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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호

[53호] 서울을 옮기다 ② 해외 수도 이야기 - 13 이재형, 12 이진동

도시는 국가를 이루는 단위이다.  중에서 으뜸인 도시를 우리는 수도라고 부른다. 지구상의 수많은 국가들이 처한 상황은 전부 다르며 몰아치는 파도처럼 시시각각 변한다. 국가의 중심이 되는 수도는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몇몇 국가들은 수도를 옮김으로써 문제를 개선하고 싶어 한다. 지난 호에서 살펴봤듯이 역사 속에서 흔히 접하는 천도는 새로운 나라를 세우면서 망국의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 외적의 침입을 받아서 또는 정치적인 문제 때문에 행하는 경우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당대에 인간의 집합체인 국가는 어떤 이유로 수도를 옮길까? 허리케인으로 수도가  타격을 입어 천도한 벨리즈, 미국의 침입을 우려해 내륙으로 천도한 미얀마, 쿠테타로 집권한 군부 세력이 자신의 세력이 있는 지역으로 수도를 옮긴 파키스탄  외재적인 상황 때문에 천도하는  다양한 사례가 있지만  중에서도 특히 눈여겨볼 만한 천도에 대해서 언급하고자 한다.

 

브라질4)

 

브라질에서 수도 이전은 포르투갈이 브라질을 식민 지배했던 17세기 초부터 제기되었다. 독립 이후에 세워진 브라질 공화국은 1891 공포한 브라질 헌법에 중앙 고원 지대로의 천도를 명시하여 국가 과제로서의 천도를 분명히 했다. 1956 취임한 쿠비체크 대통령은 국토 불균형 해결, 국민 통합, 식민지 잔재를 목표로 헌법에 명시된 천도를 실제로 계획하고 추진했으며 1960 이전을 완료하였다.

 

2015 기준 브라질리아는 인구 400 5) 대도시권을 형성하여 내륙 지역의 성장 거점으로 자리 잡았다. 이를 통해 브라질 해안가 도시인 리우데자네이루와 상파울루를 중심의 국토 불균형 현상을 해결하였고 계획도시로서의 중요성을 인정받아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되는  국가 이미지를 제고하는 효과를 달성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임기 내에 수도 이전을 마무리하기 위해 급작스럽게 수도 이전이 이루어졌으며 재원 조달을 위해 화폐를 대량으로 유통시켜 인플레이션을 유발했고 후에 군부 쿠테타의 빌미를 제공했다.


그림 1 : 루치오 코스타의 파일럿 플랜(Pilot Plan)

위의 사진은 비행기를 닮아 파일럿 플랜이라고 불리는 브라질리아의 구상도이다. 도시를 계획한 루치오 코스타는 비행기의 몸체 부분에 해당하는 동서축에 행정기관  업무 시설을 배치하였으며 동쪽 끝의 삼권광장에 대통령 집무실, 국회의사당, 최고재판소를 삼각형 모양으로 배치하여 수도의 상징성을 강조하였다. 날개 부분에 해당하는 남북축에는 슈퍼 블록 형태의 주거 지역을 확보하였고  축이 만나는 지역은 상업 지구, 중심 업무 지구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브라질리아는 모더니즘에 기초한 계획도시라는 점을 인정받아 1987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하지만 입체 교차, 슈퍼 블록을 활용한 교통축은 보행자를 배려하지 않으며 도시의 활동이 행정 업무에 국한되어 있어 상파울루나 리우데자네이루에 의존적인 도시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미국6)

 

1781 연합 규약을 통해 탄생한 미합중국은 연방 정부가 위치할 연방 국가의 수도가 필요했다. 수도를 유치하기 위한 논쟁 끝에 연방 정부가 영국 식민지 시절의 채무를 갚기 위한 자금을 북부에 지원해주는 조건으로, 남부에 수도를 건설하는 것으로 타협이 이루어졌다. 의회는 수도의 위치를 결정할 최종 권한을 초대 대통령인 워싱턴에게 위임하였고 지금의 워싱턴 D.C. 되었다.

