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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호

[53호] 내가 좋아하는 영화 : 파이트 클럽 감상문 - 16 현승환



힘센 짐승들에게 매일 괴롭힘 받는 토끼는 자살하려고 한다. 하지만, 자기보다도 약한 개구리들을 보고 위로받아 자살하려는 마음을 접고 다시 살아가게 된다는 토끼의 이야기인 이솝우화가 있다. 영화 ‘파이트 클럽 에드워드 노튼이 연기한 주인공을 보며  이야기가 떠올랐다. 혼자 사는 주인공의 집은 이케아 가구들로 가득  있다. 그의 매일 반복되는 회사 업무  유일한 즐거움은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가구들을 사다 모으는 일이기 때문이다.  부피의 가구들은 혼자 사는 그의 방들을 채우기는 했지만, 매일 반복되는 일상  허한 그의 마음을 채우지는 못한다. 그래서 그는 불면증에 시달리고, 점점  피폐해진다. 결국, 병원을 찾아가게 되고, 병원에서 의사가  대신 내놓은 처방은 고환암 환자들의 모임에 나가라는 것이다. 그보다  고통받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눈물을 흘리며 그는 새롭게 삶의 원동력을 찾아낸다. 주인공은 토끼들처럼 본질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지만, 그는 자신보다 불행에 처한 사람들을 보며 위안으로 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고환암 환자들의 모임뿐만 아니라 매일 병명을 바꿔가며 가짜 환자 행세를 해서 아픈 사람들의 모임에 참석하고, 위로를 받는다. 그러나 그는 그의 고통을 동정이라는 진통제로 잊을 , 치료하지는 못한다.

 

그렇게 살아가던 그는 타일러 더든이란 이름의 멋진 남자를 비행기에서 우연히 만난다. 그를 만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인공은 집이 불타버리는 불의의 사고를 겪게 되고, 낡아빠진 타일러의 집에서 같이 생활하게 되며 파이트 클럽이라는 비밀 모임을 만들게 된다. 파이트 클럽에서는 정말 주먹질을 하며 치고 박고 싸운다.  과정에서 파이트 클럽의 멤버들은 스트레스를 풀고, 그들은 폭력이라는 사회의 금기를 어기면서 쾌락을 찾는다. 매일 똑같은 일상에 지친 주인공을 비롯해 고환암 환자, 웨이터  사회에서 고통 받던 사람들 모두 얼굴과 육체는 퉁퉁 붓고 상처가 난다. 정신적으로 그들은 폭력이라는 사회적으로 금지된 수단을 통해서 그들이 잊어왔던 즐거움,  이상의 환희를 찾는다. 사회에서 고통 받는 그들은 폭력  사회에서 금지되는 일들을 하면서 반항하고 저항하며, 쾌락을 얻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폭력이라는 수단을 쾌락을 찾기 위한 수단으로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파이트 클럽이 폭력이라는 방법을 사용해나가면서 생기는 문제들을 보여주고,   타일러는 이게 맞는 일인지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단순히 서로 싸우는 일에 그치지 않고 타일러는 여러 가지 일을 해낸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권총으로 수의사라는 꿈을 포기하고 아르바이트 일을 하던 점원을 위협하여 그가 다시 꿈을 좇도록 하는 장면이다. 목숨을 위협해 삶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고, 남은  최선을 다해 살아가도록 한다. ‘쏘우시리즈에 반복되어 나타나는 클리셰이다. 하지만 파이트 클럽의 타일러가 그러한 일을 했기에 쏘우에서 와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타일러는 폭력을 사회의 굴레와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한다. 그의 폭력에 사람들의 삶의 의미를 부여해주기 위함이었다는 타당한 이유를 달아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삶의 의미를 생각해 보라는 메시지를 아르바이트생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또한 던진  같다.

 

 주인공의 이름은 후반부에 가서 밝혀지기는 하지만 영화 내내 밝혀지지 않는다. 주인공처럼 매일 반복되는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 우리 모두를 상징해서일 것이다. 그런 우리를 위해 파이트 클럽은 마지막 장면에서 우리를 돈에 집착하게 하는 금융기관을 비롯한 건물들과 도심의 우리가 살고 있는 집들을 폭파시킨다. 주인공의 집이 폭발하고 나서 정신적인 환희를 얻었듯이, 우리에게 그런 기회를  것이다. 물론  방법이 폭력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이루어져서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선택은 영화를 보고  후의 우리에게 남은 것이다. 토끼가 되든지 ‘파이트 클럽 주인공이 되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