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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호

[49호] 세월호, 윤 일병, 그리고 한국사회 - 13 정우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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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415, 꿈 많은 고등학생들의 추억을 실은 배 한 척이 인천항을 떠났다. 그 많은 고등학생들 중에는 자는 친구에게 무슨 장난을 할까 짓궂은 장난을 궁리하는 학생도 있었을 것이고, 제주도에 가서 부모님께 사다 드릴 기념품을 고민하는 학생들도 있었으리라. 고등학생뿐이랴. 은퇴를 바라보는 장년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추억을 나누고자 하는 두터운 우정도 있었을 것이고, 제주도로 이사 가며 새로운 삶의 그림을 그리는 부풀은 가족의 꿈도 있었으리라. 그렇게 수백 명의 꿈은 다음 날 아침 차디찬 진도 앞바다에 허망하게 갇히고 말았다. 살아남은 자, 돌아오지 못한 자 가릴 것 없이.

세기말적 참사에 전 국민은 슬픔에 잠겼다. 안산 희생자 합동 분향소에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줄이 늘어서기도 했고, 많은 곳에서 애도의 뜻으로 행사를 취소하기도 했다. 망망대해도 아닌 진도 앞바다에서 너무도 허망하게 떠나보낸 이들에게 살아있는 사람들은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미안함은 곧 분노가 되었다. 책임을 유기한 선장과 선원에게 분노가 쏟아졌다. 선장과 선원은 얼마 지나지 않아 구속되었고, 안전장치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 직무를 유기했던 청해진해운과 공금을 횡령한 유병언 일가에겐 압수수색과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다.

두 달여가 지났다. 선장과 선원의 사법처리는 거의 끝나간다. 유병언 일가 역시 두 달 만에 모두 검거되었다. 시신으로 발견된 유병언의 의문사 사건 역시 종결처리 되었고, 어느 정도 정리되어 가고 있는 듯 보인다. 그렇게 세월호 침몰사고는 점점 잊혀져가고 있다.

 

S#2

참사의 여운이 진정되기도 전에, 또다시 국민들의 공분을 살 만한 대형 사고가 터졌다. 28사단 윤 일병 구타살해 사건. 윤 일병 역시 사회에서, 대학에서, 가정에서 모두 사랑받고 소중한 우리의 친구 혹은 아들이었을 것이다. 한창 하고 싶을 것이 많을 나이, 스물 둘의 꿈 많은 젊은이 역시 전역 후 자신의 미래를 그리며 입대를 신청했으리라. 하지만 그 꿈 많은 젊은이 역시 그 꿈을 다 피지 못하고 비뚤어진 군홧발에 짓밟혀 버렸다.

가해자들은 인면수심이었고, 군대에 친구와 자식들을 보낸 국민들은 공분을 터뜨렸다. 분노한 시민들은 군사 법원 앞에 몰려가 항의했고, 가해 병사들에게 사형을 집행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국방부와 군의 수장들이 줄줄이 옷을 벗었고 국방부는 대국민사과까지 했다. 부랴부랴 개선 시책이 발표되었고, 가해 병사들에겐 결국 살인죄가 적용되었고 재판만을 앞두고 있다. 이 사건 역시 점점 정리되어 가고 있는 듯 보인다.

 


 

위 사건들은 2014년 상반기 대한민국의 이슈 중심에 서 있던 거대한 사건들이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참사에 대한민국 사회 전체가 큰 충격을 받았다. 끔찍한 참사 이후에도 살아있는 사람들은 또다시 슬픔을 딛고 살아나가야 한다. 참사를 딛고 다시 일상의 삶을 살고자 하는 지금 우리 사회. 우리 사회가 참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를 극복해나가야 할지, 고민해 보고자 한다.

흔히들 이런 천인공노할 사건, 끔찍한 참사가 일어나면 사람들은 혼란을 겪기 마련이다. 자신이 그곳에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피해자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자신 역시 그런 일을 당할 수 있고 그곳에 있었을 때 안전할 수 없었다는 생각에까지 다다르면 이는 분노로 이어진다. 자신의 안전이 보장받을 수 없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무력감, 피해자가 느꼈을 공포감과 두려움까지 공감되면 이것은 나 역시 이런 일을 당할 수 있다는 내 앞에 당면하는 문제로 여겨지게 된다. 이로 인한 분노는 어떤 의미로든 사회의 거대한 에너지가 된다.

사람들의 분노로 모인 거대한 에너지는 어떤 방향으로든 사회에 대한 요구, 더 나아가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으로 나아갈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분노가 모인 탓에 뜻이 하나로 모아지기 쉽지 않다. 특히나 세월호 참사와 같은 거대한 참사라면 사회 전체가 혼란에 빠져 있기 때문에, 자신의 안전을 위해 사회를 변화시켜야 할 방향을 잡기란 쉽지가 않다. 이럴 때 이 거대한 에너지가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목표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그 사건의 일선에 서 있던 원흉들이다.

