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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호

[51호] [특집] 장강명 작가님 인터뷰 - 13 정우민, 15 이소정, 16 현승환, 16 황영현



건설사 신입사원, 신문기자를 거쳐 소설가까지. 연세대 도시공학과 94학번인 장강명 작가님은 등단과 함께 문단의 호평을 받아온 작가다. 등단 이후로도 수림문학상, 4·3문학상 등 문학계의 굵직한 상들을 수상하며 화제의 중심에 서 있다.

‘표백’, ‘한국이 싫어서’ 등 작가님의 작품에는 우리의 사회가 사실적이고 섬세하게 우리 주변의 일처럼 담겨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고민하고 방황하는 20대의 모습이 오롯이 녹아있다. 작가님께서는 소설가가 되기까지 어떤 길을 걸어오셨는지, 앞으로 이 사회를 헤쳐 나갈 후배들에게 어떤 말씀을 해 주고 싶으실지 궁금했다. 8월 16일 신도림의 한 카페에서 U410이 장강명 작가님을 만났다.


Q. 대학 시절 <클론 프로젝트>라는 소설을 출판하시고, 월간 SF 웹진을 창간하셨습니다. 어떻게 하시게 되었나요?

A. <클론 프로젝트>는 제가 96년 1월에 입대하기 전에 쓰고 여러 출판사에 원고를 보냈는데 동아일보사 출판부에서 연락이 와 출판하게 된 소설입니다. 당시 퇴마록 같은 PC통신 연재소설들이 큰 성공을 거두어서 출판사들이 PC통신 연재소설을 언제라도 출판하고 싶어 했어요.

월간 SF 웹진은 PC통신이 웹으로 넘어가면서 창간하게 되었습니다. PC통신 문화는 지금의 인터넷 문화와는 조금 달랐어요. 월 1만 원 이상은 지불해야 했기 때문에, 사용하는 층도 얼리어답터들이고 20대~40대의 비교적 교육을 잘 받은 사람들이 모여서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랬습니다. 제가 대학교 1학년 때 PC통신이 대중화되었는데,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만나는 것이 대학생이 막 되던 시기에 자유분방해진 것과 맞물리면서 해방감을 느꼈죠. 이후에 PC통신이 웹으로 넘어가면서 존속되지 못하고 무너지더라고요. 그때 PC통신 SF동호회 분위기가 좋았으니까 웹에서도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웹진을 만들었죠.


 

96년 군 복무중 출판한 <클론 프로젝트>.


Q. 도시공학과를 졸업하신 후 건설사에 취직, 기자, 소설가로 변신하셨습니다.

기자가 되고 싶었던 건 군대에 있을 때입니다. 적성에 맞을 것 같았고, 세상을 치열하게 살고 싶었습니다. 제대 후 4학년 때 기자시험을 많이 쳤는데 면접에서 계속 떨어졌어요. 그러다가 언론사 원서 넣으면서 함께 원서를 넣었던 건설사에 취직이 됐죠.

그런데 다섯 달쯤 지나니까 기자 시험을 한 번만 더 쳐보고 싶은 거예요. 건설사에 사표를 내고 집에서 나와 6개월간 신촌 근처 고시원에서 살았어요. 아침에는 홍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에는 중도에서 언론고시를 준비해서 동아일보에 들어갔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사표를 쓰고 기자 시험을 치기로 했던 결정이 결과적으로 제 인생을 많이 바꾼 것 같아요. 그 경험을 하지 못했다면 동아일보도 그만두지 못했을지도 모르지요.

동아일보를 11년 다녔습니다. 기자 생활에 조금씩 지쳐갔고, 이번에는 소설가가 되고 싶었어요. 일하면서 틈틈이 쓴 <표백>으로 2011년에 한겨레문학상을 통해 등단은 했는데, 회사 일과 소설 쓰기를 병행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회사에 화나는 일이 생겨서 울컥하고 사표를 썼어요. 신문사에서는 그렇게 울컥해서 사표 내고 한 일주일 출근 안 하다가 머쓱해져서 다시 회사 나오는 사람들이 간혹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끝까지 복직하지 않았어요. 기자를 그만두는 것은 마치 태풍이 불듯 자연재해처럼 찾아왔습니다.


