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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호

[56호] 허호준, 「삼나무숲 훼손 논란 비자림로 확장 공사 7개월 만에 재개」, 한겨레, 2019. 03. 18. - 19 채지원

보호와 개발의 경계

비자림은 나에게 익숙한 곳이다. 고향이 제주도인 아버지를 따라 매년 명절 때마다 제주도를 찾았다. 내가 제주도에서 제일 좋아하던 것은 테마파크도, 예쁜 박물관도 아닌 맑은 파도 소리가 들리는 고요한 바닷길과 촉촉한 흙냄새가 나는 숲길이었다. 그 중에도 숲길은 차로 빨리 지나가도 좋았고 여유롭게 천천히 걸어도 좋았다. 특히 울창한 삼나무 사이를 차로 지나갈 때면, 차 창문으로는 채 담지도 못할 정도로 하늘 높이 뻗은 삼나무와 자동차 전면 유리 양 옆을 가득 채우는 삼나무들에 압도당하는 기분이었다. 차에서 내려서 숲을 걸으면 어두운 숲 사이로 슬며시 비추는 햇빛이 왠지 모르게 따듯하고 기분이 좋았다. 숲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촉촉한 흙냄새와 주변을 채우는 작은 소리들도 비자림을 떠올리면 으레 생각나는 것들이다. 내가 기억하는 제주도의 이미지, 떠오르는 비자림에서 한 장면은 그렇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한동안 제주도를 찾지 못했다. 어쩌다 고등학교 수학여행으로 오랜만에 제주도를 가게 된 것이 전부였다. 수학여행은 유명한 관광지 위주로 다니기에 기대하는 제주의 모습을 볼 수 없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고,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었다. 그러던 중에 작년 여름방학에 신문을 보다가 비자림 공사 직후 사진을 보게 되었다. 놀랐고 당황스러웠다. 단지 사진만 보았을 뿐인데 아팠고, 깎여나간 부분이 휑하게 비었고, 내가 좋아하던 것을 불특정한 사람들에게 뺏긴 기분이었다. 나는 솔직히 그동안 환경과 개발 사이의 이슈들에 관심이 많았고 나름 비판적으로 생각하길 좋아했다고 믿는다. 그런데 비자림을 보고는 순간 객관적인 시각은 사라지고 그저 소중한 것이 사라진 상황만 떠올리게 되어버렸다. 비자림을 보호하려는 입장에서 외치는 모든 의견에 동의했고, 개발하자는 주장들은 무작정 배척했었다. 지난주 비자림로 공사 재개 기사를 접하고 문득 그 때 생각이 났다. 아직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까. 다른 사람들의 의견들을 찾아보면서 내 생각을 다시 정리해보려고 한다.

