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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호

[53호] 글쓰기의 교훈 - 13 정우민

U410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노트북을 열었다.  2월에 졸업하니,  글은 내가 학부생으로서 쓰게  마지막 글이다. 인생에서 대학 생활이라는 하나의 분기가 끝나는 셈이다. 사람들은  분기의 마지막에 다다르면 자신이 그동안 무엇을 했던가, 상투적으로 되돌아보게 된다. 나도 역시 상투적으로, 나는 대학 다닐 동안 무엇을 했던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대학 생활을 돌이켜보면  많은 활동을 했다. 학생회 활동도 했고, 학회 활동도 했고, 학교 수업도 들었고, U410 했다. 얼핏 보기에는 서로 섞이지 않는 개별적인 활동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을 해보면, 내가 했던 모든 활동을 하나의 키워드로 엮을  있다. 바로 글쓰기다. 학생회와 학회에서는 학우들을 설득하는 입장문을, 학교 수업에서는  생각을 담아 제출하는 레포트를 써서 냈고, U410에서는 교지 편집을 했다. 생각해보니 나의 대학생활은 계속 의식적으로 글을 써온 생활이었다고 얘기할  있을  같았다. 지금부터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나의 글쓰기에 관한 이야기다.

 

어렸을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다. 방학숙제로 으레 나오던 일기도, 일주일에  번만 쓰면  것을 나는 매일매일 고집스럽게도 썼다. 중고등학교  백일장에서  좋게 상이라도   받게 되면 세상을  얻은 것처럼 기쁘고 좋았다. 고등학교  정치와 사회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생각을 SNS 적는 것으로도 모자라 블로그를 만들기까지 했다. 지금도  블로그엔 3 썼던 글이 가장 많다. 글을 쓰는  두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글을 쓰는 것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인지 정확히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페이스북 과거의 오늘 기능이 생긴  부터인  같다. 과거의 오늘에 들어가면 내가 타임라인에 올렸던 페이스북 글이 가득하다. 분명  때는 논리적으로   글이라고 생각하고 업로드를 했는데, 이제 와서 보면 가히 감정적 배설에 가깝다. SNS뿐만이 아니다. 블로그에 썼던 글이나, 학생회 입장문, 학내 언론 기고문은  어떤가? 논리가 어설프고 단어 선택이 적절하지 못하다. 그런 글이 어딘가에서  이름이 붙은 채로 돌아다닌다고 생각하니 아찔하기 짝이 없다.

 

글을 남들보다 고작    써봤답시고, 글을 어떻게 쓰는지    같다고, 교만한 생각을 하던 때가 있었다. 30분만 있으면 SNS 나의 생각을 슥슥 쓰고 퇴고도 없이 올리기도 했다. 심지어 남의 글에 주제넘고 건방진 훈수를 놓기도 했다. 하지만   썼던 글이 가장 못나고 어설프다. 지금 와서 읽었을  가장 부끄러운 글들은 대부분   썼던 글이다.

 

이제는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으면, 자신감과 즐거움만 가득했던 예전과 달리, 형언할  없는 두려움과 부담이 먼저 다가온다.  역시 쉬이 써지지 않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쓰게 된다.  때는 글을 쓰고 다시 읽을  마냥 쾌감에만 젖었다면, 지금은 내가  글이 마치 오징어 말미잘처럼 보인다. 그러다보니 퇴고를   넘게 하게 된다.   읽어도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곳곳에 나온다. 제출기한이 다가올 때까지도 마음에는 여전히 들지 않지만, 어쩔  없이 찝찝한 마음을 안고 글을 제출한다.  때보다 훨씬 힘들고 고된 작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글쓰기가 주는 쾌감을 즐긴다. 글쓰기란 나의 내면을 드러내는 작업이다. 글의 문체, 단어 선택, 구조, 모든 것에 글쓴이는 자신의 함의를 심는다. 나의 내면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만큼 섬세하게 가공하는 작업도 중요하다. 퇴고하면서 글을 쓰다 불쑥불쑥 튀어나온 나의 감정을 잘라내고,  많은 사람들이 수긍할  있도록 논리구조를 탄탄히 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마치 통나무를 조각할  서서히 조각상의 모습이 드러나듯, 나의 내면을 드러낼 글의 구조가 서서히 자리를 잡는 것이 보인다.   느끼는 쾌감은 지금까지의 고생을 잊게 할만큼 즐겁고 유쾌하다. 머리를 쥐어뜯는 고된 작업이지만, 아주 고되기만  것도 아닌 셈이다. 글을   찾아오는 부끄러움 역시 그때보다 훨씬 덜한 것은 물론이다.