Q. 기자를 그만두시고 소설가가 되셨을 때 어려움은 없었나요?

A. 제가 동아일보를 그만둔 게 2013년 9월이었는데, 그때 아내와 약속을 했어요. 1년 3개월 동안 소설가로 성공하지 못한다면, 재취업을 해서 뭐라도 생활비를 벌어오기로. 사실 회사를 그만두고 11개월간 아무런 수입도 없는 사이 여러 번의 재취업 기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부 거절했어요. 제가 1년 3개월을 인생에서 뭘 하기로 결심했는데 아직 그 시간이 남았고, 사표 내고 아무것도 못 하다가 재취업하면 비웃음거리가 될 것 같았거든요.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만약 재취업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그 이후에는 소설을 쓸 수 없었을 것이고 여기 있지도 않았겠죠.

그렇게 11개월째 되었을 때 수림문학상에 당선이 되었어요.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게 되었으니 소설을 더 쓸 수 있게 되었죠. 그러다 2015년이 되니까 갑자기 문학상 두 개를 연달아 타고, <한국이 싫어서>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순식간에 이렇게 되었습니다.

{출처: 연합뉴스)

말씀드리기가 쑥스러워요. 많은 분들이 회사 다니다가 나의 진정한 진로를 찾기 위해 박차고 나왔다는 식으로 좋게 오해를 하십니다. 저는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고, 운이 좋았던 거라고 생각합니다.


Q.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꾸준히 서평을 올리고 계십니다. 카카오톡에서 주최하는 하트펀딩에도 참여하고 계신데, SNS를 통한 소통을 많이 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A. 제가 SNS를 열심히 하지는 않고요, 책 후기만 올리고 있는데 처음에는 소위 말하는 ‘영업용’으로 시작했습니다. 개인적인 홍보 채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딱히 올릴 내용은 없고 해서 2~3일에 한 번씩 읽은 책에 대해 짧게 감상을 올리기 시작했어요. 요즘은 출판계에서도 북 콘서트처럼 독자와 작가가 소통하는 마케팅을 중시하는 분위기입니다.

카카오에서 새로 나온 하트 펀딩은 동아일보에서 친했던 후배가 카카오로 이직한 다음 아이디어를 제안해 왔습니다. 몇 번 만나 함께 회의하면서 틀을 갖추고 시작하게 됐습니다. 종이책 시장이 축소되는 가운데 콘텐츠 업계에서 이런저런 실험이나 시도들이 나오고 있어요. 웹 소설 등 다양한 플랫폼들이 많이 나오면서 출판계에서 수익을 올리는 방식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카카오에 유입되는 사람들은 종이책을 읽던 사람들이 아닌 휴대폰에 최적화된 사람들입니다. 흥미롭기도 했고, 카카오로부터의 수입도 생기는 것이니까 해 보았어요. 출판업계의 실험 자체에는 흥미가 많지만, 저 자신은 성격이 좀 내성적이어서 SNS도 안 하고, 모바일 연재도 안 하고, 단행본 형태로 책만 내고 인터뷰도 안 하고 숨어서 지내는 게 이상향입니다.


Q. 소설가로서 직업정신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기본적으로 제가 먹고사는 문제에서 떨어져서 엄청 고상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안 들더라고요. 돈을 버는 방식이 바뀐다면 저도 그에 적응해야죠. 시장의 흐름을 놓치고 싶지 않고, 그 감각을 잃고 싶지 않습니다.

출판사에서 책을 내면 그것은 저만의 책이 아닙니다. 이 책이 팔려야 출판사의 편집자 월급이 나오고, 마케터, 인쇄소 직원, 서점 직원의 월급이 나와요. 그런데도 책 파는 것은 출판사에만 맡기고 저는 초야에 묻혀 살겠다고 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 같아요. 그게 제 이상향이어도 말이죠. 저자 마케팅에 크게 의존하는 출판업계에서 저자가 나서는 것만큼 큰 마케팅이 없거든요. 새로운 책을 내면 인터뷰나 라디오 출연 요청 등이 오는데 가능하면 응하려고 노력합니다. 저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돈벌이, 밥벌이에 대한 이런 자세는 직장인으로 십 년 넘게 살았기 때문에 체득한 것 같습니다. 제가 자랑스러워하는 저의 정체성 중 하나예요.


 

스톱워치를 켜고 소설을 집필중인 장강명 작가 (출처: 한국기자협회)


Q. 스톱워치를 켜고 시간을 재가면서 소설을 쓰신다고 들었습니다.

A. 스톱워치를 켜고 시간을 재가면서 소설을 쓰는 이유는 스스로 규율을 만들기 위해서예요. 회사를 나오고 나니 주위에 보는 눈이 없으니까 나태해질 것이 걱정되었거든요. 그래서 하루에 소설을 쓰는 시간을 정했습니다. 어떤 날은 밖에 나가야 하는 날도 있으니까 1년 총합을 정하고 매일 스톱워치로 시간을 재서 엑셀에 기록하고 있어요. 한국인 근로자 평균 근로시간이 1년에 2100시간보다 조금 더 많더라고요. 그건 넘겨야겠다 싶어서 2200시간으로 정했습니다. 효과가 좋아서 앞으로도 계속하려고 합니다.



