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서울에 자리 잡은 수많은 건축물들 중 이보다 특이한 것이 있을까. DDP에서는 건물 하면 떠오르는 직선 구조나 수직의 벽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주변의 네모난 건물들과는 대조적인 유연한 곡선들을 통해 자신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건물 내부 역시 독특한데, 천장과 벽이 곡선을 그리며 기울어져 있다. 거대한 나선형 통로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길이 넓은 공간으로 바뀌기도 한다. DDP를 찾은 방문객들은 분명 새로운 경험을 했을 것이다. 이 ‘불시착한 외계인 우주선’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건물은 아니었을 테니 말이다.
5년간의 공사를 거쳐 지난 3월 21일 개장한 DDP는 사업 계획이 발표된 뒤로 지속적인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과연 주변과 어울리는 모습인가, 만들어질 공간들은 어떻게 사용할 것이며 공사비용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동대문운동장을 헐어내면서 발굴된 성곽 유물들에 대한 대우는 정당한 것인가. 또한 사업 계획과 진행 절차는 합당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런 질문들에 대해 DDP는 아직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위의 의문들이 ‘세계적인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건물’, ‘세계 최대 3차원 비정형 건축물’, ‘BIM, 메가트러스 공법 등 최첨단 설계기술의 집합체’ 등의 칭찬들에 묻혀버린 듯하다. 그런 타이틀이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는 있겠지만, 계속 찾아오고 싶은 공간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DDP를 살리고자 한다면 동대문 지역의 역사와 문화가 있는 곳에 세워졌고,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공공건축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며, 앞으로 동대문 일대에 영향을 끼칠 힘이 있는 곳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DDP 일대는 그저 특이한 장소로밖에 사람들의 기억에 남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이 글을 통해서라도 DDP에 관한 여러 고민거리와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그림 1 ▲ 동대문디자인플라자 & 파크의 외부 조감도
DDP 일대의 역사는 어디에 있는가.
DDP 일대는 동대문운동장이 서 있던 곳이자 한양성곽 유물들이 발견된 곳이다. 그런데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및 역사문화공원 조감도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DDP를 부각시키고 성곽과 여러 유물들은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자하 하디드는 DDP 개관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성곽의 흔적을 살리면서도 공원과 플라자를 물 흐르듯이 매끄럽게 하나로 묶고 싶었다.”고 말했으나, 어떤 측면에서 성곽의 흔적을 살린 것인지 알 수 없다. 심지어 우리나라의 성곽은 본래 해자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초기 설계안에서는 성곽 주변에 물을 채운 해자를 만들어놓았으며, DDP가 들어설 자리에서 발견된 유적은 원래 자리에 있지 못하고 성곽 밖으로 옮겨지고 말았다.
DDP가 세워지기 이전으로 되돌아가 보자. 우선 2007년 철거가 진행되기 전까지는 동대문운동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 동대문운동장은 임시정부 환국봉영회, 김구 선생의 국민장, 신탁통치 찬반집회 등 해방 이후 주요 사건들이 일어났던 장소이며, 프로야구의 원년 개막전, 초창기 연고전 등 주요 스포츠 행사가 열렸던 한국 스포츠의 산실이었다. 비록 일제의 필요에 의해 세워졌지만,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중심에 서 있던 상징적인 건물인 셈이다. 88올림픽 이후 종합경기장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후에도 풍물시장이 열리면서 지역 상인들의 거점이기도 했다.
그 이전에는 조선 시대 최대 군영이었던 하도감이 서 있던 곳으로 동대문운동장을 철거하면서 2만 5,000여 점의 유물과 함께 새로이 발굴되었다. 또한, 일제가 동대문운동장을 지으면서 파묻었던 한양 성곽과 이간수문을 찾을 수 있었다. 지금 DDP가 서 있는 곳은 그 동안 기록으로만 파악해야 했던 동대문 일대의 치성 구조를 직접 살펴보고, 도심 한복판에서 조선 시대의 생활상을 생생히 둘러볼 수 있는 장소인 것이다. 1
그림 2, 3 ▲ 한양성곽과 유적 터: 발굴 당시의 모습 그대로 복원했다고 하지만, DDP의 그늘에 가려져있는 것 같다. 시간이 한참 흐른 후 사람들은 과연 이 장소만의 독특한 유적과 역사를 기억할까.
