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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호

[51호] 나에 대한 반성의 글 - 16 도승우

나는 21살 연세대학교 도시공학과 1학년이다. 나이에서 말해주듯 재수를 해 대학교에 들어왔다. 내가 목표로 했던 대학에 왔으니 나의 재수는 성공한 셈이다. 내가 재수하는 일 년 동안 마음 졸이며 나를 믿어 주었던 가족들은 이젠 모두 나를 자랑스러워한다. 장하다 고생했다.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해냈다며 내가 뭐라도 된 것처럼 자아도취에 절어 있었다. 나는 내가 부끄럽다.  


사실 그동안 나는 너무나 편안하게 삶을 살아왔던 것 같다. 그래 보았자 아직 21살 사실 이런 말을 하기도 참으로 부끄러운 나이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21살 인생은 그 누구보다 편안한 삶이었고 그래서 더욱 나는 내가 부끄럽다.


나의 부모님은 어려서부터 내가 원하는 것은 모두 해주셨다. 우리 집이 부잣집이라는 것은 아니다. 형편에 맞게 하지만 부모님은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당연하단 듯 해주셨다. 그래서 나도 그게 당연한 줄 알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다 하며 살아왔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노력하면 된다 생각하며 살아왔다. 노력하면 된다. 물론 좋은 말이다. 내 좌우명이기도 하다. 재수에 성공한 내가 딱 그 상황이라며 좋아했었다. 하지만 나에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는 알게 되었다. 나는 지금 내가 만들어왔던 나의 자존감이 수치스럽고 그걸 벅벅 찢어 버리고 싶을 정도로 내 하찮은 자존감을 부정한다. 나는 내가 부끄럽다.


나는 달에 300만 원인 기숙학원에서 재수를 했다. 한국에서 가장 좋은 환경에서 재수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정말 좋은 환경이었다. 그러한 곳에서 재수를 하고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은 순전히 나의 책임이다. 그리고 이러한 환경을 만들어 주신 것은 전적으로 부모님이었다. 내 노력이 아니었던 것이다. 물론 재수뿐만이 아닌 여태까지의 내 생활 전부가 말이다. 부모님이 나에게 지원해 주신 것은 금전적인 부분만이 아니다. 남부럽지 않게 정말 화목한 가정을 만들어 주시고 그 속에 일원이 되게 해주셨다. 너무나 완벽한 환경 속에서 사실 나는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만 했고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나로 태어났으면 지금의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 되었을 수도 있었다. 난 이 모든 것을 너무 당연하다고 여기고 살아왔다. 나는 내가 부끄럽다. 


1학기 도시학개론 강의 중 교수님의 한 말이 가슴에 남아있다. 장애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아무런 장애 없이 태어난 우리이지만 만약 우리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면? 우리 모두 장애를 선택하고 태어난 사람은 없다. 당연히 그것은 선택할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면 우리 부모님이 아닌 다른 가정에서 태어났다면 지금의 하찮은 나라도 될 수 있었을까? 나는 자신이 없다. 물론 내가 가정한 상황들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비하한다면 하찮은 나를 비하한다. 도움 없인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한심한 나를 저주한다. 나는 내가 부끄럽다.


하지만 이젠 바뀔 것이다. 내가 받았던 모든 것을 갚으며 살아갈 것이다. 물론 내가 사회에 어떤 것이라도 하고 있다는 허영심에 때마다 했던 기부나 헌혈이 아닌 내 모든 더러운 것을 깎아낸 순수한 마음에서 나온 행동을 말이다. 지금은 이렇게밖에 나는 말할 수 없다. 그렇기에 더욱더 고민할 것이다. 여전히 나는 내가 부끄럽다.


이제부턴 진실한 노력이란 것을 할 수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