 

워싱턴 대통령은 미국의 독립 전쟁을 도운 프랑스의 공학자 피에르 랑팡에게 워싱턴 D.C. 계획을 맡겼다. 랑팡이 일련의 사건으로 해임된 이후 임명된 엘리거트는 랑팡의 계획을 일부 수정하여 1800 수도 건설을 마무리 지었다. 워싱턴 D.C. 영국의 약탈과 방화로 인해  차례 파괴되어 성장이 정체되었으나 남북 전쟁 기간에 인구가 유입되어 도시가 성장하였고 도시 정비 사업, 맥밀런 계획을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림 2 : 피에르 랑팡의 도시계획 

위쪽의 사진은 피에르 랑팡이 계획한 워싱턴 D.C 최초의 도시계획이다. 랑팡은 방사형과 격자형 도로를 혼합하여 가로망 체계를 구성하였고 국회의사당, 대통령 관저 등의 건물을 지대가 높은 지역에 배치하고  축이 교차하는 지점에 워싱턴을 기념하는 기마상을 세워 수도의 상징성을 부여하였다. 후에 맥밀런 계획을 통해 국회의사당 축과 대통령 관저 축은 공원이 조성되고 박물관, 기념비, 추모비가 들어서면서, 기념비적인 공간이자 도시의 중심축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캐나다7)8)9)

 

1608 프랑스인이 세인트로렌스강 연안에 퀘벡과 몬트리올을 중심으로 식민지를 건설하였고 후에 1628 영국은 노바스코샤를 발판으로 캐나다에 진출하였다. 유럽을 뒤흔든 7 전쟁:) 통해 영국은 프랑스가 소유하고 있는 북아메리카 대륙의 영토를 할양받게 되었다. 후에 세인트로렌스 강을 중심으로 분리된  식민지를 캐나다 주로 통합하는 법이 1840 영국 의회에서 통과되면서 통합 식민지의 수도 문제가 떠오르게 되었다. 프랑스계 주민은 몬트리올, 영국계 주민은 토론토를 캐나다 연방의 수도로 주장하였고 합의를 통해 킹스톤, 몬트리올 지역이 수도의 입지로 선택되었다. 하지만 1849 폭도들에 의해 몬트리올의 국회의사당이 불타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퀘벡과 토론토를 번갈아가며 수도를 두는 방안이 채택되었으나 비효율적인 면이 강해 영구적인 대안을 찾기 시작하였다. 1857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은 정치적인 측면을 고려하여 오타와를 새로운 수도로 결정하였다.


호주 11)

그림 3 : 그레버 계획(Greber Plan), 1950

토드 보고서, 홀트 보고서  지속적으로 발간된 보고서를 통해 수도 오타와를 발전시키기 위한 캐나다의 노력을 확인할  있다. 오른쪽의 사진은 오타와에  영향을 끼친 그레버 계획이다. 도시 미화 운동의 영향을 받아 그린벨트 조성, 가티누 공원의 확장, 연방 정부 기관의 외곽 이전, 도심 철도의 외곽 재배치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있고 이는 개정된 수도 계획에도 반영되어 있다. 현재 캐나다는 1959 설립된 국가수도위원회(National Capital Commission, NCC) 통해 역사적·생태적 가치의 보전, 국가 수도지역  연방 자산 관리, 국가 정체성 확립  자긍심 고취를 위한 행사 주관  행정 수도의 전반을 관리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12) 13)

그림 4 : 월터 그리핀의 도시계획

위쪽의 사진은 국제현상공모를 통해 당선된 그리핀의 계획안이다. 주거 지역을 간선도로와 공공, 상업 용지로부터 분리하고 식재 계획에 충실한, 전형적인 전원도시의 개념을 따르고 있으며 자연 환경과 기하학적 구조를 결합하여 중심축을 형성하였다. 시민들의 휴식공간인 그리핀 호수를 기준으로 남쪽에는 중심에 연방 정부와 의회가, 주변에 주거 지역이 형성되어 있으며 호수 북쪽에는 교육지구, 시청사지구가 형성되어 있고 뒤로 공업 지역과 주택 지역이 형성되어 있다. 한편 캔버라는 토지 국유화, 강력한 환경 정책을 통해 생태 도시로 성장하였다. 하지만 시드니, 멜버른  대도시와의 거리가 멀고 강력한 규제 때문에 기업이 없어 경제적인 원동력이 부족하며 저녁만 되면 도시의 활동이 크게 감소한다는 점이 문제로 꼽힌다.