그러나 DDP는 이 모든 것을 한쪽으로 밀어놓고 말았다. 지하철역에서 내리면 DDP를 한 바퀴 돌고 나서야 겨우 성곽이 서 있는 곳이 눈에 들어온다. 성곽의 보존 상태가 좋다고는 하지만 지금의 모습은 DDP의 그늘에 가려 있는 돌담 같은 느낌이다. 발굴된 유적들 역시 DDP 옆 역사문화공원 안에 파편적으로 흩어져 있다. 더 문제 되는 점은 과거 서울성곽 안쪽에 있었던 하도감 터를 성곽 밖으로 이전시켰다는 사실이다. 하도감은 서울을 방위하며 도성 내 치안을 담당하던 곳이다. 당연히 서울성곽 안에 있어야 할 유적을 DDP를 위해 밖으로 내쫓은 꼴이다. 발굴된 모습 그대로 옮겨놓았다지만 어디에 있었는지가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하도감 같은 유적을 옮겨놓았다는 사실 자체가 비판받아 마땅한 것이다. 가장 기초적인 복원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는데 이를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이라며 자랑스럽게 소개할 수 있는 것인지 부끄럽다.
동대문운동장은 어떠한가. DDP 일대에서 찾을 수 있는 동대문운동장의 흔적은 조명탑과 성화대, 새로 지은 기념관이 전부다. 동대문운동장의 유산들을 모아놓은 기념관은 그저 옛 기억을 되살릴만한 물건들을 모아놓은 단순한 박물관에 불과할 뿐이지, 무엇을 기념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나중에 사람들이 이곳이 한때 수많은 사람들의 응원으로 뜨거웠던 장소였다는 사실을, 여기서 일어났던 일들을 알 수 있을까. 자하 하디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수년간 동대문 일대의 문화를 연구했으며, 광장, 공원, 건축을 통합하는 디자인에 초점을 맞춰 왔다고 이야기했다. 그녀가 택한 방식은 고작 이것인가. 성곽은 가려지고, 유적을 옮겨놓고, 동대문운동장은 기억에서 사라지는 방식.
청계천 복원 사업이 한창이었을 때도 광통교, 오간수문, 석축 등의 유적들은 제자리에 서 있지 못하고 여기저기 흩어져 버렸다. 주변 교통흐름에 영향을 준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렇게 복원된 청계천은 잘 꾸며진 도심 속 하천일 수는 있을지언정 이곳에 있었던 옛 자취를 느끼기에는 엄연한 한계가 있다. 근대 건축물 중에는 급격한 도시화와 고층 건물에 자리를 내어주고 철거되어버린 경우가 많다. 새로운 건물을 세우기 위해 원래부터 있어왔던 유산을 우리 손으로 밀어내버린 것이다.
우리는 폼페이나 피렌체처럼 옛 모습이 잘 간직된 도시에 대해 감탄을 아끼지 않는다. 서울 역시 옛 자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 많아서 이를 잘 보존, 활용하면 분명 엄청난 문화적 자산이 될 수 있다. 동대문시장 일대가 바로 그런 지역이다. 조선 시대의 성곽과 유적이 온전히 서 있고 근현대사의 경조사를 함께한 장소가 같이 존재할 수 있는 곳이 얼마나 있겠는가. 게다가 평소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기에 일상에서 역사적 흔적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는 귀중한 장소인 것이다.
