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2018년의 첫 번째 일요일. 평소보다 따스한 햇살이 내 품에 안겼다. 2018년 첫 주말의 선물이었을까, 아니면 이 추운 겨울에도 하루도 빠짐없이 학교에 출석 도장을 찍은 우리를 위한 하늘의 배려였을까? 아무렴 어떤가. 날카로운 바람을 맞이하더라도, 계절학기 학점을 향한 나의 여정은 막지 못했을 테니깐. 더군다나 이 여정은 혼자가 아니었다. 첫 주말을 같은 조의 학우가 벗이 되어 함께 떠날 수 있었다!
목적지는 성북구에 있는 길상사(吉祥寺). 길상사는 1997년, 김영한(법명 길상화)이 법정 스님께 음식점이었던 대원각을 시주함으로써 만들어진 절이다. 시주한 그녀의 바람은 길상사가 시민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 되어 그들 모두에게 고뇌의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장소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그녀의 바람은 이루어졌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사건 사고들, 그리고 일상의 무게에 지친 나의 심신을 잠시나마 맡길 수 있었으니.
종교지의 위화감은 느껴지지 않고, 시골 고향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떠남”이었다. 고뇌로 지친 심신의 안식처. 복잡한 도시에서 벗어나, 나의 몸을 맡긴 272번 버스와 마을 버스 성북02. 그날만큼은 버스는 교통수단이 아닌 분명 나의 안식처였다.
과거에 나의 전 여자친구가 해준 말이 있었다. 그녀는 충실한 기독교인은 아니었으나, 종교에 귀의한, 소신만큼은 분명한 소녀였다. 그녀는 내게 말했다. “지금은 아닐 수도 있지만, 언젠가 삶의 무게에 지쳐 버티기 힘들 때 절대자를 찾아봐.” 이제야 그녀의 말이 이해가 된다. 어쩌면 현세의 무게를 사회라는 이름만으론 극복하기 힘든 게 “팩트”가 아니었을까. 지친 마음을 절대자를 통해 극복한다. 비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위로가 된다. 곁에 없지만, 언제든지 나를 믿고 손을 뻗어줄 귀인이 있다니. 그리고 적어도 그 절대자는, 여자친구처럼 나를 떠나진 않을 것이다!
도시공학도인 나에게 절대자는 길상사의 부처가 아닌, 그 마을 그 자체였다는 생각이 든다.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벗어나,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새의 지저귐에 귀를 맡길 수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절대자는 이미 귀를 통해 나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과제로 떠난 짧은 여행이었지만, 이번 과제의 진정한 의미는 지친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것에서 찾는다. 기술의 발전 속에서 우리 도시는 점점 “기술적”으로는 발전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문명-인류가 이룩한 물질적, 기술적, 사회 구조적인 발전-은 점점 더 나아지고 있다. 그렇지만, 그 문명 발달이 나의 삶을 어쩌면 더욱 옭아매고 있다는 사실은 길상사에서 돌아오는 내게 씁쓸한 과제로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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