머리가 좋은 애들은 알아서 잘 빠져나왔다.’는 세월호의 선원들이나, 적반하장 식으로 나오는 윤 일병 가해자들의 가족들을 보며 그들에 대한 분노를 삭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금수만도 못한 이들이라며 손가락질하고 그들에게 피해자들이 당했던 만큼 똑같이 되갚아줘도 시원찮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분노의 에너지는 더더욱 가해자들에게 가하는 처절한 복수로 귀결되곤 한다. 당장 지금부터도 뉴스 댓글 창을 보면 세월호의 선원들과 윤 일병 폭행 가해자들에게 사형을 시켜야 한다든지 처절한 복수를 원하는 댓글들로 가득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은 모두 검거되었고 법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어느 정도 인면수심의 가해자들에게 일벌백계가 들어가는 듯 하니 사람들은 서서히 이 참사들을 잊어간다. 과연 이것으로 참사는 종결된 것일까? 사건을 일으켰던 가해자만 처벌하고 사회적으로 조리돌림 한다고 해서 정의가 바로 설 수 있을까? 가해자들에게 본보기를 보였으니,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다는 것은 역사가 이미 증명하고 있다. 불과 20년 전 서해에서 페리호가 침몰했고 군부대 내무 부조리로 해병대 총기 난사가 일어난 지는 불과 3년 전이다. 굳이 멀리 갈 것 없이도 생때같은 대학생들을 리조트 붕괴 참사로 떠나보낸 지가 6개월 전이며, 최전방 GOP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난 지 4개월이다. 굳이 나열하지 않아도 무수한 대형 참사와 군부대 내 가혹행위로 인한 사고들은 20세기에도, 그리고 21세기가 된 지금까지도 끊이지 않아 왔다.

윤 일병 사건 가해자들이 사회에서 어땠는지 보아도 알 수 있다. 흔히 이런 사건이 일어나면 전과자와 같은 흉악한 사람들이거나 사회 부적응자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사회에서 별다른 탈 없이 살아온 사람들이다. 조금만 더 시야를 넓혀 본다면 이 사건 이후 우후죽순으로 발각된 군부대 내무 부조리 범죄에서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아들까지 연루되었다. 과연 이들이 본디 사회에서도 사악했던 사회의 암 덩어리였던 것인가?

우리는 모두 사회라는 하나의 구조 속에서 산다. 모두 이 구조 속에서 벗어나 살 수는 없다. 이 구조 속에서 우리는 은연중에 그 구조의 영향을 받는다. 흔히 범죄율을 사회의 지표로 보듯이, 그런 천인공노할 범죄 역시 우리가 부정할지라도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이면에서 일어난 현상이다. 이런 현상이 자주, 그리고 크게 터진다면 이것은 단순한 한 개인의 악함으로 일어난다고 볼 수 없다. 그런 악한 개인들이 왜 이 사회 속에서 끊임없이 재생산되는지 고민해보아야 한다. 군대의 어떤 구조가 사회에서는 별 탈 없던 윤 일병 가해 병사들을 악마로 만드는데 일조했는지, 세월호 참사가 세월호의 선원뿐 아니라 국가 재난 구조 시스템에서 미비한 점은 없었는지, 이면에 숨겨진 유착관계가 안전문제를 야기하지는 않았는지 고민하고 면밀히 밝혀내야 한다. 그런 구조의 고리를 끊어내는 노력 없이 한 개인을 엄벌하는 것에만 그친다면 악마는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사고는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한국 사회는 이슈 회전이 빠르다. 이슈 하나가 오랜 시간 동안 꾸준한 관심을 받는 일이 굉장히 드물다. 굵직한 이슈 하나가 터지면 굉장한 파급력을 가지며 다른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지만 반대로 다른 이슈가 터지면 그쪽으로 관심이 집중되고 지난 이슈는 잊히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냉철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 안 그래도 이슈 회전이 빠른 사회에서 참사를 그저 가해자에 대한 분노로만 소비해 버리고 다른 이슈로 옮아간다면, 참사에 대한 근본적 대안 없이 참사를 소비하는데 그치는 셈이다. 이런 식으로 참사를 소비하는데 그친다면 참사는 반복되고 그로 인한 가해자에 대한 분노의 반복에 그치고 말 것이다. 아무리 인면수심의 범죄를 보더라도, 이성적으로 고민하며 범죄 이면에 숨겨진 우리 사회 근본의 구조적 문제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물론 범죄에 대한 분노, 그리고 범죄자에 대한 엄벌 역시 중요하다. 하지만 거기까지에 그친다면 이런 범죄와 참사의 근본적 대책은 되지 못할 것이다. 근본적 구조의 문제까지 파헤치지 못한다면 사회는 더는 진보할 수 없다. 올해 두 차례의 큰 참사를 겪었다. 우리 사회 전반의 큰 위기를 겪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위기를 극복하는 방식이 단순한 분노의 소비로만 이뤄지지 않았으면 한다. 그 이면에 숨겨진 근본적 원인, 구조적 원인까지 고민할 때 비로소 분노로 만들어졌던 사회를 바꾸는 에너지가 비로소 위기를 넘어 건강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게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