그러나 서울시는 이와 같은 잠재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DDP 건설 당시 유적 조사가 진행된 시간은 총 348일로, 1년도 되지 않는다. 제대로 현장을 조사하고 설계를 어떻게 조정해야 할지를 새롭게 의논하기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이다. 개발지역이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장소일수록 더욱 세심히 다루어야 하며 향후 개발방향에 대한 의견교류와 분석이 충분히 이루어져야 한다. 옆 나라 일본은 오사카의 시립 역사박물관 터가 고대 궁궐 유적이 있는 자리였기 때문에 시민 대표와 전문가를 동원하여 7년 이상의 시간을 토론과 설계에 투자했다. 2
서울시는 역사적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지역에 DDP를 세워야 했다. 그럼에도 동대문 일대에 건설되어야 한다면 적어도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시민들과 전문가의 의견을 구하면서 현장을 살펴보았어야 했다. 자하 하디드와 지속적으로 의논하면서 지역의 역사성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설계안을 수정하고 보완해야 했다. 현상설계 공모전 후 DDP를 개관하기까지 걸린 7년의 시간 중 5년은 DDP 공사와 운영 계획을 짜는데 투입된 시간이다. 그 시간 동안 이 지역의 역사를 같이 살릴 수 있는 방안을 차근차근 고민했더라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훨씬 과거와의 조화를 살린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DDP는 시민과 함께하고자 하는가.
DDP를 개관하기 전, ‘과연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을 것인가?’라는 의문이 계속 제기되었다. 그러나 개관 100일 만에 246만 명이 다녀갔다고 한다. 이는 서울시민의 1/4 정도에 달하는 수치이다. 올해 말까지 DDP 방문객을 550만 명에 이르게 한다는 서울시의 목표에 비추어봤을 때 분명 성공적인 행보이다. 3
DDP는 분명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힘이 있다. 우선 입지 자체가 서울에서도 가장 발달한 상권 지역으로 손꼽히는 동대문시장 일대이기 때문에 평소에도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이다. DDP로 이어지는 지하철역은 2호선, 4호선, 5호선이 지나는 곳이며, 여러 버스 노선도 이곳을 지나므로 접근성 역시 좋다. 여기에 세계적인 건축가가 디자인한 건물이라는 타이틀과 특이한 모양새로 시선을 끄는 DDP를 세웠으니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DDP에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는 결국 ‘공공장소’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공공장소란 누구나 찾아오고, 둘러보고 이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장소이다. DDP에서 사람들은 다양한 전시와 기획전을 관람하고, 지하의 상점들을 하나하나 둘러보며, 옆에 위치한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을 한 바퀴 돌아보기도 한다. 사실 DDP는 동대문운동장 지역을 공원화하여 시민들에게 돌려주자는 움직임에서 시작된 사업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이는 DDP는 엄연한 공공장소이며,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이야말로 DDP의 주인임을 말해준다. 만약 DDP의 용도가 오피스 빌딩처럼 특정 목적을 가진 사람들만이 드나드는 건물이었다면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이 DDP를 찾았겠는가.
규모에 상관없이 대중적인 공공장소로 사용되는 건물이나 지역은 스스로를 개방 해야한다. 아무런 제약 없이 누구나 찾아올 수 있는 장소임을 이야기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DDP는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라는 인상을 주지는 않는다. 지하철역에서야 DDP 안의 광장으로 바로 접근이 가능하지만, 그 밖의 위치에서는 어떠한가. 을지로나 장충단로 건너편에서 바라본 DDP는 하나의 거대한 언덕이었다. 안에서 어떤 일들이 펼쳐지고 있는지 보여주지 않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보다는,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싶다면 직접 건너와서 파악해보라는 식의 태도 같았다. 끝없이 새로운 전시회나 행사를 개최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그저 DDP의 세련된 외관에 감탄할 뿐이지 과연 저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할지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DDP를 한참 바라보며 나는 성채를 떠올렸다. 은색의 알루미늄 패널들로 뒤덮인 거대한 성채 말이다.
그림 4 ▲ 도로 건너편에서 바라본 DDP: DDP는 안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자신만의 세계를 감춰놓은 도심 속 성채이다.
또한, DDP의 내부에 대해서도 걱정이 앞선다. 지금의 DDP는 내부 구조나 동선이 복잡하고, 안내 역시 미흡한 실정이다. 다음은 2014년 4월 15일 자 주간경향 기사의 한 단락이다.
