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53호

[53호] 길상사 여정기 - 17 이남기

때는 2018년의  번째 일요일. 평소보다 따스한 햇살이  품에 안겼다. 2018  주말의 선물이었을까, 아니면  추운 겨울에도 하루도 빠짐없이 학교에 출석 도장을 찍은 우리를 위한 하늘의 배려였을까? 아무렴 어떤가. 날카로운 바람을 맞이하더라도, 계절학기 학점을 향한 나의 여정은 막지 못했을 테니깐. 더군다나  여정은 혼자가 아니었다.  주말을 같은 조의 학우가 벗이 되어 함께 떠날  있었다!

 

목적지는 성북구에 있는 길상사(吉祥寺). 길상사는 1997, 김영한(법명 길상화) 법정 스님께 음식점이었던 대원각을 시주함으로써 만들어진 절이다. 시주한 그녀의 바람은 길상사가 시민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 되어 그들 모두에게 고뇌의 마음을 내려놓을  있는 장소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그녀의 바람은 이루어졌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사건 사고들, 그리고 일상의 무게에 지친 나의 심신을 잠시나마 맡길  있었으니.

 

종교지의 위화감은 느껴지지 않고, 시골 고향의 향수를 느낄  있는 “떠남이었다. 고뇌로 지친 심신의 안식처. 복잡한 도시에서 벗어나, 나의 몸을 맡긴 272 버스와 마을 버스 성북02. 그날만큼은 버스는 교통수단이 아닌 분명 나의 안식처였다.

 

과거에 나의  여자친구가 해준 말이 있었다. 그녀는 충실한 기독교인은 아니었으나, 종교에 귀의한, 소신만큼은 분명한 소녀였다. 그녀는 내게 말했다. “지금은 아닐 수도 있지만, 언젠가 삶의 무게에 지쳐 버티기 힘들  절대자를 찾아봐.” 이제야 그녀의 말이 이해가 된다. 어쩌면 현세의 무게를 사회라는 이름만으론 극복하기 힘든  “팩트 아니었을까. 지친 마음을 절대자를 통해 극복한다. 비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위로가 된다. 곁에 없지만, 언제든지 나를 믿고 손을 뻗어줄 귀인이 있다니. 그리고 적어도  절대자는, 여자친구처럼 나를 떠나진 않을 것이다!

 

도시공학도인 나에게 절대자는 길상사의 부처가 아닌,  마을  자체였다는 생각이 든다.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벗어나,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새의 지저귐에 귀를 맡길  있었다.  순간만큼은 절대자는 이미 귀를 통해 나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과제로 떠난 짧은 여행이었지만, 이번 과제의 진정한 의미는 지친 일상에서 벗어날  있었다는 것에서 찾는다. 기술의 발전 속에서 우리 도시는 점점 “기술적으로는 발전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문명-인류가 이룩한 물질적, 기술적, 사회 구조적인 발전- 점점  나아지고 있다. 그렇지만,  문명 발달이 나의 삶을 어쩌면 더욱 옭아매고 있다는 사실은 길상사에서 돌아오는 내게 씁쓸한 과제로 남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