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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호

[49호] 도시 서울의 시공간적 탐구 (『서울은 깊다』, 전우용) - 14 황의현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은 순우리말이라는 점에서 큰 특징을 가진다. 조선 시대 때부터 사용되었던 장안’, ‘한양등의 말이 있지만 우리는 서울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 책[각주:1]의 저자는 서울의 의미가 신시(神市)에서 유래되었다고 말한다. 우리 민족은 종교적인 구심점을 갖지 못한 단일 민족이지만 옛날부터 왕의 통치하에 나라가 이루어졌다. , 서울은 왕의 도시로 왕의 권력이 직접 닿는 지역을 뜻한다. 왕을 중심으로 모든 정보와 물품들이 모이는 중심의 역할을 하는 서울이라는 도시에는 과거의 정신과 흔적들이 아직도 담겨있다. 

   하지만 현대의 서울은 디자인 서울’, ‘문화도시를 지향하고 있는 하나의 상품이 되었다. 더 많은 관광객을 모으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수도로서의 과시를 위해 무분별한 개발을 하고 있다. 요즘에서야 역사와 문화의 가치를 인정하고 많이 홍보하면서 보존하려는 노력이 보인다. 하지만 이런 역사의 대중화는 역사의 상품화를 포장한 의미일 뿐이다. 억지로 지역과 상징물에 역사적 의미를 부여한 것에서 과거의 감동을 느낄 수 있을까? 한반도의 역사를 담고 있는 서울이라는 그릇을 통해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조상들의 생각과 문화를 느껴보자.

   오늘날 압구정은 인구와 자본이 많이 모이는 장소이다. 신흥 부자들이 많이 모이는 강남의 압구정에는 그들만의 자부심이 대단하다. 현대의 압구정은 지역을 뜻하지만, 초기의 압구정(鴨鷗亭)은 한자 뜻 그대로 정자였다. 조선시대 초기인 15세기에 왕이나 왕족이 지은 누정(樓亭)이 한강 변에 많이 존재했다. 세력가들이 풍경을 구경하면서 즐기는 장소로써 사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기우제를 지내거나 중국 사신을 접대 하는 장소로도 사용되었다. 수양대군을 도와 반란을 성공적으로 이끈 일등공신이 한명회가 지은 정자가 바로 압구정이다. 하지만 한명회는 왕족이 아님에도 압구정을 짓고 중국 사신들을 대접하였다고 하여 세조의 신뢰를 잃었다.

   종로는 서울이 수도가 된 이후로 서울의 공간적 중심이었다. 종로에 위치한 보신각을 해석하면 황제가 지정한 중앙, 또는 황도(皇都)의 중심이 된다. 하지만 전차가 사라지고 다른 지역으로의 교통이 발달되어 종로의 위상은 낮아졌다. 명동, 충무로, 영동 등으로 핵심기구나 인구가 옮겨갔지만, 종로는 과거의 흔적이 가장 잘 남아있는 지역 중 하나가 되었다. 종로의 골목길은 구불구불하고 막다른 길이 있는 좁은 길이다. 도시 발달에 있어서는 골치 아픈 길이지만 이런 골목길에도 과거의 흔적이 남아있다. 처음 길을 만들 때 평탄하고 곧게 만들었겠지만, 사람들이 살면서 어그러진 골목길이 생겼다. 사람들의 손길이 만든 길이 바로 이런 골목길이다. 종로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길인 것이다.

   역사에는 불국사, 첨성대, 경복궁, 종묘 등과 같이 그 의미 자체가 중요하고 자부심을 가져야 할 상징물이 있다. 그 외에도 임진왜란, 병자호란, 병인양요 등과 같이 잊어서는 안 되는 사건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교과서에서 배우는 역사가 다는 아니다. 과거에 있었던 모든 일의 자취는 역사가 될 수 있다. 역사 지식을 암기하는데 익숙한 우리들에게 일상생활에 녹아있는 역사를 알아보는 것은 역사에 대한 거부감을 줄일 수 있고 더 주변의 사물에 애착을 가질 수 있게 해줄 것이다.

   하지만 과연 최근의 개발들이 이런 역사를 존중하고 있을까? 오히려 유구한 역사와 전통문화에 맥이 닿아 있는 품격 있는 문화도시를 꿈꾸고 있는 디자인 서울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계획이라고 생각한다. 깔끔하고 디자인적으로 흥미를 주는 개발은 외국인 유치에 힘을 쓰는 행동일 뿐이다. 진정으로 역사와 전통문화를 잇는 도시가 되려면 지역의 본래 특징을 알아야 하고 조상들과 시간이 만든 자연스러움을 존중해야 한다. 압구정을 성형외과와 쇼핑의 거리로 만들어 사람들을 모으는 방법 또한 이해하지만 한강 변에 정자를 세워 압구정의 역사와 경치를 함께 즐기게 하는 방법도 있다. 골목길을 통행하는 데는 불편하겠지만, 천천히 가면서 주변의 풍경도 자세히 볼 수 있게 해주는 매력이 있을 것이다.




  1. 전우용, 『서울은 깊다』 (돌베개, 2008)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