“... 기자는 무료 개방이 이뤄지던 지난주부터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방문, 내부를 둘러봤었다. 건물 내부의 각층은 거대한 나선을 그리며 하나의 통로로 이어져 있다. 디자인 둘레길이라는 이름이다. 엘리베이터의 어느 층에서 내리든 보이는 풍경은 얼추 비슷하다. 2층 주위를 둘러봤다. 2층임을 알려주는 표시가 눈에 안 띈다. 조금 더 유심히 보니 엘리베이터 입구 위쪽에 음각으로 작게 ‘2F’가 표시되어 있었다. 눈에 잘 안 들어오는 자리다. “사람들이 착각을 많이 하나요?” 직원에게 물었다. 직원도 답답해하는 눈치였다. “나이 드신 분이나 유모차를 끄는 분들 대하기가 쉽지 않네요. 격앙되어서 한 말씀씩 하는데….” ...” 4
곡선들로 채워진 DDP의 내부 공간들은 얼핏 보면 서로 비슷한 모습들을 띠고 있다. 굽이굽이 돌아가는 길 역시 내가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이는 건물의 유기적인 형태나 다양한 활용 가능성에 공헌할 수 있지만 길을 잃기 쉽다는 단점을 지닌다. 안내표시 역시 조그맣게 2F라고 표시해놓거나 벽면에 그려진 내부 지도 위에 ‘당신은 지금 여기 서 있습니다.’라며 찍힌 점이 전부이다. 어디로 가면 되는지 친절하게 설명한 문구나 그림을 찾을 수 없었다. 마치 근사하게 꾸며진 미로를 걷는 느낌이랄까. 그러나 DDP는 미로가 아닌, 공공의 장소이다. 누구나 자신이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쉽게 찾을 수 있어야 한다. 길을 잃었을 때 다시 되돌아가서 길을 찾기 어려울 장애인이나 노인, 어린이들은 DDP를 진정 즐길 수 있는 것인가.
그림 5, 6 ▲ DDP 내부: DDP는 유기적인 형태의 곡선과 용도가 명확치 않은 공간들로 이루어져 있다. 분명 새로운 건축적 시도이자 재미있는 체험이겠지만, 보행이 힘들거나 길 찾기에 능숙치 않은 사람들에게는 불편함으로 다가올 수도 있을 것이다.
DDP는 분명 새로운 건축형태나 공간구성의 가능성을 마음껏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공공장소로서의 DDP는 여러 문제를 지닌 건물이다. 주변 도시와 어깨를 맞대고 지내려 하기 보다는 자신만의 세계를 안에 숨겨놓고 사람들에게 자신을 찾아오라고 강요하는 꼴이다. 게다가 헷갈리는 구조와 불친절한 안내표시 등 기껏 찾아오는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은 건축이다. 결국, 사람들은 DDP만의 세계, 자하 하디드가 구상한 세계에 스스로를 맞추어 적응해 나가야 한다. 서울시는 과연 어떤 근거로 DDP를 ‘열린 문화 공간’이라며 칭송하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공공장소로서의 기능을 지닌 건물이라면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스스로를 낮추어야 한다. 그랬을 때 사람들은 점차 그곳을 찾게 되며 자신의 일상을 장소와 공유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주변을 돌아보지 않는 건축은 아무리 많은 볼거리를 제공해도 결국 한계를 보이고 말 것이다. 좋은 공공건물은 시민들의 하루하루를 함께하는 건물, 내일도 이곳을 찾아야지 하고 마음먹는 건물이다. 과연 지금의 DDP는 시민들에게 일상의 공간, 다음에 또 오리라 마음먹는 공간으로 다가오는 것인가.
앞으로 DDP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가.
DDP를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저 건물이 어떤 용도로 쓰이고 있는지 아느냐고 물어본다면 어떤 대답이 돌아올까. 전시회? 개최장? 문화공간? DDP의 쓰임새는 크게 컨벤션, 전시, 사무실, 쇼핑으로 나눌 수 있으며, 설립 목적 또한 시민들과 디자인 문화를 공유하는 장의 마련이다. 즉 DDP는 복합문화공간이면서 디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아갈 수 있는 장소인 것이다.