비자림로를 넓히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성산읍 주민들은 비자림로 810일 기자회견을 열어 해당 도로는 자가용과 렌터카 등 수많은 차량이 통과하고 있다시야 확보의 어려움과 위협적인 추월 구간으로 인한 주민의 생명권 보장을 위해 필요하다고 밝혔다. [각주:1] 교통량 증가와 교통안전 문제 해결을 꼭 도로 확장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것인가. 도로가 좁다는 이유로, 지나다니는 차량이 많다는 이유로 도로를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고 본다. 1일 통행량 기준 14천 대 정도가 지나간다고 하는데, 1만 대가 넘게 통행해도 정체되는 시간 없이 고르게 통행할 수 있는 반면에 오천 대만 통행해도 특정 시간대에 몰리면 정체가 발생한다. 아마도 그들에게 교통량 해소는 단순히 표면적인 이유일 것이다. 성산읍에 제주 제2공항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데, 공항을 위해 비자림 확장 공사를 진행하는 것이 아닌가. 관광지화를 통한 경제적인 수익을 바라고 편리함을 추구하는 가치가 우선시되면서 비자림의 환경적 가치가 가려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이런 갈등을 겪고 있는 곳은 비단 제주도만은 아닐 것이다. 최근에는 관광으로 인한 국토 개발이 많이 진행되고 있는 듯하다. 다음으로 환경보전과 개발이 균형을 잘 이룬 사례를 소개하려고 한다. 나는 담양의 메타세쿼이아 길을 좋아한다. 어릴 때 어머니와 다녀온 적이 있는데, 꼭 다시 함께 가봐야겠다고 생각하는 곳이다. 날씨 좋은 가을날, 메타세쿼이아길 가운데에 서 있으면 온 세상이 노란빛으로 물들었다. 파랗고 높은 하늘과 확연히 구분되는 노란 단풍은 분명히 아름다운 자연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이런 담양의 메타세쿼이아 길도 도로 확장 과정에서 여러 번 사라질 위기를 겪었다. 국도의 구간을 정하기 위해, 국도 확장 과정 중에 나무가 베어질 예정이었지만 지역 환경단체와 주민들이 나서서 많은 나무를 지켰다. 지금은 연간 70여만 명이 찾는 꿈의 드라이브코스가 되었다. [각주:2] 담양의 메타세쿼이아 길은 가로수길의 가치를 아는 주민들과 시민단체가 국토관리청과 적절한 협의를 끌어낸 좋은 사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언제나 이렇게 좋게 합의를 이끌어 낼 수는 없다. 누군가는 손해를 보고 무엇인가는 포기를 해야 한다. 나는 적어도 제주도에서만큼은 개발 말고 환경보전 쪽으로 기울었으면 좋겠다. 제주도는 개발이냐 환경보전이냐는 단순한 논리를 뛰어넘는 그 이상의 자연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우리 세대에서 적당히 즐기고 보전해서 다음 세대에게 넘겨주어야 할 유산이다. 그렇기에 비자림은 먼저 확장 공사를 진행하기보다는 관광객 증가에 대비하여 교통량을 조절할 수 있는 대안을 강구했으면 한다.

이전에는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한 환경파괴가 주 논점이었다면 지금은 관광화로 인한 환경파괴가 화두가 되고 있다. 지금은 관광으로 더 많은 수입을 창출할 수 있다. , 도시재생 사업으로 마을을 탈바꿈하거나 유명하지 않은 명소들을 발굴해내면서 사람들은 더 모이고 붐빈다. 하지만 유명하고 아름다운 자연환경으로 사람들을 모으고, 더 모으기 위해 그 자연을 파괴하는 행위는 절대로 모순이다. 눈앞에 이익을 위해서 몇천 년, 몇만 년을 이어온 자연환경을 포기할 수 있는가.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시점에도 비자림로에서 베어지는 나무 사진과 함께 기사가 올라오고 있다. 난 제주도가 이제 개발을 멈추고 이 모습 그대로 지켜나가는 데에 힘을 썼으면 좋겠다. 관광객을 더 많이 수용하려고 노력하는 대신 그 수를 조절하려고 노력했으면 한다. 제주도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가지고 있는 모든 지역들이 관광보다는 보존을 택했으면 한다. 우리는 더는 편리하게 보고 즐기는 방식을 추구하기보다는 개인의 불편함을 감내하고 찾아가서 그 소중한 가치를 만나는 방식을 추구해야 한다.

그러나 이 순간, 나도 개발을 하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이 떠오르지는 않는다. 환경보존을 외치고 있으나 외치기만 할 뿐, 뾰족한 대안을 내놓을 능력은 없다. 또한, 관광을 하기에 불편한 장애인이나 노약자 등 접근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든다. 단순히 보존만을 외치기에는 고려할 부분이 너무 많음을 새삼 깨닫는 중이다. 아직 배움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라면 공부를 하면서 해결하면 될 부분이겠으나 배움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름 다양한 의견을 찾아보면서 이 글을 썼는데 생각이 더 복잡해지기만 했다. 아직도 개인적인 감정에서는 약간 벗어난 것 같으나, 오히려 복잡해진 생각 속에서 혼란스러울 뿐이다.

  1. 「제주 비자림로 훼손 논란 속 주민들공사 재개하라, 김정호, 『제주의 소리』, 2018. 08. 10. [본문으로]
  2. 「개발의 역설... ‘ 2의 비자림로전국 곳곳 몸살」, 김영헌, 『한국일보』, 2018. 08. 22.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