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에 친구와 홍콩 여행을 다녀왔다. 홍콩은 우리 둘 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나라였고, 해외로 떠나고 싶어 2월부터 돈을 모았다. 여행지 후보로 나왔던 여행지로는 일본이나 괌, 사이판, 대만, 두바이 등 다양했지만 여러 가지를 고려하여 홍콩으로 결정했다. 충동적으로 결정한 일이라 날짜는 가장 직관적으로 잡았다. 7월 1일부터 4일까지 3박 4일. 표를 예매할 당시 홍콩에 시위가 일어나게 될 줄 몰랐다. 결론적으로, 다행히 일정을 변경해 시위대를 볼 일은 없었다. 다행히 함께 가기로 한 친구와 마음이 잘 맞아서 갈등은 없었다. 생애 처음으로 크게는 일정과 비행기 표와 숙소를 비교해야 했고 작게는 카드 수수료까지 고려해야 했다. 일정을 자유롭게, 원하는 시간대의 비행기와 원하는 호텔에서 묵을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었지만 여러 가지로 선택의 갈래에 놓여 번거로웠다. 그래도 한 달 전부터 여행 갈 생각으로 들떠있었다. 떠나기 며칠 전에는 공항에 사람이 많아서 환전한 돈을 못 찾거나 면세품을 못 찾을까 걱정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간과한 사실이 있다.
여름날 홍콩은 가지 않는 거라는 고난을 겪은 무수한 선행자들의 존귀한 말씀.
우리는 해외여행 시 빠질 수 없는 구글 맵을 통해 길을 찾았다. 여름인지라 너무 더웠고 상상도 못 한 습도 때문에 한증막에서 길을 찾는 느낌이었다. 가끔 이 구글 맵스는 말썽을 부려 같은 길을 서너번은 지나가게 했다. 날이 너무 더워 길거리를 지날 때 열린 매장 앞을 지나가면 차가운 에어컨 바람에 짧은 행복을 찾아 매장을 기웃거렸고, 버스에서 내리기 싫어 돌아서 가더라도 좌석에 꼭 앉아 있었다. 올해 초 대만을 갔을 때도, 이번에 홍콩을 갔을 때도 신축 건물이 아닌 일반 건물의 주거 구역을 보면 “저런 곳에서 어떻게 살지?”라고 생각이 든다. 우선, 너무 다닥다닥 붙어있어 햇빛이 잘 들어오지 않고, 에어컨 실외기가 항상 가동되고, 굉장히 비좁아 보였다. (그래서 외식문화가 발달했다는 말은 어디선가 들었다) 길거리를 지나갈 때마다 에어컨 실외기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에 비로 착각한 적도 많았다. 홍콩에서 탄 대중교통 중에 ‘트램’이란 것도 타 봤다. 처음에 구글 맵스에서 트램을 나타내는 기호를 봤을 때 이게 무엇인지 몰라 당황했다. 홍콩의 가장 유명한 교통수단인데, 가격도 저렴하고 생각보다 노선이 다양했고 노선도 많았고 배차 간격도 짧았다. 한 가지 단점이라면 창문에 유리창이 없어 비가 오면 비가 들이닥쳤고, 에어컨도 없었다. 시위가 엊저녁 있었던 곳이었는데 시위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다. 소나기로 날씨가 말썽이었지만 사건으로 인해 여행에 차질이 있지는 않았다. 요즘 드는 생각인데, 7월 초에 바로 홍콩 여행을 간 것이 의외로 잘한 일일 수도 있겠다는 것이다. 언어의 문제가 조금 많이 있었지만 그래도 음식도 맞았다. 홍콩 공항에서 첫 끼로 먹었던 크리스털 제이드는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언젠가 적어도 한 번은 더 올 것 같아 교통 카드로 쓴 문어 카드는 반납하지 않았다. 여행에서 돈을 버린 건지, 좋은 경험에 쓰인 건지 여행을 다니면서 알 수 있다. 멋모르고 홍콩 디즈니랜드에 간 것은 후회하고 있다. 홍콩 디즈니랜드는 정말 영유아들을 위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날 마카오를 가는 것이 나았을지도 모른다.
아쉬운 점은 이 밖에도 몇몇 있었지만 친한 친구와 부모님의 도움 없이 여행 경비를 해결하고, 필요한 것들을 스스로 다 챙기고, 안전하게 여행을 마쳤으니 충동에서 비롯된 행동치고 1학기 중에 가장 잘한 일인 것 같다. 원래 나는 땀 안 나게, 깔끔하게, 시원하게, 안전하게 호캉스 같은 여행 아닌 여행을 좋아했다. 왜 굳이 더운데 사서 고생해? 이런 생각이었다. 별거 없다면 별거 없는 여행이었던 홍콩 여행이었지만 생각보다 아무 걱정 없이 한국을 떠나 자유롭게 있는 시간은 참 좋았다. 이국적인 장면으로 사진을 찍게 만들었다. 이번에는 2학기 중에 수업을 빠지지 않는 한, 한 번 혼자 떠나볼 생각도 하고 있다. 물론 유럽이나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인도 등등은 혼자 못 다녀오겠지만 가까운 나라는 다녀올 예정이다. 아니면 당일치기로 강원도 쪽도 괜찮을 것 같다. 왜 1학기에는 그럴 생각을 못 했는지 약간의 후회가 있지만 2학기에는 기숙사 침대 밖으로 나가 바다를 건널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우선 수강 신청부터 제대로 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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