이를 이루기 위해 DDP에 투입된 자본은 사상 초유의 규모였다. 동대문운동장 공원화 계획이 처음 발표되었을 당시 사업비는 900억 원 정도였다. 그런데 자하 하디드의 안을 선정하면서 산출된 DDP의 건축비는 2,274억 원이었다. 설계를 본격적으로 진행하고 2번의 설계변경을 거치면서 기존의 공사비용은 3,364억 원, 4,089억 원, 4,392억 원으로 늘어났다. 여기에 운영준비 비용에 해당하는 628억 원까지 추가하면 DDP에는 총 4,84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된 셈이다. 5 6
현재 DDP는 어떤 상태인 것인가. 표면상으로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개관 이후 지금까지 20여 개의 디자인, 스포츠, 문화전 등 다양한 종류의 전시행사를 유치했으며, 통계상으로는 3달 만에 서울시민의 1/4 정도가 DDP를 방문하는 등 아직까지는 그 유명세의 효과를 톡톡히 보는 것 같다.
그러나 과연 이 추세를 언제까지 이어갈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지금 DDP에게 주어진 가장 큰 숙제는 100% 자립이다. 즉, 서울시의 지원 없이 스스로 경영해나갈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DDP는 이미 투입된 약 5,000억 원의 예산 외에도 매년 운영비로 300억 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7 결국, 지속적으로 자금 확보가 가능한 방법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 대가를 치르는 쪽은 다름 아닌 시민들이다.
이를 가장 극명히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은 바로 주차장 요금이다. DDP 주차장은 처음 10분은 무료이지만 그 이후로는 5분당 400원을 내야 한다. 결국, DDP에서 두어 시간을 보내면 만 원 정도를 고스란히 주차요금으로 지불해야 한다. 게다가 DDP 내의 상점이나 식당을 이용해도 아무런 할인조치를 취해주지 않는다. 이러다 보니 평일의 DDP 주차장은 한산한 편이다. 총 주차 구획은 355개지만 하루 평균 주차 대수는 370여 대 수준으로 한 구획당 차량 한 대를 받는 꼴이며, 주말에 하루 평균 820여 대로 늘어난다. 8 이는 DDP를 찾는 사람들에게도 물론이지만, 인근의 동대문시장 등을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도 불편함으로 작용한다. 바로 앞에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있음에도 비싼 가격 때문에 엄두도 못 내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아직 DDP는 개관한 지 얼마 안 된 건물이고 안정적으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취한 조치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렇지만 DDP 측에서는 아직 장기적인 운영 방안을 공개적으로 내놓지 못하고 있으며 전시회 유치에 많이 의존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언젠가는 DDP 운영을 위해 또다시 세금을 쏟아 부어야 할 때가 올 것이다. 건설에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었고 그를 유지하기 위해 또다시 시민들에게서 자금을 걷어 들이는 공공건축, 공공공간은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다.
어쨌든 DDP는 세워졌고 이제 우리는 DDP가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지금 DDP의 운영 방식은 자체적인 해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DDP가 성공적으로 자립하기 위해서는 주변 동대문 지역으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 동대문 일대는 서울에서 가장 유명한 상권 지역이며 24시간 인파가 끊이지 않고 패션 산업으로도 널리 알려진 곳이다. 이런 이점에도 불구하고 현재 공실에 시달리는 상가들이 다수 존재하며 창신동을 비롯한 인근 패션 제조 산업단지 역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9
패션과 같은 디자인 산업은 보통 디자인 - 제조 - 유통의 단계를 거치는데 동대문 상권은 그동안 ‘유통’에 많이 집중되었고 상대적으로 제조업 부문은 많이 열약했다. 그러나 제조 과정 없이는 시중에 뛰어난 디자인의 제품이 나올 수 없다. 10 이제는 유통 못지않게 제조 단계에도 많이 관심을 가져야 하며 DDP는 그 시작점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DDP에서 벌어들인 수입 일부를 매달 제조업계에 지원금으로 내놓고 나아가서는 그들에게 작업환경이나 전시공간을 제공하는 것은 어떨까. 제조업계에서는 예전보다 안정적으로 작업에 임할 수 있고 이들의 뛰어난 제품들이 동대문 시장에 유통되면서 더욱 많은 사람들이 동대문 지역, 그리고 DDP를 찾는 효과를 일으킬 것이다. 잘만 이루어진다면 DDP를 포함한 동대문 일대 전체가 부흥하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림 7 ▲ DDP와 주변 도시, 그 사이를 오가는 사람들: DDP가 당당히 서있기 위해서는 도시와 공존하는 방법, 시민들과 같이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나가야 할 것이다.