Q. 인터뷰 전 작가님의 소설을 읽었습니다. 대부분 20대를 통해 주제의식을 풀어내시고 계신데요, 20대 주인공의 행동이나 심리 묘사가 20대인 저도 공감할 정도로 매우 섬세해서 놀랐습니다. 20대에 대한 (세대 담론과 같은) 작가님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A. 제가 철이 늦게 들어서 그럴 거예요. (웃음) 제가 고민하고 있는 것은 지금 20대가 고민하는 것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쓴 소설들의 주제는 모두 “어떻게 살아야 되지?”라는 질문으로 이어져 있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제가 그것을 끊임없이 궁금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지금의 20대가 저희 세대와는 달리 그 고민을 강하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의미 있는 삶을 원하죠. 나의 공동체가 더 나은 곳으로 발전했으면 좋겠고, 그 속에서 개인의 안위도 찾고자 하는 소망이 20대에게 항상 있습니다. 예전에는 사회에서 내려주는 답이 있었어요. 산업화나 민주화라는 거시적인 답도 있었고, 명문대 진학 후 좋은 직장을 얻어서 열심히 일하면 집이 생긴다는 소소한 답도 있었어요.

그 답이 어느 순간 사라진 겁니다. 이제는 산업화와 민주화도 가시적으로 어느 수준으로는 이루었죠. 직장을 얻어서 열심히 일한다 하더라도 집 한 채 장만하는 게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지? 아무도 답을 주지 않아요. 한국 사회가 나아갈 방향도, 내가 나아갈 방향도 모르겠는 거예요.

<표백>이나 <한국이 싫어서>에서도 어떻게 살지 모르겠어서 우왕좌왕하는 20대가 나오죠. 그리고 이들은 소설이 끝날 때 적어도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는 아는 인간이 되어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20대 독자들이 공감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한편으로는 좋게 볼 국면도 있어요. 대한민국 사회가 주던 이전까지의 답은 모두 글로벌한 수준의 문제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었어요. 산업화도, 민주화도, 유럽이나 미국을 열심히 따라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여러분이 하는 고민은 유럽과 미국에서도 하는 고민이에요. 거기도 중산층이 몰락해서 신규로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젊은이들이 대우를 잘 받지 못하거든요. 제가 <한국이 싫어서>를 쓰고 나니까 프랑스 언론에서 인터뷰 요청이 왔어요. 프랑스 청년들이 일자리가 없어서 해외로 나가려고 하는데, 한국 작가로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더군요.


Q. 프랑스에서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니 놀랍네요.

A. 역으로 생각하자면, 여러분은 앞선 세대와 달리 처음으로 다른 나라에 답을 제시할 수 있는 질문을 받은 거예요. 새로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들이 선배 세대보다 좋지 않은 일자리를 가져야 하는 상황, 이건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죠. 지속 가능할 것 같지도 않아요. 이 스트레스가 조금씩 쌓이면 사회가 감당하지 못할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한 답을 찾아낸다면 그 답이 곧바로 미국에서도 답이 되고 프랑스에서도 답이 될 수 있을 겁니다. 그 답이 무엇일지는 저도 잘 몰라요. 저도 고민하는 중이죠. 어쩌면 힘들지만 의미 있는 사명을 받은 건지도 모릅니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어요. 우리가 다른 나라보다 앞선 인터넷 댓글 문화에서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 세대에서 표현의 자유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부작용이 없는 댓글 문화를 만드는 규제나 합의를 만들어 낸다면, 그것이 다른 나라에도 모범이 되고 적용될 수 있겠죠. 마치 우리가 적용하고 있는 민주주의를 18세기 즈음에 미국과 유럽의 철학자들이 고안한 것처럼 말이죠.


Q. 도시공학과 후배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

A. 연대가 학풍이 참 좋습니다. 학교를 졸업하니까 더 알겠더라고요. 학교를 사랑하고, 잘 즐기시기 바랍니다. 캠퍼스도 예쁘고, 위치도 좋고, 애정을 가지고 다닐 수 있는 학교에요. 확실히 자유로운 분위기도 있고요. 대학 시절은 다시 오지 않는데 대학 시절에만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열심히 후회 없는 대학생활 보내시길 바랍니다. 너무 뻔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진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