1991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총리는 정보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비전 2020 제시하면서  일환으로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와 국제공항을 축으로 하는 멀티미디어 대회랑 지대(Multimedia Super Corridor, MSC) 계획을 발표했다. 한편 수도 쿠알라룸푸르는 만성적인 교통체증을 겪고 있었으며 행정 기관이 시내 곳곳에 분산되어 업무 효율성이 떨어졌다. 이에 현대적인 기반 시설을 갖춘 행정도시 건설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수도 쿠알라룸푸르와 국제공항의 중간에 자리한 지리적 이점을 갖춘 푸트라자야가 입지로 선정되어 2010 건설이 완료되었다.


그림 5 : City in the Garden – Intelligent City

왼쪽의 사진은 행정 도시 푸트라자야의 계획도이다. 5개의 중심 업무 지구와 17개의 주거 지역으로 구성된 푸트라자야는 전체 개발 면적의 37.6% 녹지 공간으로 조성하여 시민들에게 쾌적한 자연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다양한 업무를 간편하게 이용할  있도록 기반 시설을 구축하였다. 호주의 캔버라와 반대로 수도 쿠알라룸푸르와의 거리가 25km 밖에 되지 않아 접근성이 좋지만 지나치게 가까워 국토 균형 발전과는 거리가 멀다는 단점이 있다.


독일 14)



독일의 수도 베를린은 신성 로마 제국 시대에 상업과 제조업의 중심지로서 발달하기 시작했으며 1701 프로이센 왕국의 수도로 선택되면서 독일 지역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후에 프로이센 왕국의 주도로 이루어진 통일 독일 제국의 수도로서  권위를 공고히 했으며 1 세계 대전, 나치 독일 시대까지 계속 수도로서 역할을 다했다. 그러나 2 세계대전 이후 독일이 분할 통치되면서 제국주의 독일의 상징이던 베를린 또한 분할되었다. 동독의 영토  가운데 육지의 섬처럼 서베를린이 고립되자 서독은 실질적인 수도의 역할을 담당할 곳을 찾아야 했다. 함부르크, 뮌헨, 쾰른, 그리고 프랑크푸르트와 같은 쟁쟁한 후보들이 있었으나 연방제인 독일 정치체제 하에 이들은 위치가  곳에 치우쳐 있거나, 다른 주의 주도이거나, 너무 대도시라 이들   곳을 수도로 정하면 서독의 수도로서 지위가 너무 확고해 지므로 후에 통일이 되었을  베를린으로 환원이 어렵거나 통일에 대한 열망이 약해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따라서 초대 총리였던 콘라트 아데나워의 고향인 쾰른에 가까운 중소도시 본을 수도로 결정하였다.

 

 

 

서독과 동독 양측이 준비하는 통일조약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바로 수도의 위치였다. 동독의 경우 베를린을 통일 독일의 수도로 원하였으나 서독의 여러 주들은 본을 실질적 수도로 유지하기를 원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본이 서독의 실질 수도로 기능하게  이유는 다른 대도시들에 비해 적은 상징성과 정치적 의미를 지닌 소도시였기 때문인데 분단이 장기화하고 서독이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본이 경제적 성장의 상징처럼 되어버렸다. 여기에 베를린이 장벽과 동독의 수도였던  등으로 공산주의의 중심으로 여겨진  또한 일부 서독 주민들에게 반발심을 불러 일으켰다. 물론 200 동안 독일의 수도였고, 독일 통일의 상징이라는 점에서 베를린을 수도로 해야 한다는 주장 역시 만만치 않았다. 결국 연방의회에서 베를린과 본을 놓고 표결한 결과 근소한 차이로 베를린이 통일 독일의 수도가 되었다. 베를린은 공산주의 시절의 동독 청사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었는데  자리가 1 대전을 일으켰던 프로이센 왕국의 궁전 터이고 건물 자체도 석면에 덮여 있어 정부청사를 신축하였고 한동안 연방정부는 본과 베를린 양쪽에서 업무를 나눠 보아야 했다.


그림 6 : 독일 통일의 상징, 브란덴부르크 

1989 11 9 브란덴부르크 문에 운집한 10 명의 인파 앞에서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동독 주민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통일을 외치거나 이미 공산주의 정권이 무너진 동유럽으로 우회하여 서독으로 들어가기 시작하자 서독 정부에서도 통일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통일에 대한 논의는 노도와 같이 진행되었고 1990 10 3, 마침내 독일의 통일이 선포되었다.