또한 젊은 예술가나 디자이너, 대학생들에게도 길을 열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꼭 패션과 관련된 디자인이 아니더라도 상관없다. DDP의 설립 목적이 무엇인가. 시민들과 디자인 문화를 공유하는 장의 마련 아니던가. 그렇다면 당연히 우리나라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고 만들어가는 사람들에게도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디자이너, 특히 막 사회에 뛰어든 분들은 뛰어난 재능과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작업을 할 공간이 마땅치 않아 고생하고 있다. DDP는 전시관이나 사무실의 사용료, 임대료를 낮추어주는 조건으로 그들을 불러 모아 마음껏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디자이너들은 DDP에서 일하며 자신들의 작품을 전시할 것이고 매번 새로운 볼거리가 생기는 것이니 사람들 또한 관심을 갖고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할 것이다. 디자이너들 사이에서도 DDP는 자신들을 배려하는 공간, 꿈을 마음껏 실현할 수 있는 장소로 입소문을 탈 것이다. DDP 역시 장기적인 입장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수입원을 얻는 셈이다. 그러다 보면 DDP는 어느덧 기발하고 새로운 디자인들이 탄생하는 공간이자 진정 사람들과 디자인 문화를 공유하는 장소로써 한층 더 성장할 것이다.
지금 제시한 방법들이 손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클 것이다. 그러나 DDP는 홀로 살아남을 수 없다. 지금처럼 자체적으로 경영을 추구하는 방식은 단기적으로는 수입을 올리는 것처럼 보여도 얼마 지나지 않아 한계에 부딪힐 것이다. 서울시는 DDP가 1년 안에 자립한다는 무리한 목표를 세울 것이 아니라 일부 손해를 인정하더라도 주변 지역과 같이 상생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그것이 오히려 DDP가 성공하는 방법이다. DDP가 주변의 여러 도시, 사회적 요소들과 같이 성공하고자 하는 자세를 지녔을 때 10년, 20년이 지나도 시민들의 꾸준한 관심을 받으며 점차 손해를 딛고 당당히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DDP, 실패가 아니길 바라며.
DDP가 수많은 논란에 휩싸인 이유는 결국 ‘성급함’ 때문이다. 그저 서울의 중심부에 세계적인 건축가가 디자인한 건물을 하루빨리 세워야겠다는 의욕만 앞선 나머지 정확한 목표 수립도 체계적인 지역 분석도 제대로 이루어진 것이 없다. 왜 자하 하디드를 뽑았는지, 어떤 과정을 통해 DDP가 만들어졌는지, 앞으로의 구체적 운영 방안은 무엇인지 등 많은 정보가 현재 불투명한 것 11 역시 DDP 계획 당시 무작정 사업을 추진하기에 급급했던 서울시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정작 이런 종류의 대규모 공공건물은 충분한 시간을 두고 의논하면서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고, 시민들의 의견도 계속 경청하면서 설계와 운영 방안을 결정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말이다. 서울시는 제대로 된 고민 없이, 시민들의 의견도 물어보지 않고 성급히 DDP 사업을 추진했던 점에 대해서 반드시 반성해야 할 것이다.
어쨌든 DDP는 탄생했고, 이를 함부로 무너뜨릴 수도 없다. 그렇다면 이제는 앞으로 DDP를 어떤 모습으로 가꾸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물론 DDP는 충분한 고민이 이루어지지 않은 건물이다. 하지만 DDP는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다. 그 힘이 없었다면 서울시민의 1/4에 달하는 숫자의 사람들이 DDP를 찾지 않았을 것이며, 보도자료 역시 DDP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내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이 힘을 잘 활용하면 DDP뿐만 아니라 동대문 지역이 한 단계 더 성장하는 기회가 될 것이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어디까지나 엄청난 자금을 들인 서울시의 ‘전시행정’격 건물일 뿐이다.