 

우연히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교수의 강연이었는데, 정말 명쾌한 강연이었다. 나도 모르게 물개박수를  정도로 명쾌했다.  교수처럼 명쾌하게 통찰해 내려면 얼마나 공부해야 할까, 고민하고 있던 찰나 교수는 불쑥 이런 말을 꺼냈다. 학부를 졸업하고 나면 자기가 전공에 대해   다고 생각하고, 석사를 졸업하고 나면 자기가 전공을 알았다고 이야기하기엔 많이 부족하구나 느끼게 되고, 박사를 졸업하고 나면 자기가 전공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구나 느끼게 된다는 것이었다. 자신도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푸념하던 그는 갑자기 아이 같은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이게 정말 재미있거든요.”

 

삶의 모든 것이 사실 그렇다. 어떤 일이든 단순하고 명쾌하게 이뤄지는 일이란 없다. 아무리 간단해 보이는 것일지라도 실상을 뜯어보면 여러 가지 요소가 서로 복잡하게 맞물린 채로 흘러간다. 어떤 것이든 문제의 본질을 꿰뚫는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본질을 꿰뚫기를 게을리한 ,  문제의 본질을 안다고 착각한다. 그리고  천진난만한 무지를 근거로 얼렁뚱땅 해결책을 내놓는다. 마치 저출산을 해결한답시고 가임기 여성 지도를 만들 듯이 말이다.

 

며칠 뒤면 대학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넓은 사회로  걸음 내딛는다.  넓은 사회에서는 대학에서 마주쳤던 현실보다 훨씬 복잡하고 얽힌 문제들을 마주하게  것이다. 그럴 때마다 예전의 나처럼 짐짓 아는  하고 싶은 유혹을 받게 되면, 대학 생활동안의 글쓰기가 줬던 교훈을 떠올리려 한다. 모르는 것을 아는  하지 않기. 항상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겸손하고 우직하게, 본질에 닿아갈 때까지 끊임없이 노력하기. 불완전한 인간  하나일 뿐인 내가 무언가의 본질을 꿰뚫을  있게 되리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모든 것의 본질에 닿아가고자 하는 자세로 노력한다면, 설령  과정이 고되어 보일지는 몰라도,  속에서 나름의 재미를 찾을  있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문제의 본질에 근접할  있는 사람이 되리라 믿을 따름이다. 명쾌한 강연을 해놓고도 자신은 아는 것이 없다 푸념하면서, 아이처럼 맑게 웃어보이던  교수처럼 말이다.

노트북을 잠시 닫고 교정을 바라본다. 대학 생활 5년간 지지고 볶으며 숱한 일들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알게 모르게 정이 많이 들고 추억도 많이 쌓였다. 친구들도 졸업  진로가 하나   정해지면서 자주 만나기 힘들어졌다.  번씩 만나면 이제는 대학 시절의 추억들로 이야기꽃을 피운다. U410 대학 생활 추억을 소환하는 대목마다 손짓하는 친구  하나다. U410  글에도 부끄러운 글이 많았다. 하지만 염치없게도, 그런 부끄러운 글을 기꺼이 실어준 U410 있었기에 지금  글이나마 쓰고 있다. 어쩌면 대학이라는 공간은, 미숙한 자아들로 하여금 저마다 시행착오를 겪게    성숙한 인간으로 만드는 곳인지도 모르겠다. 모두들, 어제보다 오늘  좋은 사람이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