 

수도는 국가를 움직이는 중추이므로 당연히 권력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수도를 옮기거나  기능을 분담하는 일은 기존의 수도를 고수하려는 의지와 충돌하게 된다. 앞선 사례들을 통해 독립이나 통일이라는 거대한 사건이나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국가적 가치가 천도의 강력한 명분이   있음을 살펴보았다.

 

최근 정부는 행정안전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세종시로 이전한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지방 분권의 일환으로 추진된 행정도시 세종시의 기능을 강화하고 있다. 또한 정치권에서도 헌법에 세종시를 행정수도로 명문화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역 불균형이라는 당면 과제와 통일이라는 미래의 숙제도 고민해야 하는 대한민국은, 위의 국가들이 주는 교훈을 명심하여 행정수도 이전을 완성해나가야  것이다.

 

다음 글에서 대한민국에서의 행정도시에 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출처]



 4)  그림출처: https://elgrandetour.files.wordpress.com/2014/01/no-reading-april.jpg

 5) kosis 주요도시 통계,
    http://kosis.kr/statHtml/statHtml.do?orgId=101&tblId=DT_2KAA203#
    6) 그림출처: http://www.wikiwand.com/pt/Planejamento_urbano
    7) 신동진, 「해외의 수도 건설 2 : 캐나다의 수도 오타와」, 『도시문제』 39호, p.63-64, 2004
    8) 그림출처: http://www.pastottawa.com/greber/
    9) 김재철, 「캐나다 오타와의 행정수도계획 및 관리 체계」, 『국토』 370호, p.103-106, 2012
    10) 슐레지엔 지역을 둘러싸고 유럽대국들이 둘로 갈라져 싸운 전쟁(1756~1763).
    11) 그림출처: http://gutenberg.net.au/ebooks13/1305201h.html
    12) 손동욱, 「푸트라자야(Putrajaya) 도시계획의 개념과 실행에 관한 외부 초청 강연」, 『국토』 302호, p.109-110, 2006
    13) 그림출처: http://www.ppj.gov.my/portal/page?_pageid=311,509446,241_ 415033&_dad=portal&_schema=PORTAL
    14) pictured by 이진동


 


<참고문헌>

 

 

[1] 충청북도, 『신행정수도 건설방안과 추진전략』, 충청북도, 2003.11.

[2] 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원회, 『신행정수도 건설기본계획』, 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원회, 2004.8.

[3] 최병선, 「해외사례로  신수도 건설」,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2004

[4]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행정중심복합도시의 자족성 확보방안 : 최종보고서』, 건설교통부, 2006.9.

[5] 송정훈, 「해외 수도 이전 사례 분석을 통한 세종특별자치시 자족기능 강화방안 연구」, 고려대학교 정책대학원, 2013.6.

[6] 신동진, 「해외의 수도 건설 3 : 브라질리아(Brasilia)」, 『도시문제』 39, p.74-94, 2004

[7] 김명수, 「모더니즘에 입각한 계획도시, 브라질리아(Brasilia)」, 『국토』 294, p.122-127, 2006

[8] 문경희,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 『국토』 249, p.70-76, 2002

[9] 신동진, 「해외의 수도 건설 1 : 미국 워싱턴 DC 건설」, 『도시문제』 39, p.123-136, 2004

[10] 신동진, 「해외의 수도 건설 2 : 캐나다의 수도 오타와」, 『도시문제』 39, p.58-75, 2004

[11] 김재철, 「캐나다 오타와의 행정수도계획  관리 체계」, 『국토』 370, p.102-107, 2012

[12] 이왕건, 「전원도시에서 국가수도로, 캔버라」, 『국토』 285, p.74-79, 2005

[13] 최성진, 「호주의 행정수도 캔버라의 진화 방향」, 『국토』 370, p.65-68, 2012

[14] 손동욱, 「푸트라자야(Putrajaya) 도시계획의 개념과 실행에 관한 외부 초청 강연」, 『국토』 302, p.108-112, 2006

[15] 안영진, 박영한, 「독일의 수도이전」, 『한국지역지리학회지』 7 4, p.33-47, 2001

[16] 양현모, 「독일의 수도이전 사례가 한국의 신행정수도 건설에 주는 행정학적 함의」, 『한국행정학보』 38 3, p.161-181,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