DDP에 주어진 숙제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어떻게 이 지역의 역사성을 일부나마 회복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성곽과 기타 유물, 유적들을 한쪽으로 밀어버리면 시간이 흘렀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동대문운동장에 얽힌 기억들과 가치 있는 문화유산에 대해 떠올릴 수 있을까. 비록 DDP 내 광장에 일부 유적 터가 남아있다지만 이로는 부족할 것이다. DDP는 전시회나 자체적인 문화행사 등을 계획해서라도 동대문 일대가 지닌 역사를 사람들에게 계속 이야기해주어야 할 것이다. 조선 시대에서부터 근현대사를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와 이야기야말로 이 지역이 지닌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앞으로 어떻게 주변과 더불어 살아가느냐이다. 동대문 지역에서 DDP의 역할은 결국 단순한 전시장이 아닌,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고 새로운 가능성을 창조하는 촉매제 역할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DDP의 태도, 주변 도시공간을 무시하고 동대문 상권과 공존하려 하지 않는 태도는 DDP뿐만 아니라 동대문 일대에도 피해만 될 뿐이다. 뛰어난 기술력과 미적 감각으로 무장한 건물이 결코 그 지역의 성공을 불러오는 것은 아니다. 지역산업과 도시재생에 기여하고자 하는 방법을 진지하게 고민했을 때 DDP 역시 그 가치를 인정받을 것이다.
DDP에 대해서 생각하는 바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변하지 않을 사실이 하나 있다. 바로 DDP는 자하 하디드의 자부심이나 관료들의 업적을 위한 것이 아니라 시민들을 위한 공공건물이라는 점이다. DDP는 서울시와 시민들이 관심을 갖고 만들어나갈 문화공간이며 동대문의 부흥에 이바지할 시작점으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 이를 잊지 않았을 때 비로소 DDP의 가능성이 빛을 발하기 시작하며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건물이 될 것이다. 비록 시작부터 수많은 논란과 비평에 휩싸였지만, 앞으로 DDP가 보여줄 모습, 진정으로 도시와 더불어 살아가려는 모습에 희망을 걸어보고자 한다.
그림 8 ▲ DDP 안으로: 지하철역에서 DDP로 들어서는 모습. 수많은 사람들이 DDP를 찾아오고 있고, 앞으로도 그러리라 믿고 싶다. 이제는 DDP를 우리의 소중한 자산으로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 정석,「나는 튀는 도시보다 참한 도시가 좋다」, 효형출판, 2013, 122 ~ 130쪽. [본문으로]
- 김경민,「오세훈의 전시행정이 낳은 비극, 동대문디자인플라자」,『프레시안』, 2013.10.16. ,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7380 [본문으로]
- 유제훈,「DDP, 개관 100일만에 서울시민 4명 중 1명 찾았다」,『아시아경제』, 2014.06.29. http://view.asiae.co.kr/news/view.htm?idxno=2014062910393064507 [본문으로]
- 정용인, 「[특집|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논란] 박원순 시장 DDP서 길을 잃다?」, 『주간경향』, 2014.04.15. ,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5&artid=201404082056461&pt=nv [본문으로]
- 전상봉,「5천억 들인 오세훈 작품 괴이하다」,『오마이뉴스』, 2014.03.18.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70002 [본문으로]
- 서울시의 1년 예산은 약 20조원 정도이다. [본문으로]
- 정용인, 앞의 글. [본문으로]
- 황인찬,「“주차비 무서워 DDP 쫓기듯 구경” 불만 폭주」,『동아일보』, 2014.07.10. , http://news.donga.com/3/all/20140710/65071438/1 [본문으로]
- 김경민,「동대문디자인플라자, 개관 이후가 더 걱정」,『프레시안』, 2014.03.21. ,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15625 [본문으로]
- 김경민,「봉제 공장 외면한 '甲' 동대문, 나홀로 생존 가능할까?」,『프레시안』, 2013.09.18. ,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7295 [본문으로]
- 정용인, 앞의 글.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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