있던 시설물은 최소화해야 하며, 전체적인 바닥 재질을 하나로 통일시켜 광장다운 간결함과 고유의 정체성을 부여해야 한다. 이전된 광장에 자리하는 시설물은 시민들이 앉아 쉴 수 있는 의자, 아이들이 뛰놀 수 있는 거리 분수대, 여름 햇빛을 피할 수 있는 나무그늘 정도면 충분하다. 광장의 빈 공간은 시민 중심의 활동이 지닌 가능성과 잠재력으로 채워진다. 광장다운 광장을 만드는 것은 커다랗고 화려한 시설물이 아니라 비워진 공간을 활용하는 시민들이다. 

광화문 광장의 이전은 많은 변화를 가져온다. 우선 서울의 축선을 따르며 역사적 의미를 계승하는 공간이 형성된다. 힘들게 차도를 건너 광장에 도달할 필요가 없어지고, 고립된 위치에서 벗어나 주변의 건물과 길을 잇는 중심 매개의 역할이 가능해진다. 광장의 서쪽으로는 여러 건물이, 북쪽으로는 경복궁과 북악산이 둘러싸고 있어 위요감이 형성되고 편안한 느낌을 줄 수 있다. 세종문화회관 주변은 광장을 활용한 문화행사들이 이루어져 사람들로 북적인다. 

광장 자체는 전형적인 광장의 형태보다는 폭이 넓은 거리에 가까워진다. 그러나 우리는 광장보다는 거리에 익숙한 문화 속에서 자라왔다. 주변과 연결되며 사람들이 모여들고 다양한 활동이 일어나는 거리의 속성이 반영된 광장은 우리에게 친숙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거리의 모습을 지닌 광장은 권위적, 중앙집권적 분위기에서 벗어나 도시 속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을 수 있게 된다. 광장에는 최소한의 시설물이 배치되고, 빈 공간은 시민의 창의적, 주체적인 활동들의 무대가 된다. 광장에서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의 모습은 자연스럽고 편안하다. 비로소 시민의 삶으로 가득 찬 광장이 되는 것이다. 

광화문 광장 재배치안


글을 마치며.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수많은 시민들은 세종로에 모였다. 수십만 명의 붉은 물결은 응원의 함성과 함께 도심을 진동시켰고,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공동 축제는 사람들에게 잊지 못할 기쁨과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망사건에서 시작된 여러 촛불집회도 세종로에서 열렸다. 집회가 열릴 때마다 시민들은 함께 촛불을 밝히며 슬픔을 나누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당시에는 광장이 없었음에도 세종로는 시민 중심의 공간으로 기능했다. 시에서 행사를 제공하지 않아도 시민들은 스스로 세종로에 모여 기쁨과 슬픔을 공감했고, 시민이 주인이 되는 공간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 사람들이 모여들 때 세종로는 광장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세종로에는 시민이 모일 수 있는 광장이 들어섰지만 정작 시민들은 예전처럼 광장을 온전히 시민의 공간으로 활용하지 못한다. 이는 시민의 이목을 끌만한 사건이 없어서, 사람들이 각자의 삶에만 치중하는 시대가 찾아왔기 때문이 아니다. 광화문 광장은 몇몇의 욕심에 의해 의도적인 홍보용 공간으로 전락했고, 차도 한가운데라는 위치는 광장을 주변과 고립시키며, 비워짐보다는 채우는 것을 앞세우기에 사람들은 광장에서 정해진 활동밖에 할 수 없다. 

광화문 광장은 세종문화회관 방면에 자리할 때 훨씬 가치 있는 도시공간이 된다. 역사를 계승한다는 상징성과 광장으로의 자연스러운 접근이 모두 가능해진다. 주변 도시조직과의 새로운 연결점은 광장의 빈 공간을 사람들의 발걸음과 다양한 활동으로 채워나갈 것이다. 무엇보다도 시민들이 광장에서 편안함을 느끼며 서로 교류하고 소통할 수 있다. 현대 도시의 광장은 평등한 공공공간이자 시민 중심의 생활공간으로 기능해야 한다. 광화문 광장의 이전은 정치세력의 욕심이 반영되지 않은, 서울에 필요한 시민 주체적인 공간을 만드는 일이다. 진지한 고민과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면서 차근차근 광장 이전 계획을 세워야 한다. 

누군가는 그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광화문 광장은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 서울의 대표적 장소인데, 그럼 성공적이지 않으냐고 말이다. 맞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광장으로의 의미를 담아야 할 공간이 주변과 동떨어진 관광지가 되어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인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 공간이 갖추어야 할 본래 의미를 살리지 못하면 공간을 활용하는 사람들의 삶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마련이다. 광장은 고립된 공간, 욕망을 실현하는 공간이 아니다. 도시 곳곳과 연결되는 중심이자 우리의 삶이 담겨있는 공공의 장소이다. 광화문 광장은 서울의 중심에서 자유로운 시민의 삶으로 가득한 공간이 되어야 한다. 이제는 광장다운 광장을 만들기 위해 준비할 때이다. 


광화문 광장과 도시풍경, 그리고 시민들.

광화문 광장은 서울의 중심이자 시민을 위한 공공공간이다.

주변 도시와 연결되며 자유로운 시민의 삶이 광장에 자리할 때 광화문 광장의 가능성이 빛날 것이다.  


참고자료

1) 조한, HAHN Design, http://blog.naver.com/jluke313/110094441972

2) 방승환, archur가 해석하는 도시, 건축,  http://archur.blog.me/40121203338?Redirect=Log&from=post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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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탈길을 말한다. 광화문 광장의 경우, 지하 해치마당과 지상 광장을 잇는 연결부는 지하로 가라앉는 선큰 형태의 램프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